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나는 물맛을 좋아한다. 큰 머그컵이 하루에도 서너 번은 비워지니 맹물로만 최소 1리터는 족히 마시는 것 같다. 무슨 대단한 물을 마시는가 싶겠지만 별거 없다. 아침마다 정수 필터가 달린 3리터짜리 물통에 수돗물을 거를 뿐이다. 그 어떤 차나 음료도 내겐 이 물맛보다 달콤하지 않다.

최근 벌어진 ‘수돗물 유충’ 사태에 난 몹시 당황했다. 컵에 물을 따를 때마다, 혹 꿈틀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눈에 띄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필터를 유심히 살폈다. 불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둘러싸인 필터는 속이 보이지 않았다. 물맛은 그대로였지만 영 찜찜했다. 그렇다고 생수를 사 마시자니 페트병 쓰레기가 걸렸다. 애라 모르겠다, 그냥 먹던 대로 먹었다. 배탈이라도 나면 나라에서 치료비는 내주겠지. 다행히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엄마는 늘 보리차를 끓여줬다. 여름엔 큰 물통 몇 개씩 채워 냉장고에 두고 시원하게 해서 먹었다. 물통을 닦고, 주전자의 보리차를 옮겨 담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더운 여름에 얼마나 번거로웠을까. 엄마 어렸을 때도 보리차를 끓어 먹었을까? 식수의 변천 과정이 궁금했다.

“옛날엔 그냥 산에서 흐르는 물이나 우물물 두레박으로 퍼먹었지. 보리차를 끓여 먹진 않았어. 수돗물 나오는 집에 살 때(1981년)부터 보리차 끓여 마셨지. 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니까 그랬던 거 같아. 보리차 말고는 뭐 옥수수나 결명자차 정도? 그때는 선택할 것도 없이 그냥 다들 보리차 먹었어. 먹는 물 하면 기억나는 건, 늬 아빠가 쿠웨이트에서 1년(1980년) 일하다가 왔잖아. 그 나라는 마시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데, 물이 콜라보다 비싸서 콜라로 양치질을 한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콜라가 너무 아깝더라고.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것도 상상을 못할 일이지. 근데 이렇게 내가 물을 사 먹는 세상이 올 줄이야.”

수로 발암물질 제거?

# 그들은 이날 증언에서 한 결 같이 안수, 안찰은 박 장로만이 할 수 있고 생수나 캬라멜은 능히 병을 고칠 수 있는 효험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들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들까지도 ○○촌에 입주한 후로는 병에 걸린 일이 없었다고 말하고 김 증인은 생수를 마시거나 안찰을 받더라도 병이 낫고 안 낫고는 모두 신의 역사요 그 자유라 우겨대어 폭소를 자아냈다.(1958.11.26. 경향)

# 담배의 니코틴이 발암물질이라 하여 의학자들의 경고가 대단하거니와 사실상 담배는 끊는 것이 건강에 가장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금연을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생수를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 끽연자는 때때로 생수를 마셔서 니코틴 등 발암물질을 세척할 필요가 있다. 생수를 마시면 건강에 좋고 첫째 비용도 들지 않을 것이다.(1967.3.20. 매일경제 ‘여성살롱’)

오래전부터 끓이지 않은 자연 상태의 물을 생수라 불렀다. 생수는 여름철 세균성 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주의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냥 식수로 사용했다. 그런데 생수에 어떤 효험이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자연물에 신의 뜻이 깃들었다는 것은 오래된 전통신앙과도 관련이 있다. 의학적인 지식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상식이 돼가면서 종교인들의 이러한 주장은 점점 비웃음을 살 일이 됐다. 그러나 생수로 발암물질을 세척한다는 기사는 아무런 제재 없이 신문에 실렸다. 당시 주요 기사들에 한자를 사용했지만, ‘여성살롱’이란 꼭지에 실린 이 글에는 한자가 한 글자도 없다. 한문을 배우지 못했던 이들이 신문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이러한 가짜 생활정보, 또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가십성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오염된 수돗물과 못 믿을 정수기…대안으로 등장한 약수터

# ‘공해에 오염된 도시환경 속에서 대지의 젖줄인 생수를 마시자’면서 극성스런 젊은 친구들이 충청도에서 날라 온 약수를 각 가정에 배달해주는 색다른 모임을 만들었다. (…) ‘코리어 약수건강회’라는 간판을 걸고 생수배달업을 시작한 이들은 발족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회원 1천명을 확보했다.(1972.6.24. 경향)

# 일반가정에서 수도꼭지에 부착하여 물을 걸러줌으로써 수질을 정화시키고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줄 수 있는 정수가 고안되었다.(1970.12.15. 매일경제)

1970년대 들어 대도시를 중심으로 상수도 급수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수돗물의 수질에도 관심이 커졌다.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강들이 급속한 공업화로 오염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울에선 약수나 생수를 배달하는 이들이 등장했고, 정수기 필터를 장착하는 방식을 고안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정수기 사업이 경쟁에 본격 들어선 것은 수질 오염이 사회문제가 된 1970년대 말이었다.

# 수질오염도가 갈수록 높아져 공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수기 제조 및 수입 판매업소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14일 업계에 의하면 국내 정수기 제작 및 수입 판매업소는 (…) 모두 25개사에 달하고 있다.(1979.5.14. 매일경제)

# 한강에 중금속, 유기물 폐수가 기준치를 10배 넘었다는 소식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고 수돗물도 안심 못해 정수기가 동이 나고 있다.(1979.5.31. 매일경제)

정수기만으로 식수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순 없었다. 또한 정수기의 필터나 부품을 자주 교체해야하는 불편함도 컸다. 그렇다고 비싼 생수를 대놓고 마시기도 어려웠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곳곳의 약수터였다.

# 서민들이 식수만이라도 정갈하게 먹고 싶어서 정수기를 사들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정수기마저 믿을 수 있는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집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보리차를 끓여 마시거나 정수한 물을 다시 끓여 마시는 형편이다. 자연 약수터는 붐비기 마련이고 개발되어 약수터 숫자는 늘어만 간다.(1982.9.25. 동아일보)

“수돗물에서 악취가”…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수돗물의 수질은 1980년대 후반까지도 안정되지 않았다.

# 서울시민 7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돗물에 대한 인식 및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76%가 수돗물을 그냥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수돗물 이용 실태를 살펴보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더욱 높아 수돗물을 끓여 마신다는 사람이 81%, 정수기로 걸러 마신다는 사람이 14%였으며 직접 식수로 사용한다는 사람은 불과 5%였다. (1989.3.7. 동아일보)

위 기사에 따르면 수돗물의 이상 경험을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7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상 현상은 “색깔이 뿌옇다(42%)” “이물질이 나온다(36%)” “물에서 심한 냄새가 난다(20%)” 등이었다.

1989년 8월에는 환경청에서 국내 수돗물이 식수로 부적합하다는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각 기업의 공장에서 흘려보낸 폐수가 강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1년 3월, 우려했던 사건이 터졌다. 대구시 수돗물에서 심한 악취가 나 시민들이 수돗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주범은 두산전자였다. 구미공단의 두산전자에서 페놀이 다량 함유된 폐수 325톤과 페놀 원액 30여 톤을 낙동강으로 무단방류한 것이다. 이른바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다.

# 검찰 관계자는 “두산전자가 그동안 비밀배출구를 통해 페놀 폐수를 무단 방류해왔으나 대구 상수도 취수장까지 이르는 동안 물의 자연정화력에 의해 희석돼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며 “이번 오염사태는 다량의 페놀 원액이 유출돼 강물이 자연정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빚어진 것”이라고 말했다.(1991.3.21. 동아일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해졌다. 전국의 약수터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고, 생수도 불티나게 팔렸다. 구미에서 시작한 두산 제품 불매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오비맥주와 두산우유 등의 판매량이 50~60% 감소하기도 했다. 식수 오염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도 커졌다.

낙동강 오염 사건 이후 정수기와 생수의 판매가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정수기의 성능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자연생수의 시판은 법으로 금지돼있었다. 탄산이 포함된 생수를 ‘탄산음료’로 겨우 판매하고 있을 뿐, 시중에 나와 있는 생수는 모두 불법 유통되는 것들이었다. 생수 판매를 금지한 이유는 저소득층의 반발 등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는 거였다. (1994.3.9. 동아일보)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정수기와 안전한 생수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커져, 1994년에 이르러 정수기 성능 기준이 마련됐고 생수 시판도 허용됐다.

유리병에 담길 뻔했던 생수

환경부에선 생수 시판을 앞두고 1리터 이하의 생수 용기를 유리병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페트병이 환경오염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트병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 유리병을 사용할 경우 소비자 가격이 오른다는 점, 무게가 많이 나가고 휴대가 불편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결국 철회됐다. 27년 후, 전 세계의 바다가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될 것을 그땐 미처 몰랐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생수기와 정수기가 각 사무실과 가정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 수돗물의 수질도 점차 안정돼갔다. 해마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수돗물과 정수기물, 생수, 지하수 등의 수질을 검사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수돗물은 99.8~99.9%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번 유충 사건으로 수돗물 불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물 자체가 아닌 관리의 문제였다고 한다. 환경부는 8월 말까지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나는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장치가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법과 제도들이다. 내 집의 수돗물이 과연 안전한지 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해 상수도사업본부에서는 ‘우리 집 수돗물 안심 확인제’를 운영하고 있다. 국번 없이 120(서울, 인천)으로 전화하거나 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기억해 뒀다가 한 번쯤 확인해 봐도 좋을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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