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번외편 ⑪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이번에 쓴 글은 번외편입니다.<편집자주>

미국 매체인 블룸버그는 자녀 양육 부담이 한국의 출산율을 세계 최저로 끌어내린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자녀 양육 부담은 곧 사교육비 부담이다.

한국 가정은 지난해 자녀 교육비로 약 6000달러(약 830만원)를 지출했는데, 이 액수의 대부분이 학원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자녀를 대학까지 보내려면 6년 치의 평균 월급이 들어간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블룸버그는 윤석렬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교육문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정확한 분석이다. 저출산은 물론이고 한국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교육문제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적 이슈인 조국 교수 문제도 결국 자녀의 교육이 원인이다.

부동산 문제를 봐도 국내의 부동산 가격은 좋은 학군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남 집값이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은, 강남의 서울대 진학률이 타지역과 비교할 수 없이 높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교육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교육이 문제인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온갖 사교육 비용을 강박적으로 지출한다. 자신의 자녀가 뒤떨어지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박은 학년이 높아질 수록 심해져 자녀가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면 절정에 달한다.

이 모든 강박은 대학 입시라는 일생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존재한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부모들은 비로소 교육 강박에서 벗어난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가 이렇게 강박적으로 중요한 것은, 대학 서열화 때문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소위 스카이(SKY)로 상징되는, 명문대학을 위주로 하는 대학 서열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너무나 공고해서 이미 철옹성을 구축했다. 성공을 위한 보증수표가 명문대 졸업장이 됐다.

이런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은 물론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요직은 모두 명문대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구축한 학벌 카르텔은 너무나 공고해서 외부인은 도저히 깨뜨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명문대에 진학해야 한다. 이렇게 공고해진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한국의 사회 구성원들은 어쩔 수 없이 치열한 입시 경쟁에 내몰리고 자녀를 위한 희생이 당연한 가치인 한국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 경쟁과 희생은 너무나 가혹하기에, 이를 몸으로 겪고 성장한 청년 세대들은 아예 자녀 갖기를 포기하는 현상이 지금 나타나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는 곧 교육 문제이고, 교육의 근본적 문제는 명문대로 상징되는 대학 서열화이다.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학 서열화를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껏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들이 이 문제를 깨닫지 못해서 해결을 못하고 있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대학 서열화로 인한 각종 폐단이 문제로 제기된 지는 오래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 방안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국립대 통합이다. 전국의 국립대학을 통합해서 하나의 대학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치열한 입시 경쟁을 상당 부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학벌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의 반대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국공립대학교의 통합은 결코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가장 합리적 해결책이다. 외국의 선례도 있다. 프랑스는 전국 대학을 통합하고 서열을 타파하기 위해 소르본대학같은 기존의 대학 이름을 아예 제1대학, 제2대학 식으로 바꿨다.

그렇다고 프랑스 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프랑스는 여전히 교육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출산율 저하도 성공적으로 극복한 국가이다.

대학 서열화를 극복하려는 여러 시도는 언론에 몇 줄 보도되는 것으로 끝날 뿐, 공론화가 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서울대로 상징되는 학벌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 기득권층은 학벌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 카르텔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치와 언론 등 오피니언 리더를 구성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학벌 카르텔에 소속돼 음으로 양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카르텔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녀에게도 상속된다. 이들이 학벌 카르텔을 깰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교육 혁신을 달성하여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너무나 공고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기에 혁명밖에 답이 없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교육 개혁 의지가 확고한 정치인 양성이 차선책일 텐데, 이 또한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교육 개혁은 커녕 기본적인 정치 철학조차 부재하고, 중요 사회 현안에는 전혀 관심 없어 보이며,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 있어 보이는 대통령을 위시한 주요 정치인들을 유권자가 투표로 당선시키는 현실에선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국가의 존망 관련 우려가 나오고 교육 혁명이 근본적 해결책인데, 문제의 핵심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 혁명은 고사하고 학벌 타파에 대한 활발한 논의라도 있어야 희망이라도 보일 텐데, 그저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이다. 혹시 천공은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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