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수의 알쓸신서 ①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이매뉴얼 사에즈·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노정태 옮김|부키 2021년

인천투데이=변정수 도서평론가|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세금’과 ‘죽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지만, ‘세금’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못 매겨진 세금은 가뜩이나 평등하지 못한 세상을 더욱 불평등하게 구조화하기도 한다.

가령 미국에선 소득 하위 50퍼센트가 소득의 평균 25퍼센트를 세금으로 내는 반면, 최상위 400명에겐 그보다 낮은 세율 23퍼센트를 적용한다. 이것을 정의롭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불의의 승리(The Triumph of Injustice)’이다.

저자들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누진율을 자랑하던 미국의 소득세 체계가 레이건 정부 이후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로 인해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화됐는지, ‘불의’가 승리하게 된 그 역사적 과정을 구체적인 수치로 실증해 보여준다.

또한 세금이 비싸면 더 싼 세금을 내도 되는 나라로 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걱정이 언제나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명분으로 동원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외의 조세도피처로 빼돌리는 온갖 기묘하고 지저분한 수법을 개발해내는 ‘탈세산업’이 번성하게 된 시기는 오히려 레이건 정부의 감세 정책 이후였다는 근거를 들어 이러한 통념이 얼마나 허구적인 신화인지를 밝혀낸다.

저자들의 주장은 매우 간명하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 즉 누진세(progressive tax)야말로 말 그대로 ‘진보적인’ 세금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유권자들이 누구에게 얼마나 세금을 거두는 것이 공평한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진 조세 불평등의 심화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시민들이 이성적인 토론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다른 선택을 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낙관은 결코 탁상물림들의 비현실적인 공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출간되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상하원합동회의 연설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궤를 같이 하는 새로운 증세 정책의 방향을 발표했고, 그 정책들은 지금 하나하나 입법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중이다. 결국 바이든을 선택한 유권자들이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시민 대다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고작 상위 0.1퍼센트의 조세 부담을 늘리자는 주장조차도 ‘세금 폭탄’으로 매도되면서 좌절되곤 하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불의의 승리’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부자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빨갛게’만 보인다면, 최상위 소득구간에 압류에 가까운 세금을 매겼던 루스벨트의 말을 기억하자.

“홈스 판사는 말했습니다. ‘세금은 우리가 문명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문명을 헐값에 사려고 하는 것 같군요.”

비록 전쟁중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러한 기조는 그 뒤로도 미국 경제가 번영을 누리는 반세기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

21세기의 절반 동안이나 미국이 ‘빨갱이 나라’였다는 억지를 쓸 생각이 아니라면 부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에 공연한 색안경부터 들이댈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그들’은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이들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저커버그가 2018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은 4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그에 대한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나라의 예산을 훔친 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도둑질조차도 완벽하게 ‘합법적’이라면, 잘못된 법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이제 ‘우리’가 선택할 때다.

*알쓸신서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서적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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