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교과서·공책 모아온 홍성덕 선생님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한 동안 손도 대지 않았던 서랍을 정리하는데 뭔가 툭, 하고 떨어진다. 20년 전 학창시절 등하교길에 들고 다니며 영어단어를 외우려고 만들었던 단어장. 끄트머리는 너덜너덜해지고 누렇게 빛이 바랜 단어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영어단어 하나에서 끝없이 피어오르는 옛 기억으로 한 동안 제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향수에 젖는다.
당시에는 날밤을 새게 만들고 힘들게 했던 영어단어장 하나도 세월의 흐름만큼 그리움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와중에 이사도 몇 번 하면서, 옛 추억을 들추어낼 단어장 하나 교과서 하나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어지간히 꼼꼼한 성격이 아니고는 그런 것들을 모아두기란 쉽지가 않다.
여기, 50여년 전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대학시절 공책, 연습장까지 꼼꼼히 모아온 선생님이 있다. 1948년 교동국민학교(현 부평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송도중학교, 인천고등학교를 거쳐 인천교육대학(현 경인교대)에 다니는 동안 사용했던 교과서와 공책, 단어장, 연습장, 성적표를 소중히 간직해온 사람. 바로 홍성덕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51권, 중학교 104권, 고등학교 126권에다 대학노트 16권… 교과서와 공책만 총 297권이다. 거기다 성적표, 당시 그린 지도 등 홍 선생님은 지나온 18년 학창시절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2000년 5월 한국교육신문에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옛 교과서와 공책에 대한 글을 쓴 것을 계기로 홍 선생님의 학창시절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작년 5월에는 부평도서관 ‘근현대 교과서 변천사 전’에 참여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올해 5월부터는 아예 부평도서관 1층에 홍 선생님의 학창시절을 전시한 전시관까지 따로 마련됐다. 이곳에서 매주 한번씩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한 ‘추억의 교실여행’도 진행하고 있으니 낡은 공책과 교과서로 인해 선생님의 50년 전 학창시절은 2004년 오늘까지도 생생히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제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가 48년이니 국민소득 50불도 안 되던 때였죠. 끼니 채우기도 급급했던 시절이니 제대로 된 학용품이 있었겠어요? 어느 날 짝꿍이 떨어뜨린 지우개가 교실 마루 틈 사이로 빠지는 걸 보고 나중에 그 밑을 뒤졌어요. 먼지를 흠뻑 뒤집어써야 했지만 아이들이 흘린 연필과 지우개를 양손 가득 들고 나올 때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학용품이 귀했기 때문에 다 쓴 공책도 버리지 않고 모았던 것 같습니다.”
홍 선생님이 모아둔 학창시절 자료는 이제 현재의 아이들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생생히 읽게 하는 학습자료가 되기도 하고 어른들에게는 20년, 30년 전 까까머리, 갈래머리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평일 오전 9시 이후 부평도서관 1층 전시실에 가면 홍성덕 선생님의 빛 바랜 공책들을 만날 수 있으니 어느 때고 찾아가 50년 전 우리네 역사를, 학창시절 우리네 추억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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