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현(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식을 줄 모르는 인기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종영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여전히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얘기다. 국내에선 이미 시즌2 제작이 예고됐다. 해외에서는 영어권 포함 넷플릭스 통합 1위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많은 이들이 드라마 우영우에 열광하며 애정을 표시하는 데에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그간 드라마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에피소드에 등장

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 매력적인 연기 등 폭발적인 인기의 이유를 한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이다.

물론 같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편은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뜨겁게 달구며 논쟁을 촉발시켰다. 어떤 이들은 굳이 ‘숨겨진 뜻’을 찾아 논란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뒤섞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많은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과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심은 한동한 지속할 것 같다.

필자의 관심을 유독 끌었던 인물은 권민우이다. 로스쿨을 1등으로 졸업할 만큼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장애 때문에 채용이 되지 않다가 겨우 기회를 얻은 우영우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우영우의 동기이자 같은 또래인 '봄날의 햇살 최수연'과 '권모술수 권민우'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드라마 후반에 권민우의 어려운 집안 사정이 일부 소개되고 앞으로 있을 그의 변화가 예고되긴 했다. 하지만 이전의 그의 행보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권민우는 계약직이라는 불안함이 있고 쟁쟁한 집안 배경을 가진 최수연과 처지가 다르다는 점 역시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그래서 ‘권모술수 권민우’가 됐을 개연성 역시 높다.

하지만 이것이 권민우가 우영우를 향한 구조적 차별은 외면하고 자신과 관련한 차별에만 분노하는 요인이 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는 차별에 매우 선택적으로 반응했다. 대부분 사람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일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경험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거나 경험 밖의 세상을 부정하지 않는다. 바로 사람에게는 인지적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공감 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비춰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여 타인의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로 다양한 측면에서 인지적 공감 능력을 발달시킨다.

그 결과 자기가 경험으로 인식하고 있던 한계를 넘어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존재들이 겪는 현실 속 차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 안에 내재된 차별 의식을 성찰하며 나와 다른 다양한 이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면서 인지적 공감 능력을 확장해나간다.

이 지점에서 권민우의 공감 능력은 너무나 떨어진다. 겉으로는 사회생활을 잘할지 모른다. 그는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 강한 ‘강약약강’의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직장 선배나 의뢰인에게 철저하게 굴종한다. 동료인 우영우와 최수연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룸메이트가 누굴 좋아하는지는 헛다리를 짚는다.

우려스러운 사실은 지금 성평등 교육 현장에서 마주하는 청소년 중 일부에게 이러한 인지적 공감 능력 부족이 심각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다양한 차별을 부정하고 일부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반응한다. 다름을 차별하면서 차별하는 것에 익숙하고, 자신들이 인정하는 차별에만 공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차별과 공정은 성평등 교육 현장에서 지금 중요한 화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담은 표현이 언론과 정치권에서 발화하고 확장하면서 최근 사회적 소수를 향한 차별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들은 현실의 복잡한 조건과 맥락을 삭제한 채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약자들의 탓으로 돌리면서 ‘지금 여기의 문제’에만 답하라는 요구를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더 이상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와 다른 무수히 많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한 사회에 누적된 다양한 차별은 그 역사와 맥락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그 무엇보다 인지적 공감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봄날의 햇살 최수연’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최수연 역시 우영우가 늘 로스쿨 1등을 도맡아 온 것에 가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기도 하지만, 적어도 우영우가 취업을 못하는 게 사회적 차별 때문임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우영우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을 준다. 우선 그 정도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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