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시설 공익제보자 박미숙씨의 부당해고 투쟁

▲ 박미숙씨가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서류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에어컨 바람을 피해 앉았다. 그리고 뜨거운 대추차를 주문했다. 바깥 기온은 35도를 오르내리는 상황. 그는 요즘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꺼낸 종이더미를 건넸다. 첫 장을 눈으로 훑어볼 새도 없이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줄줄이 쏟아놓았다.

박미숙(49‧사진)씨. 그는 신학교를 졸업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봉사단체 활동을 하며 어려운 이들에 대한 마음을 키웠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돌보면서도 종교생활과 봉사활동만큼은 놓지 않았다. 연수구에 있는 ㅁ장애인요양시설에서 일을 하게 된 건 2001년 아는 교회 동료를 통해서다.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만 장애인시설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봉사활동으로 하던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월급도 받는다는 것이 가슴 뭉클할 정도였다. 전문성을 갖고 싶어 주말엔 사회복지학 공부를 했다. 사회복지사2급ㆍ보육교사2급ㆍ장애우복지지도사ㆍ요양보호사1급 등, 자격증도 손에 쥐었다.

24시간 맞교대의 고된 근무였다. 시설생활인 중 아픈 이가 있으면, 퇴근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 따라가 곁에서 간병을 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가기도 다반사. “힘들면 그만 두라”는 시설 측의 말에, 군소리 없이 일했다. 실제로 시설측은 근무 중 직원들을 즉시해고 하는 일이 잦았다.

실수를 한 경우엔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 부당하게 해고를 한 뒤, 권고사직이나 개인사정으로 퇴직한 것으로 서류를 처리했다. 그는 퇴근할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갔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가 겪은 ㅁ시설에서 벌어진 일들은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ㅁ시설은 이사장과 원장, 부위원장, 총무 등 관리직을 모두 가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도 알력 다툼이 있어, 직원들은 누구의 ‘줄’에 서느냐에 따라 거취가 달라졌다.

2003년부터 이사장 개인 소유 포도밭에 직원과 시설거주인을 동원해 포도나무 가지치기ㆍ포도 봉지 씌우기ㆍ포도 수확 등, 수시로 일을 시켰다. 이 일은 2008년 인천시의 시정 지시를 받고도 2010년까지 이어졌다. 또 지적장애가 있는 시설거주인을 이사장의 집에 데려가 가정부 일을 하도록 했고, 장애거주인의 장애수당으로 사무실 집기를 구입하는 등, 애초 장애인요양시설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행태가 벌어졌다.

지적장애가 있는 시설거주인들은, 거의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었다. 머리카락도 짧은 커트머리가 대부분이었다. 거실에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 켜 있었고, 마흔 살이 넘은 성인에게도 동요 ‘둥근 해가 떴습니다’를 틀어줬다. 인지 능력에 따른 적절한 사회적응훈련은 이들에겐 먼 곳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시설거주인들은 슬리퍼를 입으로 뜯어 잘라놓고 장판을 찢어 입으로 씹는 등, 다양한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표출했다. 그러면 직원들은 “힘들게 하면 다른 데로 보낸다”는 말로 협박 했다. 시설거주인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져도, 그가 시설 임직원과 연관된 인물일 경우, 시설 측은 그에게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그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먼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식품대장 작성관리제도를 만들고, 시설 직원들에게 강제로 3만원씩 걷던 후원금제도를 없앴다. 24시간 격일근무 교대제를 주야근무제로 바꾸고, 시설노동자들의 정년 연장ㆍ병가 인정ㆍ연장수당 지급ㆍ근로기준법상 연차제도 확립 등, 크고 작은 변화를 일궈냈다.

하지만, 노조를 만든 후부터 그는 늘 뭔가에 시달렸다. 시설 안에서 문제가 생겨 관할 구청이나 시청을 찾아가면, 박씨가 다녀갔다는 얘기가 시설 측에 바로 전달됐다. 노조원들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마음으로 묶이기 어려웠다. 누군가 ㅁ시설의 문제점이 담긴 문서를 노조가 작성한 것처럼 꾸며 시청에 팩스로 보냈다. 구청 게시판에도 글이 올라왔다. ㅁ시설은 그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는 누가 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2010년 12월 12일, 한 직원이 지적장애가 심한 여성거주인의 손을 소변이 적셔진 옷으로 묶어놓고 퇴근해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다음날 이사장을 찾아가 해당 직원을 징계ㆍ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노조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해를 넘겨 2011년 1월에야 감봉 3개월이라는 처벌이 내려졌다. 박씨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이토록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설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 사건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리고 지난 5월 25일, 그는 해고됐다. 시설 측은 징계위원회에서 ▲포도밭 강제노동과 원거리 특정병원 진료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것 ▲소변이 묻은 옷으로 손을 묶어놓고 퇴근한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것 ▲인터넷상에 ㅁ시설에 대한 비방글을 올려 시설의 명예를 훼손시킨 것 ▲거주장애인에게 반복질문을 해 인권을 침해한 것 등, 징계 사유 아홉 가지를 들어 그를 해고했다.

박씨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놓았다. 시설 측은 두 차례 반박문을 보내왔다. 그는 반박문에 대한 반박문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그는 고된 노동의 끝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 허망하다고 했다.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시설의 삶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리고 모든 이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바란 꿈이, 철옹성 같은 성벽에 부딪혀 깨질 수는 없다고 했다. 차갑게 식은 대추차를 마저 들이키며 그는 무거운 가방을 다시 챙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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