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미 정의당 인천시당위원장

47억원, 246억원, 27억원, 470억원. 무엇을 나타내는 액수일까. 쌍용자동차, 현대제철, 하이트진로, 대우조선해양이 정당한 파업을 진행한 노조와 노동자에게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액이다.

문영미 정의당 인천시당위원장.
문영미 정의당 인천시당위원장.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노동쟁의에 어마어마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권리요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헌법 상 기본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뜻한다. ‘노란봉투법’ 운동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이라는 손해배상액이 청구된 것을 보고 한 시민이 <시사IN>에 편지와 함께 노란봉투에 4만7000원을 담아 보낸 데서 비롯했다.

이 4만7000원을 계기로 국회에서 쌍용차 사태에 대한 ‘정부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 결의안이 채택됐다. 하지만 쌍용차 노조는 여전히 13년째 법정 투쟁 중이다.

그사이 47억원은 손해배상 원금에 20% 가까운 법정 지연이자가 붙어 무려 124억원으로 늘었다. 파업 후 세상을 떠난 노동자와 외상 후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노동자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노조에 손해배상으로 246억1000만원을 청구했고, 최근 대우조선해양도 사내하청노동자 5명에게 무려 470억원을 청구했다. 대우조선해양 경력 15년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연 3400만원 정도이다. 이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300년을 갚아야 가능한 사상 최대 손해배상 청구액이다.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 3가지 핵심 권리를 노동기본권 중 노동 3권이라고 한다.

노동3권은 약자인 노동자가 사용자와 교섭에서 실질적인 대등함을 확보해 노동조건의 결정이나 지위의 향상 등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노동3권은 이처럼 헌법에 명시한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하청 노동자뿐만 아니라 원청 노동자들에게도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은 하위 법에 해당하는 노동조합법으로 인해 제약받는 상황이 된지 오래다.

현행 노동조합법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토대로 한 적법 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가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면책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사법부 판단에 그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져 절차에 정당성을 확보한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으로 불린다.

파업 노동자에게 파업으로 말미암은 기업의 불확실한 손실까지 배상하라는 것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교묘하게 억압하는 후진국형 노동탄압이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선진국에 사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경제 선진국’에 해당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선진국 중 파업했다고 형법으로 노동자를 처벌하는 유일한 ‘노동 후진국’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87호와 단체교섭에 관한 98호를 바탕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진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파업까지도 가능하다’고 한 결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도 ILO 기본협약이 발효된 나라에 해당하는 만큼 노조법에 대한 해석이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한다.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게 여전히 '목숨을 내놓고', '인생을 거는 일'이 돼서는 안 된다.

이번에 반드시 노동조합법 2조와 3조를 개정해야한다. 지식정보사회에 맞게, 선진국 답게 노동자의 개념을 확대해 불안정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합법적인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금지해야 한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더 이상 노동3권이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 정당한 파업을 불법이라고 몰아세우며 노동자를 겁박하고, 감당할 수 없는 빚까지 남게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게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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