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인천투데이│‘문화재 기본계획’이란 것이 있다. 문화재청장이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 법정계획이다. 문화재보호법 제6조에 관련 사항이 규정돼 있다. 여기에는 문화재의 보존, 관리, 활용에 관한 종합 계획이 담긴다.

향후 5년간 중점적으로 추진될 정부의 문화재 정책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본 자료다. 이 계획에 근거해 시장과 도지사도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내년이면 다시 2022년부터 2026년에 걸친 새로운 계획을 결정해 발표해야 한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화재 정책 또한 주변 여건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큰 틀에서의 정책 방향은 변함이 없지만, 시대의 변화를 감지해 앞으로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담을 수밖에 없다.

현재 추진 중인 문화재 기본계획은 전 시기의 것과 비교해 몇 가지 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그것을 주목해 읽어 보면, 문화재 관련 분야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이슈를 가늠할 수 있고, 향후의 정책 흐름에 대해서 예상할 수 있다.

먼저, 문화재청이 제시한 과제 중 눈에 띄는 것은 일상성의 확보다. 문화재가 가끔 시간을 내서 찾아가 보는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유산으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현장성이 강화돼야 하고, 지역 중심으로 관리와 활용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고분 언박싱(unboxing)' 등의 형태로 발굴 현장이 유튜브에 생중계 되는 것도 이러한 원칙에 근거를 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상성이란 개념은 초고령사회 진입이란 사회 현상과 연결돼 있다. 2040년이 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이 32.3%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는 상태다. 흔히 생각하기에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 문화재를 찾는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유적지 등의 방문객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는 이것이 ‘역설적’이라고 판단했다.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노령인구가 늘어나더라도 문화재를 향유하려는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과제는 신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문화재 보존과 관리 분야에서 과학기술의 성과는 지속적으로 접목돼 왔다. 그런데 이제는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 분위기다. 빅데이터나 사물인터넷(IoT)은 흔한 기술이 됐고, 집에서도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360도 가상현실(VR) 전시관 등도 박물관마다 앞 다퉈 도입하고 있다.

신기술의 도입은 문화재를 24시간 관리 체제로 바꾸는 것은 물론,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기술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아마도 향후 5년간은 메타버스(가상현실을 한단계 뛰어넘어 사회·경제 활동까지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 시대에 맞춰 가상현실 속의 복원과 활용이 새로운 화두로 대두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문화재는 지금과 차이를 갖는 또 다른 ‘무엇’으로 개념이 확장될 여지도 있다.

마지막으로 기본계획에서 관심을 기울인 것은 남북관계의 변화다. 개성 만월대를 공동으로 발굴하기도 했던 문화재 교류 협력 사업은 한반도 정세가 경색됨에 따라 중단되거나 축소된 상태다. 하지만, 통일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것은 문화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외면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북한의 문화재 현황에 대한 기초 자료를 계속 확인해 가는 것은 물론, 정보와 인력 교환,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나 유출 문화재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앞으로 5년 내에는 주요 유적지에 대한 상호 방문의 기회만이라도 열릴 수 있을지, 희망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문화재는 이제 단순히 옛것으로 대접을 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도 여전히 생명을 유지해 가는 유산이고, 국민이 직접 손을 대며 소통해 가는 대상이다.

인천에도 문화유산이 많은 편이다. 특히 근현대유산은 그 수나 가치면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2022년에는 그 위상에 걸맞는 고도화된 문화재 정책이 수립되어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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