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조선학교를 통해 바라본 한반도 통일문제’
일본 정부의 눈엣가시인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
일본 정부는 차별, 한국 정부는 외면한 재일조선인

인천투데이=박소영 기자│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이나 수탈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이 1945년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들과 그 후손은 현재 ‘재일조선인’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은 해방 직후 조국 귀환을 염두에 두고 한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교육하기 위해 국어강습소를 만들었다. 자발적으로 만든 국어강습소는 1945년 당시 일본 전역에 400~500개에 달했다.

1945년 10월 재일조선인연합(조련) 결성 이후 국어강습소는 체계화된 조선학교로 발전했고, 재일조선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민족교육의 중심이 됐다. 조련 결성은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 전이었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일본사회에서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언제나 불안정하다.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심하거나 덜심하거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됐다.

국내 시민단체 ‘몽당연필’은 한국에 재일 조선학교를 정확하게 알리고,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시민들과 연대해 조선학교 차별 철폐 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26일 우리겨레하나되기인천운동본부가 개최한 8월 월례강좌에서 ‘재일 조선학교를 통해 바라본 한반도 통일문제’를 주제로 한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의 강연을 정리한 내용이다.

치바 조선인초등학원.(사진제공 김명준 몽땅연필사무총장)
치바 조선인초등학원.(사진제공 김명준 몽땅연필사무총장)

미군과 일본 정부의 눈엣가시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

해방 후 재일조선인들은 귀국문제, 안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1945년 10월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을 결성했다. 조련은 국어강습소를 통합하고 정비해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조련은 토지를 빌려 학교를 설립하고, 교재도 자체 만들어 사용하는 등 조선학교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나갔다.

1946년 4월 이후 국어강습소를 3년제 초등학원으로 개편해 초등교육을 실시했고, 같은해 9월 6년제 초등교육기관 정규학교로 발전했다. 이어 1946년 중학교를 설립해 중등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 주도 연합국총사령부(GHQ)는 일본 내 공산당을 자신들에게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고 이들과 교류하는 조련과 조선학교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GHQ는 조련과 조선학교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봤고 ‘조선학교 폐쇄령’을 내렸다.

김명준 사무총장은 “1948년 재일조선인들은 4.24 한신(오사카와 고베지역 ) 교육투쟁을 비롯해 집요한 차별정책에 대항하는 희생을 치루며 조선학교를 지켰다”며 “하지만 GHQ는 1949년 조련을 강제 해산시키고 다시 제2차 학교폐쇄령을 발동했다. 재일조선인들은 학교 습격 등 강제 폐쇄에 맞서 저항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도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조선학교를 지키는 운동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며 “2010년 일본 정부는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만 배제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등 차별을 지속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여권에 '조선적'이라고 적혀있다.(사진제공 김명준 몽땅연필사무총장)
여권에 '조선적'이라고 적혀있다.(사진제공 김명준 몽땅연필사무총장)

사실상 무국적 '조선적'으로 남은 재일조선인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직후 일본국적을 소유하고 있었다. GHQ는 재일조선인을 분류 관리하기 위해 1947년 ‘외국인등록령’을 만들어 조선적이라는 법적 존재를 만들었다.

1945년 8월 해방 후 한반도는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GHQ는 ‘조선적’이란 신분과 함께 ‘일본국적’ 신분을 함께 부여했다.

이후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돼 미군 등 GHQ가 물러나자 일본정부는 당사자 의사와 상관없이 재일조선인들의 일본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했다.

재일조선인은 현실에 없는 '조선적' 이라는 신분만 갖게 됐다.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이 일본인이 아니니 이들에 대한 교육 의무가 없다고 했다. 모든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적 신분으로 남게 됐다. 조선이란 나라는 없으니 조선적은 사실상 ‘무국적’이다.

임시여행증명서와 재입국 허가서.(사진제공 김명준 몽땅연필 사무총장)
임시여행증명서와 재입국 허가서.(사진제공 김명준 몽땅연필 사무총장)

일본 정부는 차별, 한국 정부는 외면한 재일조선인

김명준 사무총장은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도 이 차별에 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당시 양쪽 정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자에게 영주권을 준다고 발표했다. 조선적으로 살면서 난민 신세였던 재일조선인들은 한국 국적과 조선적으로 양분됐다.

김 사무총장은 “법무부는 재일조선인 중 조선적을 한국 국적으로 판단하고, 외교부는 조선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으로 판단한다. 때문에 재일조선인들은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고 ‘임시여행증명서'를 신청하고 발급받아야 한다”며 “임시여행증명서는 외국 여행 중 여권을 분실한 국민에게 1회에 한 해 발급되는 증명서다. 한국 정부는 이를 '조선적' 재일동포에게 발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조선학교는 1세대가 만든 학교를 2~3세대가 굳건히 지켜온 학교”라며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는 일제강점기, 냉전,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과 차별 인식을 없애기 위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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