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 제82회 인천마당 강연
"관광 산업 외부 종속적, 외국인 관광객 많아도 발전 어려워"
"관광 산업으로 지역 활용할 때 정당한 대가 치러야 공정"
"포스트 코로나 시대 관광은 ‘특정 소수’ 형태로 진행될 것"

인천투데이=김샛별 기자 | “지역주민의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삶에 관광 산업이 얼마나 기여하는지가 중요하다. 관광객과 지역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관광이 필요하다”

사회적 기업 ㈜공감만세 고두환 대표는 제82회 인천마당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는 지난달 29일 온라인으로 제82회 인천마당을 개최했다. 고 대표는 이날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고 대표는 2009년 여행 분야 사회적기업인 ㈜공감만세를 창업했다. 공감만세는 청소년 여행학교, 국내·외 공정관광 사업 등을 하고 있다. 공정관광은 여행자와 여행국 국민들이 평등한 관계를 맺는 관광을 뜻한다.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유튜브 영상 갈무리)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유튜브 영상 갈무리)

외국인 관광객 많은 네팔이 최빈국이 이유, ‘누손율’

고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네팔을 예로 들어 공정관광을 설명했다. 네팔은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함에도 최빈국에 속한다.

관광 수입이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누손율’ 때문이다. 누손율은 관광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다른 지역으로 새는 현상을 뜻한다.

네팔 여행에서 관광객들이 쓰는 비용 중 70~85%는 외국인 소유 호텔이나 관광 관련 회사 등에 의해 해외로 빠져나간다.

고 대표는 “관광 수익 덕분에 지역 주민들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관광 산업 구조가 외부 종속적이면 내부가 발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 산업이 지역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관광 산업 발달로 관광객이 여행하기 좋아진 만큼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고 대표는 공정관광을 제주 올레 등과 같은 관광 상품이나 콘셉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정관광은 관광 구조가 불합리함을 깨닫고 공정한 거래 형식으로 관광을 운영하는 방안을 고민하며 나온 방법론이다.

계단식 논 훼손 겪은 이푸가오 살린 ‘공정 여행’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의 ‘계단식 논’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광 수요가 급증했다.

하지만 불과 6년 후인 2001년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블랙리스트)’로 재분류됐다.

지역 주민들이 농사 대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에 매달리다 보니 농사 시스템이 무너져 논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유엔은 논을 복원하기 위해 이푸가오를 찾았다. 유엔이 본 그곳의 모습은 6년 간 관광 수익이 있었다는 게 무색할 만큼 도로 등의 인프라가 열악했다.

대부분의 관광 수입은 아이들을 해외나 수도인 마닐라로 유학 보내는 데 사용했고, 유엔은 유학을 떠난 사람들을 ‘귀촌해 지역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유엔의 권고에 귀촌한 유학생들은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SITMO)’ 본부를 구성했다. 시트모(STIMO)는 비정부기구(NGO)로 유엔의 보조기구인 '유엔개발계획(UNDP)'의 협력단체다.

이푸카오 계단식 논.(출처 고두환 대표 자료)
이푸카오 계단식 논.(출처 고두환 대표 자료)

시트모는 이푸가오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에 비해 관광 수익이 적은 이유를 고민했다.

이유를 살펴보니 관광객들이 논이 있는 지역을 잠깐 구경하고 갈 뿐 숙박하거나 음식을 사 먹지는 않았다.

지역에 머무르며 도움이 되는 공정한 관광객을 조사한 결과, ‘교수’라는 답을 얻었다.

교수들에게 이푸가오는 매력적인 연구지였다. 제사장과 족장이 구분돼 있었으며,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덕분에 인류학자와 고고학자, 사학자 등은 이곳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며 일정 기간 동안 머물렀던 것이다.

시트모는 교수들을 비롯해 지역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만 관광객으로 받기로 결정했다.

이후 유엔개발계획과 새로운 여행 과정을 만들기도 한다. 관광객이 이곳까지 오면서 파괴한 계단식 논을 표식화해 그만큼 자원봉사나 기부할 것을 권고했다.

고 대표는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의 경우, 인구는 68만여명이지만 1500만명 이상이 제주도를 방문한다"며 "제주도 주민들은 지역이 향유당하고 활용당할 때 정당한 대가를 받기를 바랐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푸가오는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주였지만 이러한 사업들을 거치며 공립 도서관을 건설하고 보건 사업을 시작하는 등 형편이 나아졌다.

“모든 지역은 그 지역을 여행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고 대표는 흥미롭게 여행 실험을 한 곳으로 인천과 인접한 경기도 시흥을 꼽았다.

2014년 경력 단절 여성들이 평생학습마을 특화사업으로 여행사를 운영하겠다며 고 대표를 찾았다.

고 대표는 “시흥은 서울이나 부산같이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로 생각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시흥에 올 수밖에 없는 이유’와 ‘시흥에 와야 하는 사람들’을 찾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국내 모든 지역에는 반드시 그 지역을 여행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우리지역 알아보기’라는 단원이 있다. 이 단원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여행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여행을 학교 교사들이 다 시킬 수 없었다. 이를 대신해 서울 소재의 사교육 업체가 맡았지만 학부모들의 불만이 컸다. 아이들을 잘 아는 사람도, 지역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국내 모든 지역에는 체험학습을 할 만한 유적지나 습지 등이 있고,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지역 기반의 여행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다수 지역이 이를 고민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이 모인 조직은 이 점에 착안해 여행사를 창업했고, 억 단위의 매출을 올리며 현재 7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내 지자체 30여개는 앞서 설명한 ‘공정 관광’과 관련한 내용을 조례로 지정했다. 2017년 대전이 가장 먼저 지정했고 인천시와 군구는 지정하지 않은 상태다.

대전은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제과점 '성심당'의 튀김소보로가 유명해지면서 대전역을 중심으로 관광객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이 급격히 발생했다.

대전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관광 사업 수입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회복지 체계들을 마련하기 위해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고 대표는 올해 10월 14일부터 시행한 ‘관광진흥법제 제48조 3항’이 지닌 함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과 관광 산업의 상생을 추구하며 관광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에너지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환경 훼손을 줄이며, 지역주민의 삶과 균형을 이루며 지역경제와 상생 발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관광자원의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정보 제공과 재정 지원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관광은 ‘특정 소수’ 형태로

고 대표는 사람마다 여행과 관광의 의미가 다르지만 관광 산업의 목적은 지역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관광상생지표.(출처 고두환 대표 자료)
지역관광상생지표.(출처 고두환 대표 자료)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관광은 인간의 자유 행위일 뿐, 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이후 한국관광공사와 서울대는 새로운 관광 평가 지표를 개발했다. 이전까지의 지표는 관광객 수와 매출에만 그쳤다.

새로운 지표는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느끼는 행복도가 얼마인지 장애인, 노인, 영유아 등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등을 함께 평가한다.

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관광은 특정한 소수가 함께하는 형태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고 대표는 “코로나19로 불특정 다수가 짧은 기간 동안 여행하는 방식은 종말을 고했다”며 “앞으로는 여행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특정한 목적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광 산업은 반드시 여행해야 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며 “반드시 여행하는 사람을 찾고 맞이할 만한 준비가 돼 있는가를 확인하는 게 지역 관광산업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