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유치를 위해 공무국외 출장 중이던 민선 8기 유정복 인천시장과 김진용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유럽 출장 최대 성과로 발표한 오스트리아 ‘테르메(Thermae) 그룹’ 유치가 실은 민간사업자가 먼저 2년여 전에 시에 제안했던 사업으로 확인됐다.

테르메 투자유치 사업은 송도 6·8공구 개발 우선협상대상자가 민선 7기에 해당하는 전임 인천경제청장 재임 시절 제안했던 사업이다. 시와 인천경제청은 당시 민간이 제안한 사업계획 등을 검토한 뒤 거절했다. 그런데 이번엔 당시 제안과 같은 내용으로 상호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사업을 제안했던 민간 업체는 “테르메 그룹의 스파 유치는 우리가 송도 6·8공구를 최고의 랜드마크 시티로 만들기 위해 제안 했던 구상이다. 인천경제청은 우리가 제안했을 땐 거절하더니 이제 와서 자기들이 유치했다고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이 민간이 제안했던 내용을 토대로 상호협력 의향서를 제출하면서 이 사업을 제안했던 민간업체와 사전 상의도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르는 내용도 아니다. 송도 6·8공구 공구 개발을 위한 우선협상자대상자와 진행했던 내용이다.

시장에만 디폴트가 있는 게 아니다.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 신용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채무지급보증 불이행 발언은 국내 채권시장을 얼어 붙게 만들고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악화시켰다. 2000여억원이면 막을 수 있는 사태였는데 자금시장의 ‘돈맥경화’로 정부가 결국 50조원을 풀게 만들었다.

레고랜드 발 디폴트 우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기업 자금난으로 확대됐다. AA+ 등급 이상의 지방공기업이 발행하는 공사채가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고, 자금을 구하기 어렵게 된 공기업은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울며겨자먹기로 고금리 채권을 재발행하는 악순환을 빚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서 신용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면 후폭풍이 거세다. 이번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이 투자유치의 최대 성과라고 자평하는 게 과연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국제 신인도를 올리는 데 기여했을까. 오히려 스스로 자기 체면을 구긴 꼴이다.

2년여 전에 한국의 기업과 손잡고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하자고 했을 때 서류까지 주고받으며 사업계획을 공유하고 검토한 뒤, 사업을 추진하자고 할 때는 안하다가 같은 내용을 이번에 공직자가 들고 나와서 잘해보자고 한다.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서 과연 이를 어떻게 여길까. 인천을 믿고 투자해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시와 테르메가 투자협력 의향서를 작성할 때 그 자리엔 송도 6·8공에 이 사업을 같이 준비했던 우선협상대상자가 없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이 테르메 그룹을 만나 투자유치 협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엔 민간과 외국인투자자가 먼저 검토했던 일이 있어 가능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를 쏙 빼놓고 마치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인 마냥 홍보하고 있다. 양해각서나 투자합의각서도 아니고 편지 수준의 ‘상호협력 의향서’ 체결이다. 투자유치 하러 나갔다가 별다른 소득은 없는 대신 글로벌 투자유치 시장에서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의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테르메 그룹은 루마니아 등 4곳에서 힐링스파 리조트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상호협력 의향서에 테르메가 올해 안에 외국인직접투자(FDI) 2억달러를 신청하고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힐링스파 리조트를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앞서 얘기한대로 이 사업은 송도국제도시 6·8공구 개발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가 먼저 제안했던 사업이다. 당시 인천경제청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우선협상대상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유럽을 왕래하며 테르메 그룹과 사업을 논의했다.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하자 화상 회의를 30여차례 진행한 뒤 사업 구상을 마친상태에서 설명하고 제안했는데, 결국 시와 인천경제청은 사업아이템만 챙긴 셈이다.

개인과 민간 기업도 신용이 중요하지만 정부 재정과 지방재정을 책임지는 정부와 지자체의 자세와 공식적인 발언, 사업계획 발표와 구상 등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민간이 제안했던 사업을 쏙 들고 가서 투자유치 양해각서도 아니고 협력 의향서 정도를 체결하고 돌아온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을 보는 여론이 싸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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