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헌 바른구조기술 대표(토목구조기술사·건설안전기술사)

김의헌 바른구조기술 대표(토목구조기술사·건설안전기술사)
김의헌 바른구조기술 대표(토목구조기술사·건설안전기술사)

인천투데이│건설현장의 기본적인 목적은 기한 내 목적물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용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세우려면 이에 상응하는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건설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도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부분이다.

건설현장마다 주어진 시간과 필요한 예산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같은 설계의 건물을 한 동 세우더라도 누가,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시간과 돈이 달라진다. 이 경우 책정된 시간과 예산이 서류 상 동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투입되는 시간과 돈에 반드시 차이가 존재한다.

건설 프로젝트는 주변 여건, 날씨, 경제 여건, 민원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여기에 건설 특성 상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점도 큰 변수로 작용한다. 문제는 건설현장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시간과 돈은 항상 현장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사업주는 시간과 돈을 줄여야 이익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시공사 간 경쟁에서도 더 빠르고 더 싸게 짓겠다고 하는 게 수주와 원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발주처도 예산을 아끼면서도 자신들이 기대한 기한 내에 건설을 완공하고 싶어 한다. 만약 현장 목표 달성에 필요한 실질적인 시간과 돈이 부족하면 현장 어딘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안전관리다.

아래 표는 건설현장에서 시간과 돈에 각각 여유 조건과 부족 조건이 주어질 때, 각 조건에 따른 안전관리 수준을 나타낸 것이다.

돈과 시간 모두 여유가 많은 현장은 안전관리가 잘 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에 여유는 있는데 돈이 부족해도 기본적인 안전관리 준수는 이뤄진다. 현장은 제도적으로 안전관리 예산에 해당하는 ‘안전관리비’를 편성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 시간이 부족하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현장 예산은 여유가 있지만 시간이 부족한 경우 안전관리가 다소 미흡할 수 있다. 안전관리는 시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이 없으면 안전관리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는 현장에 돈과 시간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건설현장의 기본 목적은 기한 내 목적물 완성이다. 이 궁극적인 목적만 달성하기 위해 앞만 보면 안전은 뒷전이 된다. 기한 내 완공이라는 목적 외에 다른 데로 눈을 돌렸다간 적자와 비난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건설현장의 돈과 시간의 관계를 통해 현장 안전관리 개선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 관계에 따르면 현장 안전관리는 돈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돈이 부족해도 기본적인 안전관리 예산이 주어지기 때문에 시간만 주어지면 최소한의 안전관리는 가능하다. 반면 시간이 부족하면 돈이 있어도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장 안전관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돈도 돈이지만 시간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전하게 공사할 수 있는 기간 ‘안전 공기’

필자는 2년 전 건설안전기술사를 취득했다. 건설안전기술사 면접 마지막 질문이 ‘현장 안전관리 개선방안’이었다. 그때 필자는 ‘안전공기’라는 단어를 내세워 설명했다.

심사관들은 안전공기라는 단어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을 것이다. 안전공기는 필자가 지어낸 말이다. 안전공기란 공사기간 중 안전을 위한 공사 기간을 의미한다.

공사기간에 안전을 위한 별도의 시간이 없다. 순수하게 공사를 위한 기간만 있다. 안전공기는 안전을 위한 별도의 공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장에선 늘 상충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공사기한과 안전이다. 공기가 급한데 늘 안전이 발목을 잡는다. 앞서 얘기한 시간과 돈의 관계에서 설명한 부분이다. 안전하게 해야 하는데 공기가 부족하다. 이 경우 안전은 차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잘못된 상황이다. 현장에서 안전이 옵션이 돼서는 안 된다.

건설현장이라면 공기와 안전은 모두 지켜야하는 의무다. 그럼에도 만약 이 둘이 상충하는 상황이 생기면 안전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사업에 이해관계가 얽힌 조직과 개인은 안전을 우선하기 어렵다. 사람은 당장 눈앞의 이익과 손해가 먼저 들어오기 마련이다. 현실이다. 필자 역시 그랬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안전공기’다. 제도적으로 안전공기를 부여하면 어떨까. 공사기간 산정 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적정 안전기간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공사규모, 공사종류, 지역 등 변수를 고려해 의무적으로 안전 공사기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장에선 주어진 안전기간에 안전 활동만 하게 한다. 현장에 필요하거나 미비한 안전시설을 정비하고, 위험한 공사 개선을 위한 활동도 안전기간에 집중한다. 안전기간은 안전관리비와 마찬가지로 잘 쓰고 잘 활용하는 제도로 적용할 수 있다.

현장에서 돈과 가장 직결되는 게 공사기간이다. 기발한 공법과 가설엔지니어링으로 공사기간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량과 여건 상 제약이 따른다. 대다수는 공기단축을 위해 안전을 아끼려 한다. 이익에 목숨까지 걸기도 한다.

안전을 선택과 절약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하는 대상으로 만들면 된다. 현장 모든 직원이 제 임무 제쳐두고 순서대로 현장에 나가 안전지킴이를 하는 이런 비효율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안전을 지키면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편, 시공사가 안전공기를 자발적으로 정한다면 효과가 퇴색될 수 있다. 안전공기는 잘 정착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 빨리 하게 경쟁하면 곤란해진다.

면면히 따지고 들면 안전공기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 따르는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늘 새로운 제도는 기존의 틀을 깨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어색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다면 적극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처벌만 강화하지 말고 말이다.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는 어떤 물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을 차별 않고 널리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수용할 때 공론장이 형성되고 사회가 건강합니다. <인천투데이>는 다양한 의견을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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