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⑬ 불소
다음 날, 친구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읽어보니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사업(수불사업)’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불사업을 인천시가 추진하도록 요구하려고 하는데, 이 전단으로 먼저 시민들에게 수불사업의 필요성을 알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이 전단을 돌리고 오느라 늦었단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친구의 얘길 받아들여야 할까? 뭔가 낯설었다. 어떻게 모두가 먹는 물에 뭔가를 넣을 수 있을까? 원하는 사람만 먹게 할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난 읽던 책을 덮고 친구와 토론에 들어갔다.
불소는 플루오린(플루오르)이라고 부르는 원소다. 불소는 다른 원소와 아주 쉽게 결합한다. 그래서인지 불소는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대부분 다른 원소와 결합한 화합물 형태로 존재한다. 불소가 물에 들어가면 이온상태(=원자가 전자를 잃거나 얻어 극성을 갖게 된 상태)가 되는데, 이렇게 물속의 이온, 즉 ‘플루오린화이온’은 충치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미국ㆍ영국ㆍ호주 등 58개국에서 수불사업을 시행하고 있고, 프랑스ㆍ독일ㆍ스위스ㆍ벨기에 등 유럽의 선진국을 비롯한 36개국에서는 불소를 소금에 첨가해서 섭취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에선 1945년부터 시작했고, 세계보건기구(WTO)에서는 1957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수불사업을 권장하고 있다. 불소의 충치예방 효과와 그 안정성은 거의 모든 논문과 학계를 통해 증명됐다. 여기까지가 내 친구의 얘기였다.
하지만 내 뜻도 만만치 않았다. ‘누구나 마시는 물’에 왜 불소를 넣느냐는 것이다. 다수가 원하는 경우에도 소수의 선택권을 존중해야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무리 효과가 있고,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가 산처럼 쌓여 있다고 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물인데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특정 성분에 무방비로 노출되긴 싫단 말이다! 그러니 모두가 마시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이해가 안 됐다. 뜨악해진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슨 뜻이야?”
그렇다. 충치를 예방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불소가 든 치약을 쓰고, 치아 홈을 메우고,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치과에 들러 진료를 받고, 날마다 꼼꼼히 치아를 닦고 치실을 사용하고…. 하지만, 이렇게 자기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모두 직장에 나가 혼자 이를 닦아야하는 아이들, 밥 먹을 시간이 20분밖에 안 된다는 버스운전기사님들, 그 외 하루하루 천천히 밥 먹을 시간도, 충분히 쉴 시간도 없는 수많은, 어쩌면 우리 대다수에게 치아를 ‘적절한’ 방법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저 먼 곳에 있는 이상일 뿐이다.
이들이 충치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늘 마시는 물에 불소를 넣는 것이다. 이미 수불사업의 안정성도 충분히 검증됐고, 맛좋고 몸에도 좋다고 소문난 수많은 생수와 약수에도 들어있는 물질이니 의심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수불사업에는 충치치료에 들어가는 의료비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의 적은 예산이 들어간다.
선택의 문제. 과연 누구를 위한 선택인지, 그 혜택을 받을 대상이 누구인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혼란스런 고민 끝에, 이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예전보다 ‘쬐끔’은 더 멋있어진 것 같다. 그날, 친구 덕분에.
심혜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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