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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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인천투데이|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전후해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무렵, 국내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동학군이 겪은 잔혹한 학살의 경험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항일운동의 전면에 나섰고, 일부는 간도나 연해주로 이동해 1920년대 항일무장투쟁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동학농민전쟁은 1862년에 발생한 진주민란과 그 뒤를 이어 각지에서 봉기한 농민들의 저항 의식이 축적돼 폭발한 사건이었다.

농민들은 양반체제를 뒤집어엎으려 했던, 한 세대에 걸친 긴 싸움을 끝낸 후, 다시 외세에 의해 구축된 신질서를 전복시키는 ‘척양척왜’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세대 전환을 거쳐 식민지라는 상황과 맞닥뜨리자 이번에는 일본을 주적으로 한 항일운동의 대열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만주벌을 질주하며 일본군을 무찌르는 독립군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을 때쯤, 광복과 한국전쟁이 연달아 찾아왔다. 외세와의 갈등은 민족 간의 전쟁으로 전환됐고, 세상은 이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쟁 복구와 먹고 사는 일에 짓눌리면서 자유와 인권은 철저히 외면받는 시절이 이어졌다.

이념을 무기로 휘두르며 폭압을 이어 가던 독재정권의 생명은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질겼다. 더 이상의 전쟁은 없었지만, 과거에 농민들이 그러했듯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국민들의 항쟁은 멈추지 않았다.

1980년에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며 드디어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1987년의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을 민주화된 시민사회의 길로 이끄는 전환점이 됐다.

민주화 세대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 ‘광우병 파동’이 발생했다. 이제는 어렵게 찾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거리에 나왔다. 이후 촛불집회는 평화시위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른바 촛불세대가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2017년의 대통령 탄핵을 이끈 것도 이들이었다.

대략 한 세대가 지나면 역사를 전환시키는 큰 사건을 겪게 된다는 이론이 있다. 그걸 ‘30년 주기설’이라고 한다. 세대와 세대가 교차하면서 전쟁이 발발하거나 혁명이 일어나고, 혹은 경험하지 못한 경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건 달리 말하면 한 세대가 이끌어 가는 시대가 적어도 30여 년간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어떤 세대의 특성이 그만큼의 시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뜻이다.

과거의 사건들을 반추해 볼 때, 30년 주기설의 이론은 깨지는 게 좋다. 전환기를 통과하는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개벽을 기다렸던 농민군의 좌절이 그렇고, 민주화를 꿈꿨던 시민들의 희생이 그렇다.

탄핵으로 대통령을 퇴진시킬 때까지 겪어야 했던 국민들의 고통을 헤아려도 역사의 급격한 전환은 피해 대중의 양산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고통이 아니라 성장을 통해 시대를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예측해 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세대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촛불세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들이 부모가 돼 낳은 아이들이 20대와 30대가 돼 활동하게 될 때는 2040년대쯤이 된다. 그때까지 우리 사회가 촛불세대의 정신에서 크게 벗어날 가능성은 적다. 일희일비할 사건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큰 흐름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향후 30여 년을 끌고 갈 현 세대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은 어렵다. 세대 차이를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몇 가지 현상으로 조금이나마 접근해 볼 수는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현상이 근래에 유행하고 있는 소위 ‘갓생 살기’다.

‘갓(God)’과 ‘인생’의 조합어라는 이 말은 작은 목표를 반복적으로 성취하면서 원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로 쓰인다. 자신이 만든 하루의 계획을 시간을 쪼개 달성하는 이러한 생활 방식은 이미 예전부터 수없이 권장되던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갓생 살기는 미래의 기대감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서 만족감을 얻고자 한다는 데 더 큰 목표를 둔다는 점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것도 이러한 문화가 유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텐데, 그렇다고 해서 혼자 만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SNS 등으로 서로의 성취 과정을 공유한다는 게 갓생 살기를 즐기는 세대의 특성 중 하나이다. 앉아서 공부하는 영상이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이나 잘 이해는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신의 가치에 몰입하지만, 광장에 모이는 것 역시 주저하지 않는 것이 현 세대이다. 광장에만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다. ‘갓생’을 살고자 하는 촛불 세대가 만들 30여 년의 역사가 궁금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민주화 세대와 촛불 세대가 공존하며 살아갈 시대의 끝이 다시 독재나 광기의 시대로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이다. 그러한 결말을 막기 위해서는, 그래서 그 다음 세대가 희생을 거름 삼아 역사적 전환을 거치지 않기 위해서는, 세대 간의 공유와 연대가 멈춤 없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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