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진료실서 알려주지 않는 성인병 이야기(22)

고혈압 = 알코올에는 혈관 확장 효과가 있다. 술을 마신 직후 가끔 실신하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이는 음주 후 혈관 수축이 제대로 되지 않아 기립성 스트레스에 적응하지 못해 저혈압이 생김으로써 나타난 것이며, 서서 소변을 볼 때, 특히 노인에게서 더욱 잘 나타난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저녁 식사와 함께 21% 소주 1병 이상을 마신 직후에는 맥박이 빨라지면서 혈압이 하강했다가, 8시간이 지난 후부터 혈압이 상승하기 시작하며, 술을 끊은 지 24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전 혈압으로 돌아온다. 음주 후 혈압이 상승하는 기전은 확실하지 않다.

예상과는 달리 아세트알데히드가 잘 분해되지 않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에서 고혈압 발생이 더 높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주 후 일시적으로 혈압이 상승하기는 하지만 고혈압 발생 기전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즉 과음에 따른 고혈압 발생 기전은 현재까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많은 역학 조사에서 1일 기준으로 21% 소주 반 병 이하를 마시는 적절한 음주는 고혈압 발생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 이상의 알코올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고혈압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도한 음주와 혈압 상승과의 관계는 40세 이후에서,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폭음을 하는 경우나 매일 마시는 경우, 모두 양에 비례해 혈압이 상승하나, 폭음하는 경우가 규칙적으로 마시는 경우보다 혈압 변동이 더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적으로 설명하면 혈압은 숙취가 해소되면서 정상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일정량 이상의 알코올을 꾸준히 계속 마시면 혈압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음주 습관을 가진 고혈압 환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고혈압 환자에 비해 약물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데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다면 술을 끊거나 줄일 필요가 있다. 금주에 따른 혈압 강하 효과는 1~2주 지나면 바로 나타나고, 체중 조절, 저염식, 운동 등과 같은 비약물요법에 비해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졸중 = 뇌졸중에는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허혈성 뇌졸중과 출혈성 뇌졸중(=뇌출혈)이 있다. 팔다리가 마비되는 것은 같지만 원인에 차이가 있다.

술은 혈압을 높이므로 고혈압과 관계가 있는 뇌출혈은 적정량 이상으로 음주하는 경우에는 음주량과 비례해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전 형성을 막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술은 뇌출혈이 발생할 경우에는 지혈을 방해해 오히려 출혈을 조장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

또한 하루 21% 소주 2병 이상을 폭음하는 경우에는 갑작스런 혈압 상승에 의해 뇌출혈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적정량의 음주를 하는 경우 뇌출혈에 대한 알코올의 효과는 아직 확실치 않다.

허혈성 뇌졸중은 고혈압뿐만 아니라 심방세동과 같은 부정맥, 경동맥의 동맥경화증 등과 같은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알코올과 허혈성 뇌졸중과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술은 혈전 형성을 막는 효과와 동맥경화증 발생을 억제하는 고밀도지질단백의 혈중 농도를 올리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반면, 혈압을 올리고 심방세동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효과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량의 알코올 섭취는 뇌졸중 위험을 그리 높이지 않으나 과음이나 폭음은 어떤 형태로든 뇌졸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양상을 보인다. 과음으로 알코올성 간질환이 생기는 사람은 γ-GTP라는 검사 수치가 상승한다. γ-GTP가 증가할수록 뇌졸중 위험률이 높았다는 보고가 있는데, 이는 과음은 간 손상을 일으키는 것뿐만 아니라 뇌졸중도 일으킴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상동맥질환 = 적당량의 음주는 고밀도지질단백을 약 12% 정도 증가시킨다. 또한 적당량의 음주는 인슐린 매개 포도당 흡수를 향상시켜 혈당 농도를 낮추는데, 이러한 포도당과 인슐린 대사의 변화도 관상동맥질환의 위험률을 낮추는 데 관여하리라 추측되며 이외에도 알코올은 혈소판 응집 억제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와 같은 항혈전작용도 심혈관계 보호 효과와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1991년 미국 CBS 방송의 인기 장수 프로그램인 ‘60 Minutes’에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 편이 방송된 후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이 일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서양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관상동맥질환에 관한 것으로, 미국인에 비해 프랑스인이 포화지방산을 더 많이 섭취함에도 심혈관계통의 질환으로 사망하는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주된 내용이었다.

올리브유를 주로 쓰는 조리 방법, 미국인들과는 다른 식습관 등의 이유와 더불어 프랑스인들이 항상 마시는 적포도주에 포함된 레스베라트롤이나 폴리페놀과 같은 항산화물질들이 심혈관계 보호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알코올 성분이 없는 포도음료 등에도 적포도주만큼의 항산화제가 포함돼있으므로 포도주의 항산화제가 얼마나 심혈관계 보호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맥주나 증류주보다 포도주가 심장에 대한 보호 효과면에서는 낮다는 보고가 있기도 하나 적포도주가 백포도주나 다른 주류보다 더 나은지는 불확실하며,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 다른 맥주나 증류주를 마시는 사람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 낮은 흡연율, 폭음의 횟수가 적고, 식이섭취에 있어 다른 습관 등도 무시 못 할 요인이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알코올이 심혈관질환에 미치는 효과는 다른 심장질환에 비해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이러한 효과는 적당량의 음주에서만 가능하다. 술의 종류에 따른 효과는 많은 혼란 변수가 내포돼있기 때문에 어떤 술이 더 좋으냐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 내리기 어렵다.
▲ 전두수 인천성모병원 심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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