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여의도‧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인천투데이|노영민 전 의원은 1977년 10월 12일 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로 체포돼 1979년 7월 17일 출소할 때 까지 644일 동안 감옥에 있었다. 체포될 때 그는 연세대학교 대강당 3층에서 채플(교내 예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공대생들 머리 위로 갱지에 등사한 유인물 250장을 뿌렸다.

거기에는 ‘국민의 인권을 억압하는 유신 헌법을 철폐하자’는 글이 쓰여 있었다. 요즘 같으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넘쳐나는 글들에 끼지도 못할 수준. 250장을 뿌렸다니, 좋아요 25개 정도 받은 글이었을까.

그런데 노영민은 이 글을 250장 배포했다고 해서 즉시 체포됐고, 체포 이후에는 소위 ‘전기 고문’을 당했다. 전기고문 과정에 대해 그는 말하기를, “나 자신도 스스로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기억인 것 같다”면서, 자신의 성기에 전기선을 연결하고 고문을 당하던 얘기를 고통스럽게 끄집어냈다.

그는 이 일로 연세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노동자로 살았다. 훗날 그가 국회의원이 되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것은 그 고통으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노영민 전 의원은 이와 같이 대표적인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세대, 민주화운동 세대의 일원이다.

최근 우원식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노영민 전 의원은 민주화 운동 유공자일까, 아니다. 민주유공자법에 따른 유공자로 인정 되려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했거나 행방불명됐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몸에 중상을 입어 ‘국가 장애 등급’ 판정이 있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유공자로 인정되게 하고 있다. 즉, 민주유공자법은 원칙적으로 죽어야 유공자로 인정받는 법안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전 당대표 권한대행은, 민주유공자법이 “586 운동권들의 자녀를 유공자로 우대하기 위한 셀프 입법이다”라고 비판했다. 악의적인 허위주장이다.

발의자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세대인 이인영, 우상호, 송영길 의원 등은 모두 민주유공자 대상이 아니다.

살아 있지 않은가. 민주유공자법의 대상에 해당하는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등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했던 희생자들은, 대개 20대의 나이에 국가권력에 희생되거나 스스로 삶을 마감했기에 유공자의 특례를 누릴 배우자나 자식을 남기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라는 구호만으로 전기고문을 당하던 시대. 우리는 이제 그런 시대와는 작별을 할 때가 됐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사회개혁의 내용을 생산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에게 정중히 예우를 갖춰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드릴 때가 됐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도식으로는 해설할 수 없는 갈등을 겪고 있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자들과 유족을 위로하면서, 이제 대한민국이 민주 대 반민주의 편 가르기를 넘어 정책적 내용으로 경쟁하는 시대를 선언하는 선언서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지난 7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당 의원 159명과 정의당‧기본소득당‧무소속 의원 등 총 170명의 동의를 얻어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명백히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갈등을 키우기 위한 반대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올해 6월 10일, “반전 반핵, 양키 고홈”을 외치며 분신 사망했던 김세진‧이재호 열사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바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지역적 차별을 당한 광주에 복합 쇼핑몰을 건설하겠다거나, 당내 갈등이 불거지면 제일 먼저 광주로 달려가기만 한다고 해서 한국 현대사의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운동의 서사를 끝내고 미래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정치권은 민주유공자법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 바란다. 한 시대가 끝나려면, 과거를 정리한 역사책이 쓰여야 함은 고금의 진리이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