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인천여성회 정책국장.
하루를 선물로 더 받은 것 같았던 2월 29일 아침, 인천 중구에 있는 에스오일 인천 저유소(주유소에 가기 전 석유를 저장하는 곳)를 찾았다. 그곳에는 12년 동안 일해 온 식당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 60일째 출근투쟁을 하고 있는 식당 조리원 여성노동자 서복희씨가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서복희씨의 출근투쟁에 함께 하면서, 여성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대해 뼈아프게 깨달아야했다. 12년 동안 에스오일 인천저유소 정규직들에게 밥상을 차려주었던 비정규직 서씨에게 돌아온 것은 일방적인 계약해지. 어쩌면 집에서 먹은 밥보다 서씨가 차려준 밥을 더 많이 먹었을 원청 에스오일 측은 계약해지에 대해 일언반구 언질도 없었다.

3년 전 직영에서 외주용역으로 전환했으니 자신들이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스오일은 수차례 면담 요청에 꿈쩍도 하지 않다가 인천의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집회를 거하게 한 번 여니까, 겨우 면담에 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면담에서 에스오일 원청 측이 한 이야기는 더욱 가관이었다. 그렇게 나 몰라라 해놓고 한다는 소리가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냐?”라니! 더 기가 막힌 것은, 계약해지 사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교감이 부족’해서란다. 식당 조리원이 ‘교감이 부족’해서 해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도대체 여성노동자에게 원하는 게 무엇일까? “내가 이 나이에 옷이라도 벗고 식당 테이블에 올라가면 되겠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는 서씨를 보며 가슴이 쓰렸다. 단순히 비정규직 차별, 고용 불안이라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여성노동의 현실이 서씨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복희씨를 찾은 뒤 일주일이 흘러 104주년 세계여성의날이 되었다.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성의날이라 그런지 많은 기념행사에서 ‘선택’과 ‘약속’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성을 여전히 투표하는 유권자로만 한정 짓는, 그래서 선거 국면에서 여성의 최선이 ‘개념 투표’인 양 이야기하는 구호들이 영 불편하기만 하다.

104년 전 미국의 대도시 뉴욕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광장으로 거리로 나와 외쳤던 구호는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도 달라!”였다. 장미는 정치적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한 것이었다. 104년 전 그녀들이 요구했던 참정권은 단순히 투표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정치에 참여할 권리’이다. 여성의 일상과 경험이 정치의 의제가 되는 것, 여성의 목소리가 정책이 되는 것, 여성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이래로 대한민국의 성인 여성에게는 법적인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허락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서복희들이 정치의 주인인 적이 없었고, 서복희들이 매일 겪는 억울한 일상이 대한민국 정치의 중요한 쟁점이 된 적도 없었다.

밥 짓는 일, 청소하는 일 같은 돌봄노동은 여자가 집에서 늘 하던 일이니 아무런 기술도 필요 없는 비숙련 저가치 노동으로 폄하되었고, 서복희씨의 사례처럼 밥 짓기 외에 다른 서비스를 요구하고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루아침에 계약해지를 해 버리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선거철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여성일자리 50만 개, 100만 개를 이야기하지만 그 일자리들 대부분은 서복희씨가 겪었던 부당함이 당연시되는 비정규직 장시간 저임금 일자리다. 여당야당 할 것 없이 다 들고 나오는 무상보육이라는 정책도 그렇다.

지금 추진 중인 무상보육 정책은 보육예산을 늘려 가족, 즉 여성 개인에게만 떠넘겨진 보육을 사회(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보육교사들의 노동을 착취해 빈 구멍을 메우는 정책이 되기 딱 좋은 구도다. 보육교사 역시 대다수가 여성이다. 여성노동을 착취해 여성을 위하겠다니, 우습지 않은가?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따로 없다.

세계여성의날이라는 기념일에나 유난떨며 이야기하는 여성이 장미일 수 없다. 선거철 표심을 잡기 위한 조삼모사가 장미일 수는 없는 일이다. 여성들의 노동이 집에서 ‘당연히’ 하던 일로 반찬값이나 버는 부차적 노동이 아니라 이 사회를 지탱하는 값진 노동으로 제대로 평가받을 때, 서복희씨와 같은 여성들이 정치의 주인이 될 때, 그녀들의 일상과 경험이 정치의 의제가 될 때, 비로소 104년 전 여성들이 피로 요구했던 빵과 장미를 쟁취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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