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휴가' 이란희 감독
콜트·콜텍 장기 복직 투쟁 모티브 영화 ‘휴가’ 제작
등장인물 '재복'으로 해고노동자에 대한 편견 해소
"가난한 사람들이 긍지갖고 사는 모습 다루고 싶어"

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관객들은 해고노동자 또는 사회적 참사 유가족 농성 모습을 주로 뉴스나 라디오로 접한다. 영화 ‘휴가’는 공적 의미가 아닌, 사적 영역에서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투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는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휴가’ 이란희 감독의 말이다. '휴가'는 콜트·콜텍 장기 복직 투쟁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다. '휴가'의 등장인물과 상황은 허구이다. <인천투데이>는 영화 개봉 전 지난 4일 이란희 감독을 만나 인터뷰 했다.

이 감독은 명지대학교 재학 시절 문예운동 동아리인 '극예술 연구회' 활동을 했고, 극단 ‘한강’에서 8년간 배우와 기획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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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극단 ‘한강’에서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연극을 8년 정도했다. 이 경험이 영화 소재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며 “특정 사회 문제를 영화로 만들 때, 관찰자로 조사하고, 연구하며 상황을 관객들에게 잘 보여주고자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란희 영화감독.
이란희 영화감독.

영화 ‘휴가’는 해고 5년차, 천막농성을 1882일째 하고 있는 A노동조합이 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조합원 재복이 열흘 간 인천 집으로 휴가를 가며 벌어진 일을 담고 있다.

재복은 오랜만에 집에 와서 가족도 챙기고, 인천의 한 가구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열흘 휴가가 끝나고 가족과 지인은 재복이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만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 ‘휴가’는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대상, 제64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금문상-심사위원 특별언급, 정동진영화제 땡그랑동전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 7월 열린 제17회 인천여성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콜트·콜텍 장기 복직 투쟁 모티브로 ‘휴가’ 제작

이란희 감독은 전원 해고를 당한 기타공장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장기 복직 투쟁 상황을 모티브 삼아 영화 ‘휴가’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관객들은 해고노동자 또는 사회적 참사 유가족 농성 모습을 주로 뉴스에서 접한다. 뉴스는 사적인 얘기를 담지 않고, 주로 공적 의미와 정보를 담는다”며 “영화 ‘휴가’는 해고노동자가 장기간 복직 투쟁을 하며 사적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투쟁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앞서 이 감독은 2016년 콜트·콜텍 노동자가 투쟁 과정에서 결성한 콜트콜텍노동자밴드(콜밴)과 함께 단편영화 ‘천막’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 ‘천막’도 콜트·콜텍 노동자의 투쟁 상황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영화 '휴가' 포스터.(사진제공 인디스토리)
영화 '휴가' 포스터.(사진제공 인디스토리)

영화의 모티브가 된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은 2007년 4월부터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사측은 국내 공장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며 2007년 4월 인천 부평구 갈산동에 위치한 콜트공장 노동자를, 같은 해 7월엔 충남 계룡시에 위치한 콜텍공장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대규모 정리해고는 명분이 없는 노조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감독은 “2012년 9월 15일 부평공원에서 콜밴 공연을 본 게 영화제작의 계기였다. 몇 년 후 콜밴을 찾아갔고, 천막농성장을 오가며 취재하기 시작했다”며 “무척 오랜 기간 투쟁이 계속 됐다”고 회상했다.

콜텍 해고노동자는 복직 투쟁을 한 지 13년 째(4464일) 되던 지난 2019년 4월 사측과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콜텍 해고노동자 3명 복직 후 퇴직, 국내 공장 재가동 시 희망자에 한해 우선 채용, 금속노조 콜텍지회 조합원 25명에게 합의금 지급 등이었다.

그러나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중 콜트 해고노동자의 복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올해 10월 22일 기준 5375일 째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재복'은 해고노동자에 대한 편견 해소 하는 인물 

영화 속 준영(왼쪽)과 주인공 재복.(사진제공 인디스토리)
영화 속 준영(왼쪽)과 주인공 재복.(사진제공 인디스토리)

영화 ‘휴가’ 주인공 재복은 인천의 한 가구공장에서 휴가동안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목공소 직원 준영을 만난다. 준영은 일을 하다가 다쳤고, 재복은 준영이 산재를 신청 할 수 있게 돕고, 준영의 집 보일러를 수리해준다.

이 감독은 해고노동자인 재복을 선한 인물로 그려 관객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게 표현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재복은 회사에서 다친 준영이 본인 돈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하니 굳이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산재 신청서를 가져온다. 또, 준영에게 반찬을 주기도 한다”며 “재복이 준영에게 하는 행동으로 좋은 어른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재복에게 호감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은 해고 후 복직 투쟁을 하는 노동자를 두가지 시각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가족 고생시키는 못난 사람’, 두 번째는 ‘막연히 우리가 도와야할 불쌍한 사람’이다”며 “실제로 해고 노동자는 아침마다 1인 시위를 하고, 매일 빡빡한 일정을 보낸다. 해고 노동자를 열심히 사는 명예로운 사람이자 선한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또, 이 감독은 '준영의 산재 신청 일화'를 넣은 이유가 관객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 감독은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노동자는 노동자 입장에서 처신하지 않고, 자본가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며 “착하다는 미명아래 젊은 층도 이런 경향이 많다. 학교가 노동권을 교육하는 게 필요하다. 관객들이 아르바이트할 때 (준영의 경우처럼) 저런 적 있었나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영화 말미에 고등학생 현장실습생이 주안 목공소에 실습을 하러 온 장면이 나온다. 현장실습생은 제대로 된 실습복과 안전화를 착용하지 않은 채 실습을 나왔다.

이 감독은 “영화 ‘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현장실습생 사망 소식을 많이 접했다. 그래서 극중 현장실습생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다”며 “학교는 임금체불과 산재 등 노동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영화 속 준영이 삼선슬리퍼를 신고 실습을 간 장면은 실습생이 무방비로 실습에 투입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긍지갖고 사는 모습 다루고 싶었다"

주인공 재복(왼쪽에서 두번째)이 가족과 식사하고 있다.(사진제공 인디스토리)
주인공 재복(왼쪽에서 두번째)이 가족과 식사하고 있다.(사진제공 인디스토리)

극중 재복은 열흘 휴가를 마치고 어떤 ‘선택’을 한다. 이 감독은 콜텍 해고노동자인 임재춘씨를 생각하며 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이 감독은 “처음부터 결론은 정해져있었다. 장기투쟁하는 해고노동자가 농성장에 복귀하기 전까지 과정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며 “임재춘씨는 농성장에서 밥을 챙겨주던 사람이다. 임재춘씨는 농성장을 떠난 적이 있지만, 늘 다시 돌아와 본인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임씨의 단식을 계기로 투쟁이 끝났다”고 말했다.

이어 “재복은 가족도 포기할 수 없고, 투쟁도 포기할 수 없고, 동료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 끝내고 올게’라고 한다”며 “해고노동자는 매번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투쟁을 끝내겠다'는 약속을 못 지키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란희 감독은 앞으로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이 대화할 거리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은 “관객이 극장을 나서는 순간 시작되는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유난히 마음을 끄는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이 너무 극단으로 양극화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명예롭게 살기 힘든 시대가 됐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자긍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는 모습을 영화에서 다루고 싶다.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분투하는 지 영화로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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