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진료실서 알려주지 않는 성인병 이야기(20)

 

▲ 조금만 마셔도 금세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지는 홍조증을 보이는 사람이다. 간이 나쁜 것이 아니고 ‘알데히드 분해효소’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알코올 분해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제거하지 못하는 이상 체질을 가진 사람이다.
담배와 달리 적당량의 음주는 몸에 좋은 ‘고밀도지질단백’을 증가시키고, 동맥경화증 예방에 도움이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 긴장을 완화시키고, 사교적 소통과 인간관계를 증진시키는 촉매제가 되는 등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술은 중독성 물질이다.

자주 마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술로 인해 정신ㆍ신체적 문제가 발생한다. 과도한 음주는 신체ㆍ심리ㆍ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삶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따라서 무리한 금주보다는 술과 슬기롭게 친해지는 방법이 중요하다. 우선 알코올 대사 과정부터 살펴보자.

 

+ 알코올의 흡수 = 음식물은 먹은 후 위와 장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된 후 장에서 천천히 흡수된다. 그러나 알코올은 다른 음식과 다르다. 알코올은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 들어가면 20%는 위장에서 즉시 흡수되고 나머지 80%는 소장에서 이보다 천천히 흡수되며 혈액을 따라 뇌와 장기, 신체 전체로 퍼져나간다.

술이 흡수되는 속도는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데 위장 내 음식의 양, 음식이 위장에서 장으로 내려가는 속도, 알코올 농도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는 술을 마신 뒤 30~90분 지나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최고가 됐다가 점차 감소한다.

공복이거나, 알코올이 20% 정도일 때 알코올 흡수 속도는 빨라진다. 특히 샴페인이나 맥주처럼 탄산가스가 들어있을 때 흡수 속도가 빠르다. 빈속에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는 이런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쉽게 취하게 된다. 반면 식사 후 또는 식사 중에 반주로 마시는 알코올은 공복 시 음주보다 천천히 흡수된다.

+ 알코올의 분해 = 흡수된 알코올의 2~10%는 호흡ㆍ소변ㆍ땀 등으로 배출된다. 나머지는 위에서 소량 분해되고 대부분은 간에서 분해된다. 흡수된 알코올 성분은 인체의 화학공장인 간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를 거쳐 식초산으로 분해돼, 칼로리로 변한다. 간의 알코올 대사 속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일반인이 1시간에 분해하는 알코올의 양은 대략 10g 정도다.

분해되는 속도는 술을 마시는 양과 속도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그러므로 술을 많이 마실수록 알코올을 분해해 술이 깨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분해되지 못한 알코올이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며 인체의 여러 장기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알코올 분해를 촉진시켜 술을 빨리 깨게 한다거나 술 냄새를 나지 않게 해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지 않는 비법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알코올을 빨리 분해하거나 술 냄새가 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시간이 지나야만 한다.

+ 필름이 끊기는 이유 = 간의 분해 능력 이상으로 알코올을 섭취하면 간에서 분해되지 못한 알코올은 혈액을 따라 온몸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중 특히 뇌에 가서 말썽을 부리는 게 문제다. 뇌는 이상적인 판단 중추인 대뇌피질과 본능적인 판단의 중추인 변연계가 있다. 평소에는 대뇌피질이 변연계를 조절해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알코올은 대뇌피질 기능을 교란한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대뇌피질은 더 이상 변연계를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대뇌피질이 살짝 마비되면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고 감정이 풍부해지며, 농담도 하고, 푸념도 늘어놓을 정도가 된다. 그러나 대뇌피질의 마비 정도가 심해지면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기분만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판단력이 떨어지고 감정 변화가 심해져 울기도 하고, 부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되고, 성적 억압이 느슨해져 성적 활동에 대한 생각이 늘어난다.

흔히 만취한 후 나타나는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취중 발생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알코올이 대뇌 해마와 측두엽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기억 저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술을 마시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금방 술을 시켜 놓고도 또 술을 주문하기도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만, 심해지면 본인이 했던 말과 행동을 측두엽과 해마에 전혀 입력하지 못하게 되므로 다음 날에 전날의 말과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필름이 끊기는 것이 질환은 아니다. 그러나 필름 끊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은, 술에 의한 신경학적 손상에도 음주하는 양상이므로 알코올 중독이 있다는 하나의 지표로 간주한다. 필름 끊김에는 물론 개인차가 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마셔도 필름이 끊어지지 않는 드문 예도 있다.

같은 사람에서도 그날 몸의 상태에 따라 필름 끊김이 빨리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혈중알코올의 양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필름은 끊기게 돼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에 따라 우리 몸이 반응하는 형식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 전두수 인천성모병원 심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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