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사람] 월간 문화매거진 ‘옐로우’ 장희순 발행인

▲ 장희순 발행인.
“별 얘기를 다 들었죠. 문화잡지에 웬 옐로우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그런데 ‘노란색’ 하면 떠오르는 게 참 많거든요. 지혜, 대안, 그리고 도발, 역설, 경고 등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황해’에도 노란색이 들어가죠. 병아리부터 노인까지 모두를 섭렵할 수 있는 색이 노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잡지의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 ‘옐로우’. 상식적으로 정기간행물과 ‘노란색’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황색저널리즘’이란 말 때문일 것이다. 황색저널리즘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선정적이고 과장된 보도를 일삼는 매체에 붙이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 5일 창간한 월간 문화매거진 ‘옐로우(Yellow)’는 이런 일반의 상식에 보란 듯 노랑을 앞세운다. 창간호 발행을 하루 앞둔 4일, 발행인 장희순(45)씨를 도서출판 다인아트 사무실(남동구 구월동)에서 만났다.

‘옐로우하우스’부터 문화잡지 ‘옐로우’까지

장 발행인은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대만으로 훌쩍 날아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무용이 좋아서, 그리고 홍콩 배우 유덕화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다. 한국에 돌아와 8년 동안 연예 기자, 컴퓨터잡지 기자를 거쳤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2003년, 남동구 구월동에 대안문화공간 ‘폭스’를 열었다. 그곳에서 한 달에 한 번 쉬지 않고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었다. 지난 4월, 10년간 정들었던 폭스 문을 닫았다. 이미 잡지에 대한 구상이 끝난 뒤였다.

처음 생각한 잡지 이름은 ‘어나더(Another: ‘다른’이라는 뜻)’였다. 하지만, 같은 이름의 잡지가 이미 등록돼있어 사용할 수 없었다. 다시 원점. 인천과 문화를 한 데 엮을 수 있는 단어가 뭘까 고민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툭, 말을 던졌다. “인천 하면 옐로우하우스인데”

무심코 내뱉은 이 말을 시작으로 다시 열띤 토론이 시작됐다. 옐로우하우스는 남구 숭의동 일대에 있던 성매매촌을 일컫는 말이다. 의견은 분분했다. 그러나 얘기를 나눌수록 ‘이거’란 생각에 힘이 실렸다.

“열로우하우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인천 역사죠. 굳이 숨길 필요는 없잖아요” 노랑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떠올리며 ‘옐로우’로 결정한 순간, 금기를 깬 것처럼 묘한 쾌감이 뒤따라왔다.

잡지? 그냥 좋아서

이름 말고도 ‘옐로우’는 여러 면에서 범상치 않다. 인터넷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가 빠른 속도로 소비되는 시대에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그것도 문화적 토양이 열악하기로 소문난 인천에서, 간행물을 보조금 없이 자력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현재 인천에서 간행되는 문화잡지 가운데 관(官)에서 발행하는 부평아트센터 ‘호박’,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등이 있지만, 민간 발행 잡지는 ‘옐로우’가 유일하다.

“저 스스로 수없이 질문을 던졌어요. 왜 종이잡지인가. 만들고 싶은 열망은 가득한데, 이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도 통할까?” 그는 전국에서 자생하고 있는 잡지사 여덟 군데를 찾아다녔다.

“다녀보니, 다들 그냥 ‘좋아서’ 만드는 거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인천 문화가 중심이 된 잡지를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이번 창간호에서는 특집기사로 전국의 다양한 잡지에 얽힌 이야기를, 기획기사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과 그곳에서 꽃핀 문화제를 다뤘다. 또 용현시장 속 문화 공간, 동화작가, 뮤지컬 음악감독을 소개하고, 다양한 공연 정보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잡지 마지막에 등장하는 ‘비주얼스트리트’ 코너에는 부평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 23명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패션사진을 실었다. 홍대 앞을 방불케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패션 도시 인천’이란 말도 제법 어울릴 법하다.

창간호에 앞서 지난 9월 발간한 창간 준비호에는 직업도, 활동 영역도 다양한 시민 365명의 사진과 창간 축하 메시지를 한 면에 하나씩 실었다. ‘현장에서 발로 뛰겠다’는 다짐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문화는 먼 곳 아닌, 이곳에서 누리는 모든 것

그는 ‘옐로우’는 ‘문화매거진’이라고 강조했다. “흔히 문화라고 하면 ‘예술’을 먼저 떠올리죠. 그리고 ‘예술’은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가야만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문화란 다른 먼 곳이 아닌,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내가 입고 먹고 말하고 보고 만지는 모든 것이죠”

창간호 기획기사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2천여 일 농성’을 다룬 것도 이와 관련한 이유에서다.

“기타를 만든 노동자이기 때문에 문화잡지에서 다룬 게 아니에요. 노동자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시작한 투쟁이 긴 시간을 지나면서 지금 콜트-콜텍 농성장에 새로운 문화 형태로 나타났거든요. 먼 곳이 아닌, 바로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탄생한 것이죠. 이런 ‘문화’가 곳곳에 만연했으면 합니다”

‘옐로우’에 담으려는 목소리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세 가지를 들었다.
“우선 문화 정책담당자, 그리고 실제 문화 현장에서 일하는 예술인과 활동가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어요. 저는 예술인들이 겪는 고충 등 실제 문화 현실을 시민에게 전달해 공감을 이끌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기업의 ‘메세나’(=문화예술에 대한 지원활동이나 지원자)가 잘못 정착돼있는데, 이것이 예술인과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천에서도 문화 행사와 공연이 많이 열리거든요. 이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보를 모조리 모아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그는 인천이 누구나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문화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행복하다면, 후져 보이든 멋져 보이든 상관없어요. 인천에 사는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이유를 ‘옐로우’가 만들어가겠습니다”(구독문의ㆍ070-4485-8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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