[기획연재] 인천에서 새로운 학교 만들기 ③ 타 지역 새로운 학교의 현재(1)
충남 홍성군 홍동면 농촌지역의 새로운 학교 ‘홍동중학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일제고사 부활 등으로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심화되고 있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학교는 교사와 학생에게 가기 싫은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교의 권위와 교사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학교에선 왕따와 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혁신학교’가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출발한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6개 시ㆍ도교육청에서 현재 300여 개교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인천에서도 혁신학교와 같은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연대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진보구청장이 당선된 남동구에서도 새로운 학교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혁신학교의 의의와 현황, 그동안의 성과 등을 짚어보고 새로운 학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학생들끼리 다 친해요. 선생님들도 학생 이름 다 외우고 계세요. 학생끼리 친하고 선생님이 좋으니 크게 싸울 일이 없어요. 학교 폭력도 없고 왕따도 없으니… 그게 저도 신기해요”

“아마 우리 학교 학생들 중 여러 명은 다른 학교를 다녔다면 한가락 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선 친구들과 사이좋게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학교 분위기가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거죠”

11월 7일 방문한 홍동중학교(교장 오능근ㆍ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구정리) 학생과 교사의 말이다. 이 학교에는 폭력이 없다고 했다. 전체 학생 150명 규모의 이 농촌 학교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걸까?

1학년 2반 5교시 수업시간, 학생들이 도서관으로 모였다. 6~7명이 팀을 이뤄 ‘가족 간의 갈등’과 ‘멸종위기 동물과 지구 환경’이라는 2가지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 그림자극 대본을 만드는 중이다.

“가족 간 갈등을 주제로 각자 이야기해보자. 부모님과의 갈등도 좋고… 이야기할 게 있는 사람?”

“내가 집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자꾸 내 말을 끊고 끼어들어. 근데 조금 있다가 누나도 그러고, 엄마도 그래. 그래서 속이 상해”/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데 엄마는 못 키우게 해”/ “우리 아빠는 성적이 안 좋다고 자꾸 잔소리를 하셔”/ “우리 엄마는 게임을 너무 많이한다고 구박해”

“그럼, 대본 내용을 딸이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니까, 성적이 떨어진 거야. 근데 딸이 키우던 애완동물을 부모님이 버린 걸로 하는 건 어때?”(다 같이 웃음)

“근데 왜 딸이야? 아들이면 안 돼?”/ “그럼 우선 자녀라고 하고 괄호를 치면 되잖아”/ “배경을 집으로 해야 하는데, 그럼 가구를 어떻게 배경으로 만들지?”/ “가구를 넣지 않고 배경에다가 그냥 집이라고 글씨를 쓰면 되지 않을까?”(다 같이 웃음)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대본 만들기를 위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교사는 토론이 시작되기 전 토론 방식 등에 대한 설명만 하고 학생들의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조언만 할 뿐 토론에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대본을 바탕으로 그림자 인형과 무대장치를 만들고 9일 1학년 전체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그림자극을 선보였다. 그림자극 만들기는 국어, 수학, 기술ㆍ가정, 과학 등 네 가지 과목 수업을 동시에 하는 통합교과 수업이다.

이에 대해 수업을 지도한 민병성 교사는 자세히 설명했다. 학생들은 대본을 정리하면서 국어 과목의 ‘대본 쓰기’ 단원을 배운다. 그림자극이 빛을 통해서 그림자 지게 하는 것이니 ‘빛의 거리에 따라 크기가 얼마나 달라지는가?’라는 수학 과목 ‘도형’ 단원도 배운다.

가족 간 갈등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기술ㆍ가정 과목의 ‘집에서 부모의 역할’ 단원을,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해 토론하면서는 과학 과목의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 유지를 위해서는 생물 종이 다양해야 한다’는 단원 내용을 배울 수 있다.

홍동중은 통합교과수업을 매 학기별 1회씩 운영하고 있다. 이런 수업은 학생들이 통합적인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민 교사는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이 개별적인 경쟁보다는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협동 능력과 공동체성도 배울 수 있다고 민 교사는 말했다.

협동과 자기주도학습 중요하게 여겨

 

▲ 홍동중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이 그림자극 대본을 만들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

홍동중은 통합교과 수업에서 드러나듯이 협동학습과 공동체, 자기 주도 학습, 생명과 평화, 인성 등을 교육활동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학생들이 진로를 고민하면 스스로 학습계획을 짜고 공부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자신의 진로를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 문제와 사회의 여러 가지 현안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나갈 능력을 키운다면 학과 공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1학년 때 ‘진로와 직업’이라는 교과를 주당 1시간 씩 배운다. 지역 전문 직업인들의 특강을 듣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직업체험 활동에 참가하며 미래 계획과 비전을 갖는 것이다.

2학년 때는 ‘생태와 인간’이라는 교과를 배운다. 주변 생태를 이해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가치관을 배양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에 대해 토론하다. 프로젝트 수업인 ‘홍동천 살리기’로 홍동천 수질을 조사하고 홍동천 살리기 방안을 모색한다. 또한 유기농업을 배우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가치관도 배운다.

3학년 때는 ‘삶과 인성’ 교과를 통해 중학생 시절 흔히 겪기 쉬운 가치관 혼란을 줄이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과목에선 소통과 대화, 분노 조절 같은 사회적 기술을 배우며 생명과 평화, 나눔 등의 영역도 배워 인성과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다.

홍동중은 이렇게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도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기본 시수는 지키고 있다. 또한 방과후활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기초학습ㆍ중국어ㆍ시사토론ㆍ과학탐구 학습부서, 축구ㆍ요가 등 생활체육부서, 수공예ㆍ목공ㆍ연극ㆍ드럼 등 예능, 특기ㆍ적성 캠프 등 교과와 특기적성으로 나눠진 방과후활동을 선택할 수 있다.

홍동중에는 반강제적인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이 없다. 원하는 학생에 한해 학교 교문 옆에 위치한 지역사회교육문화센터 ‘해누리관’의 공부방에서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자율학습을 한다.

이들은 서로 조를 짜 공부한다. 또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보충학습을 받거나 교사의 일대일 개인지도도 받을 수 있다. 저녁에 공부방 이용 학생들은 재능기부 봉사를 하는 학부모가 만든 급식을 먹을 수 있고, 통학버스로 집에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다.

학교 복도에서 만난 김기은(2년) 학생은 “자율학습도 스스로 선택해서 하고 친구들끼리 서로 모르는 것을 알려주니, 공부가 더 잘되고 성적도 더 오르는 것 같다”며 “생태 공부도 하고 유기농 재료로 만든 급식도 정말 맛있다”고 학교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하루 전날이라 수업이 일찍 끝나 모교를 찾았다는 주지원(고교 1년) 학생은 “선생님들이 많이 생각나서 찾아왔다”며 “공부를 안 시키는 학교라는 말도 있는데, 오히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고등학교에 가도 금방 공부를 따라잡는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다니고 싶을 정도로 좋은 학교이다”라고 말했다.

자율학습 급식을 준비하던 학부모 김숙자씨는 “아이 한 명은 졸업하고, 한 명은 이 학교를 다니고 있고, 두 명은 조금 있으면 이 학교를 들어와야 한다(웃음).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적이 없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기 때문”이라며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스스럼없어서 좋고, 학부모들도 학교에 가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어 방학이 싫다고 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홍동중에는 학교 폭력과 왕따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지역주민과 교사들이 대안 교육 추구 … 내부형 교장 공모로 ‘새로운 학교’ 확립

 

▲ 홍동중학교 학생들이 지난 6월 전교생 모내기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ㆍ홍동중>

홍동중은 1971년 충남교육청이 설립한 공립학교로 한때 학급 15개, 학생 991명 규모였다. 하지만, 급격한 이농 현상에 따른 인구 감소로 2008년 5개 학급 97명 규모로 줄었다가 최근에서야 학생 수가 조금씩 늘어 올해 9월 현재 학생 150명과 교직원 20명이 생활하고 있다.

홍동면 지역은 1990년부터 오리농법을 이용한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풀무생활협동조합ㆍ신용협동조합ㆍ출판사ㆍ마을카페 등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다양한 기관들이 있다. 또한 갓골어린이집ㆍ갓골생태농업연구소ㆍ문당리환경농업교육관 등이 주민들의 모금과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이 유기농업을 활성화하고 주민자치기관을 많이 운영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며 사는 것은 이 지역에 1958년 개교한 풀무학교(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영향이 크다.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는 기독교 정신 아래 농업과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주민들을 교육해온 기관이다.

이런 영향과 함께 유기농업에 관심이 많은 도시민들이 귀농했고, 이들이 지역민들과 만나 학교 교육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학력 중심의 교육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교장들에게 부딪혀 많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2003년 학부모이자 교사인 주민들이 제도권 학교 안에서 대안 교육을 추구하는 남한산초등학교 등을 방문하며 ‘새로운 학교’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으로 2005년엔 홍동중 교사들을 중심으로 ‘홍동지역 범교과 교육과정 연구회’를 만들었다. 이 연구회엔 이 지역 초교 2개와 중학교, 고등학교 소속 교사들이 함께 했다.

이 교사들과 주민들은 2007년 9월 내부형(공ㆍ사립학교에서 교원의 직급에 관계없이 지원 가능한) 공모 교장을 영입하기로 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장공모제를 추진했다.

응모한 후보자 9명 중 사립학교인 천안 복자여고 평교사였던 이정로 교사를 교장으로 뽑았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많았고, 학교 운영 계획서에 학력과 인성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정로 교장은 교사, 지역사회(지역주민과 단체 등)와 함께 지역의 요구를 담은 새로운 학교 경영계획서를 작성했다. 또한 이에 따른 특성화 교육과정도 만들었는데, 이는 교장이 바뀐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이정로 교장의 임기가 끝나는 2011년 9월 학교 구성원들은 충남교육청에 다시 내부형 교장공모제 추진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육청이 혁신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충남에서 홍동중이 ‘새로운 학교’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 의식이 높은 주민들과 교육을 바꾸기 위한 교사들의 헌신, 내부형 공모 교장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민병성 교사는 “새로운 학교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가”라며 “교장이 발령을 받아 계속 바뀌는 구조라면 연속성을 가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교육청이 혁신학교를 추진하지 않는 지역에서 새로운 학교 만들기가 쉽진 않겠지만,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것으로 혁신을 시작할 수 있다”며 “교사들이 창의성이 없어서 고리타분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로부터 인정받기 싫은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행정업무가 크게 줄어든다면 스스로 수업 혁신을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