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간호조무사회 고현실 회장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간호사의 노고에 대한 관심이 높다. 노고는 많은 데 비해 처우는 열악한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른바 ‘간호(조산)법’이 지난 3월 발의돼 국회가 논의를 시작했다.

국회 발의 된 간호법은 크게 세 개다. 세 법안 모두 그동안 의료법이 규정하던 간호영역을 분리하는 게 핵심이다. 의료법에 있는 간호와 간호·조산에 관한 사항을 분리해 간호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게 취지다.

인천간호조무사회 고현실 회장
인천간호조무사회 고현실 회장

법안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의 자격과 업무를 규정한다. 간호법은 간호영역으로 이 세 직종을 규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법안은 간호사협회의 이해와 요구, 입장만을 담고 있다.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도 국내 간호서비스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당사자인데 정작 간호조무사협회와 요양보호사협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빠졌다. 일부 당사자 이해와 요구만 반영한 법안을 제대로 된 법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간호법은 간호사 단체를 설립하게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에서도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 단체에 대한 조항은 없다.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가 법정 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특히 법안 내 간호정책심의위원회에 간호사협회 추천인사는 들어갈 수 있게 했지만 간호조무사협회는 해당 내용이 없다. 이쯤 되면 간호법이 아니라 간호차별법이라 불러야하지 않을까 싶다.

간호협회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OECD 국가와 아시아, 아프리카 등 90여개 국가에서 독립된 간호법을 제정해서 운영하고 있다’며 한국도 독립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간호법 내용과 간호인력 체계와 양성 방안, 간호인력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미국, 영국, 일본 등 국가는 면허 간호사를 2, 3, 4년제 등 다양한 학위과정으로 양성한다. 또 현장에서 활동 중인 간호보조 인력을 대상으로 ‘경력의 사다리 체계’를 둬 간호사를 양성하고 있다.

미국의 간호인력은 간호보조원, 자격간호보조원, 면허실무간호사, 면허간호사의 체계로 구성돼 있다. 직무 역할 간 경력 상승 프로그램도 제도권 교육체계 내에 열려있다.

영국도 간호보조인력은 사업주의 동의를 거쳐 임상의료기관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시간제로 학위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했다. 이후 근무하는 의료기관에 간호사 결원 발생 시 학위과정을 이수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간호인력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뿐이다. 간호조무사가 간호사가 되는 방법은 따로 없다. 간호대학 입시 없이는 간호사가 될 수 없다. 간호조무사로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더 배우고 싶어도 간호조무사 학사 또는 전문학사과정이 없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한 일을 하는데 학원 꼬리표를 붙이고 비하하기 일쑤다.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간호대학에 들어가 간호사가 되라는 말만 듣는다. 발전할 기회가 없으니 비전문가로 낙인찍히고 저임금에 시달린다. 앞서 얘기한 선진국처럼 간호조무사로서 일정한 임상경험을 쌓고 정해진 과목을 이수하면 간호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제도와 간호조무사 대상 간호학과 진학 학위과정이 간호법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간호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영양사 등 여러 보건의료직종이 협업해야 완전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간호법은 다른 직종에 배타적으로 만들어졌다. 갈등만 유발하는 법안이다. 간호법이 간호영역에 종사하는 모든 이를 보호 육성하고, 양질의 간호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국회가 간호인력의 양성과정과 업무량, 업무강도, 업무분장 등 국내 간호서비스 체계와 역할을 개편하는 방안을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간호업계 종사자 모두와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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