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고용노동부는 자신의 누리집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고용노동부의 약속’이라며 그 첫번째 임무를 “노동존중사회 실현과 차별 없는 일터 조성으로 노동자 권익을 보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문장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지난 10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밝힌 ‘근로기준법 4인 이하 사업장 적용 확대 의견 표명’과 ‘사용자 정의 확대 권고’ 그리고 국회에 발의된 ‘손배가압류 제한 노조법 개정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제1조(목적)에서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2조(정의)에서 정한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은 차별없이 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 왜냐면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은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조건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법정근로시간(1일 8시간, 1주 40시간) 등 핵심적 조항들인 제23조 1항(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금지), 제27조(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제28조(부당해고 등의 구제신청), 제46조(휴업수당), 제50조(근로시간), 제53조(연장근로의 제한), 제55조 2항(공휴일), 제56조(연장․야간 및 휴일근로 가산임금), 제60조(연차유급휴가),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등이 적용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줄곧 4인 이하 사업장은 아무런 정당한 사유도 없이 중요 조항 적용이 배제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 ‘전국 규모별 사업체수 및 종사자수(2019년)’를 보면, 4인 이하 사업장 수는 전체 사업장의 약 61.5%에 이른다. 아울러 4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전체 노동자 수의 약 19%를 차지한다.

한국 노동인구 5명 중 1명이 4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최우선 과제는 ‘근로기준법’ 을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4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다수 조항에서 적용 제외된다는 점 때문에, 일부 사용자가 사용자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고자 사업장 규모를 4인 이하로 분할해 사업자 등록을 하는 이른바 ‘사업장 쪼개기(가짜 4인 이하 사업장)’ 등의 탈법행위를 일삼고 있다.

지난 7월, 0.3평 ‘철제 감옥’에서 "이대로 살 수 없다"며 투쟁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에게 사용자는 노동3권을 부정하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액을 청구했다.

이 사태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손배가압류의 제한과 함께 진짜 사용자 원청자의 책임 강화,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등이 사회적 과제로 부각했고 한국 사회에 큰 숙제를 남겼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와 사측은 노동조합은 물론 노동자 개인 가릴 것 없이 잔인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손배가압류 등 고통으로 노동자 수십명이 목숨을 끊었다. 불법을 자행한 것은 사용자들인데 고통은 온전히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사측의 불법을 처벌해야할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오히려 사용자에게 형식적인 권고와 솜방망이 처벌만을 했을 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 비준되고 발효된 조건에서 ILO 핵심협약의 취지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조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사용자 편향적인 입장을 공식화하며 노조법 개정을 가로막고 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내부 검토 문건에서 국회에 제출된 손배 가압류 제한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가 하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사용자 정의 확대 권고에 대해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10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제 위기라며 특별연장근로를 90일에서 180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 인력난을 이유로 52시간 연장근로 상한을 2년간 유예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그렇게 노동시간을 연장하더라도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달라는 앞뒤가 안 맞는, 지켜지지도 않을 당부를 덧붙였다. 소가 웃을 일이다.

고용노동부와 이정식 장관은 누리집에서 밝혔듯 ‘노동존중사회 실현과 노동자 권익 보호’ 약속을 이행해야 하며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는 사용자 편향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모든 노동자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원청사용자의 책임인정, 노동3권의 부재로 발생하는 손배 가압류를 제한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지금과 같이 고용노동부가 사용자들의 이해를 위해 노동권을 약화시키는 일에 앞장선다면 존재의 이유는 물론 사용자들의 이중대라는 비난과 손가락질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고용노동부가 ‘습관적 자가당착(自家撞着)’에서 벗어나는 길은 존재의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고, 국민과 약속을 진정성 있게 지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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