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③ 편서풍

집을 나서기 전, 하늘을 살피는 버릇이 있다. 비가 올 기미가 보이는지 요리조리 재보기 위해서다. 비 맞는 것을 유난히 싫어해서 생긴 꽤 오래된 일상이다.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바로바로 날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도 내 눈과 육감에 더 의존하고 있으니, 습관이란 참 질긴 모양이다.

하늘에 구름이 많으면 대게 비가 올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구름이라고 다 같은 구름이 아니다. 우산을 챙겨야할지 말아야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쪽에 구름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표 근처의 바람은 상황에 따라 방향이 이리저리 바뀔 수 있지만, 구름을 몰고 다니는 상층의 바람은 일정한 방향을 타고 움직인다. 한반도는 서에서 동으로 바람이 부는 편서풍 지역이기 때문에 서쪽에 있는 검은 구름이 편서풍을 타고 이동하다가 잠시 후 내 머리 위에서 비를 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동쪽에 시커먼 먹구름 한 무리가 잔뜩 폼을 잡고 있다 해도 비 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구름이 잘 보이지 않는 밤이라면, 땅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개미들은 저기압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주 예민하게 느낀다. 그래서 특히 비가 많이 오기 전 날, 안전한 장소로 집을 옮기거나, 집 주변에 둑을 쌓아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도로나 아파트 근처 화단에는 어김없이 개미들이 살고 있을 테니 이를 살피며 내일의 날씨를 점쳐보는 것도 꽤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다른 나라에서도 통할까? 개미들을 살피는 것은 도움이 되겠지만, 서쪽 구름은 조금 생각해봐야한다. 적도(=위도 0°)를 중심으로 위도 30°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혹시 수첩에 세계지도가 있다면 한번 펼쳐보자. 지도 위에 그려진 가로선이 위도다.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중위도(북위 30°~60°) 지역은 편서풍이 불지만, 조금 아래 저위도 지방에선 반대로 무역풍이라고 불리는 동풍이 분다. 게다가 이 무역풍은 대륙보다는 해상에서 일정하게 불기 때문에 육지에서 구름을 몰고 다니는 바람의 방향은 말 그대로 그날그날 다르다. 그러니 우리나라와 같은 중위도 지역에 속한 카자흐스탄ㆍ이란 등 중동지역과 이탈리아ㆍ프랑스ㆍ미국 등에선 서쪽 구름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겠지만, 수단ㆍ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와 베트남ㆍ필리핀ㆍ인도 같은 저위도 지역에선 별 수 없이 일기예보를 잘 봐야할 것이다.

이렇게 사는 곳에 따라서 부는 바람도 다른데, 이것을 ‘대기대순환’이라고 한다. 전 지구적인 규모의 공기 흐름이다. 태양이 지구를 균일하게 비추지 않기 때문에 열의 이동이 생기고 지구는 엄청난 속도로 자전을 하며, 대지는 지역마다 독특한 지형적인 특징을 갖는다. 그 결과 일정한 방향의 거대한 공기 움직임, 즉 기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무심히 스치는 바람에도 다 사연이 있다. 자연 현상에 과학 원리를 적용하면 늘 익숙하던 것도 새롭게 보이고, 이것은 우리 주변에 대한 더 큰 관심과 흥미를 불러올 수 있다. 이를 통해 나와 세상의 긴밀한 연결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과학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모처럼 마음이 한가로운 어느 날,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조각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사색에 빠져들려는 찰나, 머릿속에서 대기대순환과 무역풍, 편서풍 따위가 떠오른다면… 이럴 땐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몇 번 흔들어 원심력을 이용해 세속적인 상념은 털어내고, 태양계를 벗어난 저 먼 우주가 보내는 메시지에 귓바퀴를 기울여 고막의 진동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지. 부디, 사색에 성공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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