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을 푸는 법정드라마라는 특이한 소재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자폐라는 장애를 자연스레 알게 하는 긍정적인 면은 차치하고서라도 다양한 사건과 그것을 푸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그중 12화는 ‘미르생명’ 구조조정에 대한 에피소드로 여성의 노동 인권을 다뤘다. 이 사건은 실제 1999년 구조조정을 하며 무수한 계약직을 양산했던 농협 사내부부 여성 우선 해고 사건이 그 모티브다.

IMF 구제금융 여파로 1999년 농협중앙회는 구조조정을 하며 ‘부부 직원’을 ‘상대적 생활 안정자’라고 해 명예퇴직 권유 대상에 포함시켰고, ‘사내부부 중 1인이 명예퇴직 신청을 하지 않으면 남편 직원이 휴직 대상이 된다’는 단서를 붙였다.

이 조건은 사내부부 762쌍 중 688쌍의 ‘아내’ 직원이 사표를 내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우리 사회의 성역할 고정관념과 가부장적 문화에 기반한 농협의 교묘한 성차별적 해고였다. 이에 드라마에서와 같이 시위와 소송이 진행됐지만 패소했다.

드라마를 보며 당시 지인 부부의 일이 생각났다. 이 부부는 함께 농협에서 근무했는데 어느 날 7년 동안 일하던 아내가 갑자기 퇴직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농협에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나마도 첫아이를 출산하며 그만두게 돼 안타까웠다.

여러 은행은 IMF 직후에는 줄어든 인력을 임시직으로 대체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채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목 하에 비정규직은 정착됐다. 은행뿐만 아니라 현재 모든 노동현장의 비정규직 비율은 2021년 8월 기준으로 43%에 달한다.

지난 달 보게 된 ‘평행선’이라는 다큐멘터리도 IMF 직후 정리해고 이후 협상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돼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은 노사 간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파업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던 식당 여성 노동자 전원을 정리해고 했다.

노조가 식당을 인수해 운영하는 편법으로 식당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다. 이후 경기가 회복되며 남성노동자들은 복직됐고 이들도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투쟁을 기점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는 가속됐고 비정규직이 당연시됐다.

만약 그때 현대자동차 노조가 그녀들의 지위를 보장해줬다면, 또한 농협의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었다면 지금의 노동현장이, 노동자의 권리가 좀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농협에서 자행한 구조조정은 부부 중 여성에게만 가해진 것이고,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역시 여성으로 구성된 식당 노동자를 희생시키며 남성 노동자들의 해고를 막았다. 두 사례 모두 노동현장에 만연한 분명한 성차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6월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정책 환경이 변화했고 여가부가 가진 여러 한계를 고려할 때 여가부 폐지는 명확하다”며 “다만 여가부가 하고 있는 기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새롭게 수행할지 모색해서 국민께 필요한 방향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했다.

부처 내에 전략추진단을 운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약 이행을 위한 행보를 펼치는 중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이제 없으며 여가부가 여성만을 위한 차별적 정책을 펼치고 다른 부서와 업무가 중복된다는 등 여가부 폐지에 대한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지금도 성별 임금격차가 존재하며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취업에서의 채용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이 여전히 존재한다.

노동현장에서 성차별을 직면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는 더욱 가혹한 차별을 경험하게 했다. 해고의 1순위는 다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고 돌봄은 가정과 여성에게 떠넘겨지며 많은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지난 7월 1일 ‘여성노동연대회의’를 출범했다. 현재 진행형의 성차별을 부정 당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더 큰 목소리로 세상에 말하며 더 거센 저항으로 성차별에 맞서기 위해 여성노동단체들이 힘을 모았다.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여성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삶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여성노동 5대 요구를 발표했다.

첫째,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둘째,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만들며 셋째,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가 없는 일터를 만들고 넷째, 돌봄중심사회로의 전환과 다섯째, 성평등 노동정책 수립 및 집행력을 강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고용노동부 내 성평등국을 개설하고, 각 지방노동청에 고용평등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해 노동 시장 내 ‘구조적 성차별’을 점검하고,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차별과 불이익에 적극 대응해야 함과 동시에 고용노동부가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정책 추진 체계부터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고, 차별을 하지 않고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자는 아주 상식적인 일이 이렇게 긴 시간 싸우고 쟁취해야 할 문제라는 게 답답할 뿐이다. 그래도 투쟁에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시대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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