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번외편 ⑧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부락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이번에 쓴 글은 번외편입니다.<편집자주>

“그냥 서울로 이사 오지 그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대사이다. 경기도 변두리 소도시에 거주하는 주인공이 집이 멀어서 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자 동료가 무심하게 던진 말이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 서울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지방 도시인이 겪는 비애를 서울 ‘특별’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렇게 무심한 말을 던진다. 오죽하면 서울은 도시 이름조차 ‘특별’한 특별시이겠는가. 이름에서부터 서울은 다른 모든 도시와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도시인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 주변의 지방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은 가상의 도시인 경기도 산포시에 살고 있다. 산포가 어디냐고 묻는 서울 사람에게 수원 근처라고 답하고(서울사람들은 서울 이외의 도시 위치를 잘 모른다), 강남에서 택시비가 3만원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기흥 정도에 위치한 경기도 소도시라고 추측할 수 있다.

드라마의 배경은 경기도의 가상 도시이지만, 주인공들이 표현하는 지방 도시 거주민의 비애는 인천 시민들도 똑같이 공감하는 감정이다. 인천은 인구 300만명에 육박하는 한국의 3대 도시이지만, 특별한 서울시에 비하면 그저 수많은 지방 도시 중 하나일 뿐이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홈페이지 갈무리.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 시민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지방도시겠지만, 서울과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 인천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심하다. ‘이부망천’ 즉 이혼하면 부천으로 이사 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이사 간다는 어느 정치인의 비하 발언은 경기도 소도시보다 오히려 더 인천이 비하되는 현실을 잘 나타낸다고 하겠다.

그런 이유로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에서 묘사되는 인천은 다분히 주변부이고 음울하고 어둡다. 서울에서 밀려난 산업 시설, 혐오시설, 수도권쓰레기매립지 등으로 상징되는 인천은 그래서 인터넷에선 ‘마계인천’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한민국 3대 도시의 현실이 이렇다보니 인천이 배경이 되는 미디어 콘텐츠는 대부분 어두운 조직폭력배의 세계나 범죄, 그리고 소외되고 밀려난 주변부 인생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김혜수 주연의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인천 차이나타운은 온갖 불법이 난무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막장 인생들의 무대이다. 현실의 차이나타운은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관광지이지만, 미디어에 묘사되는 모습은 이렇듯 음울하고 어둡다. 이런 이미지는 그대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각인된다.

영화 ‘신세계’에서 주인공 조폭들은 서울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이 잔인하게 사람을 살해하는 장소는 인천의 부둣가이다. 밀수가 이뤄지는 주 무대로 인천 항구와 인천 세관이 묘사된 미디어 콘텐츠 또한 부지기수이다. ‘파이란’의 삼류 건달 최민식이 활동하던 무대도 인천이다. 심지어 조폭의 세계에서 조차 인천은 주류가 아닌 주변부 삼류 건달로 묘사된다.

인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가장 잘 묘사한 영화로 ‘고양이를 부탁해’를 꼽을 수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이제 갓 청소년기를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딛는 소녀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인천은 주변부로서 갖고 있는 정체성과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주변부 인생인 주인공들은 곧 서울과 대비된 인천의 모습이다. ‘이부망천(서울에서 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이라는 조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필자는 인천에서 초중고를 모두 졸업했는데, 동창회를 할 때면 인천 시민으로서의 비애를 느낀다. 인천 학교의 동창회이지만 대부분 서울에서 모임을 갖는다. 인천을 떠나 서울‘특별’시민이 된 동창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모임 도중에 전철 막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어나서 비슷한 처지의 군상들이 가득한 전동차에 몸을 싣고 인천으로 귀가할 때면 ‘나의 해방일지’ 주인공들이 갖는 바로 그 심정을 진하게 느낀다. 매일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주변부 도시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을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추진하다 무산된 행정수도 이전은 인천시민으로서, 아니 비 서울시민으로서 갖고 있는 아쉬움이다. 서울에 기반을 갖고 있는 기득권 층, 특히 서울이 관습법으로 수도이기에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희대의 판결을 내린 법관들로 대표될 수 있는 서울특별 기득권 시민들의 특별한 이기주의로 인해 그나마 지방이 숨통이 트일 기회가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서울공화국은 지속적으로 더욱 공고해지고, 지방의 피폐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현실은 이런데, 언론에서는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만 말하고 있다. 당선인이 청와대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집무실을 죽어도 옮겨야 하겠다면, 이참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옮기는 것이 올바른 방향 아니겠는가.

언론에서 이런 점을 짚어줄리 만무하니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아쉬워서 해보는 소리이다. 법사나 도사가 나서서 한마디 해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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