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만에 종결…인천지역사회 “대법 판결 환영”

대표적 친일파인 송병준의 증손자인 송돈호(66)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조상 땅 찾기’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13일 ‘상고 기각’ 판결을 내렸다. 부평미군기지를 놓고 진행된 친일파 후손의 조상 땅 찾기 소송이 약 20년 만에 종결된 셈이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송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원인 무효로 인한 소유권 등기 말소’ 소송에 대해 이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상 귀속 조항 등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음을 전제로, 해당 부동산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송병준이 조선총독부로부터 받은 친일재산에 해당돼 국가 소유라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부평미군기지 일대를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토지대장. 1910경의 토지대장 원부.<부평신문 자료사진>
송씨는 부평구 산곡동 땅 430만여㎡에 대해 1960년 이전에 대한민국 명의로 이전 등기됐던 사실이 없었고, 1923년 1년 이상 해당 토지의 소유권이 타인에게 이전됐지만 소유권 등기상의 필적이 동일인이 동시에 기재한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허위로 기재됐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송씨 외 15명은 2002년 9월 국가를 상대로 처음으로 소송을 냈고, 1심에서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해당 토지가 일제강점기 당시 소유권이 송병준에게 등기됐으므로 원고 측이 원시적으로 취득한 점은 인정되지만, 원고로부터 1996년에 일부 토지를 양도받은 Y재단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 판결을 받았고, 그와 배치되는 판결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토지가 송병준이 원시 취득해 그 당시에는 소유자라고 판단했지만 대한민국의 구(=옛) 토지대장과 임야대장 등에는 각 부동산이 타인을 거쳐 국가 명의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등재돼있다”며 국가 손을 들었다. 이에 항소했으나 항소심도 기각됐고, 이에 송 씨 단독으로 대법원에 상고해 이번에 패소한 것이다.

재판 결과에 대해 송돈호씨는 13일 <부평신문>과 한 전화인터뷰를 통해 “현재는 뭐라 말하기 어렵다. 여력이 없다”고 한 뒤 “국가 소유에 대한 등기가 없고, 과거 재판에서 소유권은 송병준에게 있다는 판결이 있다. 등기부 필적 등에 대한 법원의 검토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한, 친일재산환수특별법 제정과 시민단체, 국회의원 등의 탄원서 제출 등이 재판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냐는 질문에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막을 길이 없다. 재판 방해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로인해 법원에도 못 나갔다”고 말했다. 송씨를 도왔던 그의 지인도 “시민단체의 탄원서, 국회의원 7명의 탄원서 제출 등이 재판에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시 소송을 제기할 것이냐는 물음에 송씨는 “아직은 모르겠다”고 했다. 송씨는 항소심 재판 인지대로만 2억 50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합하면 상당한 소송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판결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31일 민영휘.민병석.이정호의 후손 64명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상 ‘친일 재산 추정 및 국가 귀속’ 조항에 의한 재산권 소급 박탈은 위헌이라며 낸 소송 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 2005년 9월 23일 부평미군기지 구정문 앞에서 인천시민회의와 민주노동당 등은 기자회견을 개최해 시민의 힘으로 되찾은 미군기지를 시민의 품으로 온전히 되돌려 받기 위해 10만인 서명운동을 돌입한다고 선포했다.<부평신문 자료사진>
“헌재 합헌 이어, 대법 기각은 역사적 정의 세우는 일”

송병준 후손의 조상 땅 찾기 소송이 패소한 것과 관련, 부평미군기지 반환운동 등을 전개해온 인천시민회의와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은 13일 공동성명을 통해 “소송이 된 땅은 1925년 총독부에 의해 강제 귀속돼 일제의 조병창과 해방 후 미군부대의 주둔으로 100년 가까이 외국인에 점령된 곳인데, 만약 이 땅이 친일파의 후손에게 넘어갔다면 제2의 강제병합을 당한 셈이었다”고 한 뒤 “대법원의 판결은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반환소송 같은 반역사적인 행태를 합리적이고 현명하게 판단한 것이며, 역사적으로 반민족 매국행위를 통해 취득한 재산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마땅한 판결”이라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광호 인천시민회의 사무국장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친일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합헌 결정된 데 이어 대법원의 이번 상고 기각은 늦었지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올바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실도 당연한 결과라며 “올바른 활용 방안 도출에 힘을 모아야한다. 반환되는 캠프마켓에 친일역사와 관련된 역사박물관 건립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친일파 송병준 후손에 의한 조상 땅 찾기 소송이 된 부평미군기지 일부 전경<부평신문 자료사진>
일제와 미군에 강제 귀속된 오욕의 땅

송씨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 땅은 부평미군기지 일부 부지 36만 5000㎡로 공시지가만 3000억원 상당에 달한다. 이 땅은 당초 민영환(=을사조약에 반대해 자결한 애국지사)의 땅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민영환의 후손 등은 1906년에 송병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조선통감부 재판소는 1908년 12월 송병준의 손을 들어줬다.

그 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부터 일제의 오사카 철사공장이 이 곳에 들어서며 군수산업의 중심지로 활용됐다. 특히 1939년 일본육군 조병창이 이곳에 들어섰고, 광복 후 인천 앞 바다를 통해 한국 땅을 밟은 미군은 1945년부터 조병창 부지에 기지를 신설했다. 숱한 세월을 일제와 미군에 강제 귀속돼있는 것이다.

부평미군기지는 2008년에 한국정부에 반환될 예정이었으나, 평택미군기지 조성이 늦어지면서 2016년 이후에나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것으로 내다보인다.

<소송 진행 경과>
2002. 9. 3. 송돈호 소송 제기
2004. 1. 28. 부평미군부대 공원추진시민협의회, 의견서 제출
2004. 2. 25. 인천시민회의, 친일파 규탄 서명 제출
2004. 8. 민영환 후손 독립당사자 소송 참가
2005. 11. 23. 원고 1심 패소
2005. 12. 5. 송돈호 등 항소
2005. 12. ‘친일재산환수특별법’ 제정
2006. 12. 5. 법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에 조사 의뢰서 발송
2008. 10. 2.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사실 조회 회신
2009. 2. 2. 송돈호, 변론 재개 신청
2009. 2. 4. 항소 기각
2009. 4. 7. 송돈호, 상고
2010. 8. 13. 홍영표 외 국회의원 7명, 청원서 제출
2011. 3. 31. 헌재 친일재산국가귀속특별법 합헌 결정
2011. 5. 13. 상고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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