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G. 워커의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이야기> 중
‘빨간모자 아가씨’를 다시 쓴 ‘하얀모자 소녀’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예로부터 여성은 문자로부터 늘 소외당해 왔다. 성경이든 신화든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의 모든 고대의 문서들의 필자는 남성이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어릴 적부터 전해 듣고 읽던 전래동화나 서양의 동화들 역시 남성이 쓴 이야기들이다.

남성이 쓴 이야기이기에, 동화 속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젊고, 아름답고, 착한 소녀나 공주이고 늙고, 못 생긴 마녀(혹은 계모나 의붓자매)의 괴롭힘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다가 젊고, 잘생긴 왕자나 기사에 의해 구원 받는 이야기구조를 갖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어릴 적부터 이런 공주, 왕자 이야기에 익숙하게 자란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을 괴롭히는 현실(마녀로 비유되는 경쟁하는 여자동료나 상사)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해피엔딩을 선물해 줄 백마 탄 왕자를 꿈꾼다.

여성이 여성을, 특히 늙고 못 생긴 여성을 혐오하는 것, 자신의 운명을 구원해 줄 남성을 기다리는 지고지순함이 올바른 것이라 여기도록 만드는 것, 이러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동화를 통해서도 꿋꿋하게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 모임에서 스스로 글쓰기를 한다.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기존 남성이 써온 서사를 깨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릴 적 당연하게 읽었던 동화를 뒤집어 다시 쓰는 작업은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자 절대 자신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딸들에게 새로운 내일을 선물하는 엄청난 실천이 된다.

그러나, 동화 속 등장인물의 지위나 역할을 단순히 바꿔치기한다고 해서, 혹은 늘 악역을 맡아왔던 늙고 못생긴 마녀(혹은 계모나 의붓자매)에게 선한 역할을 준다고 해서, 당연히 그 이야기가 성평등한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성평등이란 것이 현실과 반대로 여자가 남자 위에 군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지배해 온 남성들의 자리를 빼앗아 남성을 지배한다고 해서 훌륭한 여성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쓴 동화 이야기, 신화 이야기가 여럿 나왔지만 그것이 ‘이렇게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참신함 정도에 머무른 것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남녀의 자리바꿈 이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바라 G. 워커가 안델센과 그림형제의 동화를 다시 쓴 <흑설공주 이야기>(뜨인돌) 역시 기존 동화를 남녀 위치를 바꿔, 혹은 선악구도를 뒤집어 다시 썼다는 것 이상의 평을 받기엔 미흡한 동화로 남을 듯하다.
백설공주의 계모가 사실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공주를 도우려 했다거나, 인간이 되고 싶었던 개구리(여성)가 왕자와 도둑키스를 통해 인간이 됐지만 인간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개구리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참신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여전히 <흑설공주 이야기> 속 여주인공들은 아름다운 외모로 사랑받고, 거기다 진취적인 기상과 실력까지 갖춘 수퍼우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금껏 예쁜 공주가 잘생긴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더라, 하는 동화를 읽고 자란 이들이 충분히 읽어봄직 하다.
<흑설공주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던 기존 동화를 뒤집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화 속의 의상과 장신구 등 각종 소품들이 갖는 숱한 상징들을 해석할 수 있게 한다. 각각의 동화 첫 페이지마다 친절히 게재된 저자의 해설은 무심코 지나쳤던 여성에 대한 역사적 상징들을 깨닫게 한다. 특히, 동화가 아니라 신화를 새롭게 써낸 2권은 여성과 남성이 자리만 바꾼 듯한 1권의 어색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통쾌함과 신선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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