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⑫] 차마고도를 따라서,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마지막 회>

다시 리장으로 가는 길

▲ 도대체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어떻게 다닐까?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산 한가운데에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한 길이 나 있다.
루구후에서 리장으로 나가는 시간과 공간은, 이틀 전 리장에서 루구후로 들어왔을 때의 시간과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한번 가본 시간과 공간은 이렇게 익숙하고 쉽다.

버스에 틀어 놓은 음악이 또 귀에 들어온다. 가수를 물으니 강허달림, 제목은 ‘기다림, 설레임’이다. 한영애 같기도 하고, 장필순 같기도 한데, 그들과는 또 다르다.

반딧불 춤추던 곳에 앉아 밤새껏 웃음을 나눴지
휘둥그레진 눈빛 사이로 들어오는
찬란한 빛의 움직임 쫓아 하염없이 가다 보면
어느새 한 움큼 손에 쥐어진 세상들, 설레임들
그 누가 널 보았든 간에 숨길 수 없이 드러내든지
빼곡히 들어찬 숨결조차 버거우면
살짝 여밀 듯이 보일 듯이 너를 보여줘

중국은 94%가 한족이며 나머지 6% 정도가 소수민족이다. 그러나 소수민족이 대륙 곳곳에 분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국경지역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매우 중요하다. 숫자로만 따져도 1억명이 넘는다. 1억이면 소수도 아니다.

소수민족이 국경지역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건 매우 당연하다. 대부분 그곳은 원래 중국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고에 찾아온 민족들, 박해나 쿠데타의 실패로 인해 도망쳐온 민족들, 사신이나 상업적 또는 무역을 하기위해 왔다가 돌아갈 길이 너무 멀어 그냥 남은 민족들도 있다. 중국은 정권 수립 후 여러 차례 소수민족들의 숫자와 실태를 조사했다.

한족을 제외하고, 인구 1000명 미만도 빼고, 소수민족을 55개로 확정했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대략 490여개의 종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 순으로 본다면 장족, 만주족, 후이족, 묘족, 위구르족, 투쟈족, 이족, 몽골족, 티베트족 순이다. 따리의 바이족은 15위, 리장의 나시족은 28위, 참고로 우리 조선족은 14위다.

다시 진사강을 만났다. 바로 밑은 초록색 강인데 밭과 집이 있다. 도대체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어떻게 다닐까?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산 한가운데에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한 길이 나 있다. 인간의 힘이란 참으로 위대하다.

리장의 쑤허마을

▲ 쑤허마을 곳곳에 있는 삼안정 물줄기.
전전날보다 시간이 실제로도 덜 걸려서 다시 리장에 도착했다. 며칠 전 리장에 왔을 때 자세히 못 본 리장 고성을 다시 걸었다. 동파문 도장을 새겨주는 가게는 여전히 찾기 어렵다. 하기야 리장 고성에만 가게가 2000개도 넘는단다. 사람이 몰리니 돈 많은 한족들이 가게를 열고, 돈 없는 나시족 원주민들은 쫓겨나기도 한다.

사방가에선 나시족 할머니들이 여행자들과 춤 출 준비를 하고 있다. 리장 고성의 붉은 등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 ‘붉은 등’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한다. 야크 우유로 만든 야쿠르트를 또 사먹었다.

이날은 고성에서 자지 않고 버스를 타고 리장 쑤허마을로 갔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내력 깊은 나시족 전통 민가 객잔에 들었다. 영화 ‘용문객잔’에 나올 법한 아주 오래된 객잔이다.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지만, 옷을 모두 입고 양말을 신으면 버틸만하다. 원래 중국 남방은 실내난방이 법으로 금지돼있다. 여행자들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것은 전기장판이다.

1월 28일,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차를 마셨다. 차를 만들어주는 나시족 청년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객잔 청년을 길잡이 삼아 쑤허마을 도보 탐방에 나섰다. 리장 쑤허마을은 리장 고성 마을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고성 마을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 하고 소란하지 않아서 더 마음이 끌린다.

▲ 장예모의 영화 ‘천리주단기’에 나오는 800년 된 돌다리. 800년 동안 지나다녀 바닥이 빤질빤질하다.
새로 짓고 있는 집이 있다. 순수하게 목재로만 집을 짓는다. 못은 하나도 안 쓴다. 이것이 진도 7.9의 강력한 지진을 견딘 힘인 듯싶다. 쑤허마을에도 규모는 작지만 사방가가 있다. 장예모의 영화 ‘천리주단기’에 나오는 800년 된 돌다리를 찾아갔다. 800년 동안 지나다녀 바닥이 빤질빤질하다.

마을 전경을 볼 수 있는 산에 올라갔다. 산 이름이 대보산이란다. 높지는 않았지만, 쑤허마을이 한눈에 다 보인다. 여기서도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물결처럼 출렁인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을 입구보다 훨씬 더 고즈넉하다. 콘도 개념의 집들도 있어서 장기 여행자들은 밥을 해먹기도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이 두세 달 묵었다 가는 곳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이 두세 달 묵었다 가는 곳? 실은 내가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다. 리장 쑤허마을에서의 두세 달, 나의 ‘로망’이다. 내 삶에서 그런 날이 올까? 하기야 로망은 로망으로 그쳐야 로망인가? 삼안정은 동네 곳곳에 있다. 세 갈래의 강물을 가장 위 줄기는 마시는 물로, 중간에 있는 줄기는 밥하는 물로, 가장 아래에 있는 줄기는 빨랫물로 사용한다.

차마고도 박물관으로 갔다. 생각보다 잘 꾸며 놓았다. 마방들의 신산한 삶이 다시 한 번 상기가 됐다. 박물관을 다보고 나오는데 나시족 장례행렬을 만났다. 누가 죽었는지 모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장례 참가자들은 거의 흰 광목천으로 만든 터번 비슷한 것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나시족들의 장례 풍습인 모양이다.

티베트 장족박물관에 가서 티베트인들 삶의 모습을 간단하게 살펴봤다. 티베트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 가능할까? 달라이 라마도 종교와 완전한 자치만 보장된다면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티베트의 독립은 요원한 것 같다. 어쨌든,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인사말을 하나 배웠다.

쟈시델레! 한자로 ‘길상여의’라는 뜻의 티베트 장족 인사말이다. “당신 뜻대로, 당신의 삶이 내내 상서롭고 행운 있으시기를!” ‘니하오’보다, ‘나마스테’보다 훨씬 어감이 좋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보내는 인사, 쟈시델레!

리장 고성마을에서 못 찾았던 동파문자로 낙관 새겨주는 집을 쑤허마을에서 드디어 찾았다. 가격을 흥정한 후 장서표로 쓰기 위해 ‘신현수책’ 네 자를 한자로 써주고, 동파문으로 새겨달라고 했다. 물론 손짓, 발짓으로. 궁하면 다 통한다. 여행자에게는 언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꼭 소통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도장을 맡기고 나서 사방청음광장으로 갔다. 밤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여행자들과 나시족들이 어울려 춤을 추는 광장이라고 한다. 선물을 몇 개 샀다. 중국 여행의 장점이 있다면, 선물 사는 데 부담이 적다는 거다. 여전히 중국에서는 우리 돈이 쓸 만하다.

전날 저녁 먹었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리장에서의 마지막 식사. 객잔으로 가서 짐을 찾고 리장을 떠났다.

따리에서 맛본 푸얼차

▲ 푸얼차를 파는 집.
다시 따리로 네 시간. 이제 4시간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따리에 도착하기 전 나비로 유명한 호접촌 근처 염색마을에 들렀다. 모두 퇴근해서 염색공정을 직접 보지 못하고 설명만 들었다. 스카프를 하나 산 후 동네를 잠시 둘러봤다. 하루 일과를 마친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며칠 전 묵었던 따리 역락거객잔에 도착했다. 마치 내 집에 돌아온 듯 편하다. 저녁을 먹고 따리 고성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객잔을 나섰다. 푸얼차 파는 집에 가서 차도 얻어 마셨다. 차에 전혀 문외한이지만, 역시 비싼 차가 맛이 좋은 것 같다. 만일 가게 사장이 차를 가격과 반대로 내놓았다면 알아 맞혔을까? 음~, 아니요.

다 아는 것처럼, 푸얼차는 푸얼현에서 나는 차를 동네 이름을 따서 푸얼차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윈난의 차를 티베트로 가져가서 팔고 대신 말을 사왔다. 그 길이 차마고도다. 워낙 몇 달 이상이 걸리고, 심지어는 해가 바뀌기도 하니 말 등 위의 생차는 당연히 변했다. 그런데 썩어서 못 먹고 버리는 줄 알았던 차를 우연히 마셔보니, 그게 더 맛이 좋았다.

푸얼차의 시작이다. 야생차를 숙성시킨 게 가장 비싸지만 귀하고 믿기 어렵다. 그래서 차창(=차를 재배해 인공적으로 숙성시키는 차 공장)에서 생산하는데, 그야 말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믿기도 어렵다. 일단 농약이 의심 되고, 숙성시간도 의심 된다. 오죽하면 차창 사장들도 생차를 사서 직접 집에서 숙성시켜 먹는다고 한다. 비교적 많은 돈을 주고 ‘경곡전차’를 하나 샀다. 경곡은 푸얼 바로 위에 있는 지명, ‘전차’란 벽돌모양으로 찍어낸 차.

이번 공정여행 평가회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꼬치에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번 공정여행에 대한 간단한 평가회를 열었다. 세상에는 고수들이 너무 많다. 가장 고령자인 ㅂ선생은 연세와 정반대로 가장 부지런하고 힘이 넘친다. 무슨 운동을 하시냐니까, 별거 안 한다고 한다. 배드민턴 좀 치고 수영 좀 했단다. 한번 물에 들어가면 몇 킬로는 간단다.

허걱, 그게 별거 안 하는 건가? 다른 ㅂ선생, 사진기가 좋아보여서 사진 찍은 지 얼마나 되셨냐고 물으니, 잘 못 찍는다고 하면서 일본에서 한 10년 사진 공부하고 왔단다. 허걱. 창산에 말 타고 오르던 날, 갑자기 유창한 중국어가 들려오기에 뒤돌아봤더니 또 다른 ㅂ 선생이었다. 알고 보니 대만에서 8년 동안 유학하고 왔단다.

난 겉으로는 한없이 겸손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다. 엄마 아빠가 모두 한국에 와 있는 통역자 정군은 함께 여행한 분들이 가족 같아서 좋다고 했다. 정군은 내 큰 아이와 동갑이다. 한국에 한 번도 못 와봤단다. 운전기사 미스터 조는 자기가 운전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고맙다고 소박한 소감을 말했다.

최 작가님은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여행 내내 그렇게 애면글면 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한국에서 걸려온 감기 때문에 너무 소홀했다고 반성했다. 여행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다. 여행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루구후의 할머니와 짜씨, 이번 공정여행에 함께 한 착한 여행자들, 여행에서 만난 친절하게 웃어주던 모든 현지인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산과 강, 풍경들, 모두 다 내 스승이다. 서서히 이번 여행도 끝나가고 있다.

중국 서남부 무역교류의 중심, 따리

▲ 따리성당.
1월 29일, 아침을 먹고 따리 고성 산책에 나섰다. 따리고성은 예로부터 중국 서남부 무역교류의 중심이다. 송나라 때 대리국이 이곳을 도읍지로 삼아 성을 쌓았다.

처음에는 도시 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인 형태였지만, 지금은 성벽의 일부와 남문·북문만 남아 있고 남북의 문에는 곽말약의 글씨로 ‘大理(=대리)’라고 크게 쓰여 있다. 성벽은 높이 8m, 두께 7m이며 안쪽이 바위로 채워졌고 표면은 벽돌로 마감했다. 특이한 것은 성벽 가운데에 상업시설물이 있다. 대표적 따리 음식인 ‘고유선’을 사먹었다. ‘고유선’은 운남 18경 가운데 하나다. 치즈를 튀긴 건데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따리 성당을 탐방했다.

1927년 개축된 천주교 교당은 문화대혁명 때에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존돼있다. 목조건물로 된 교당 아웃테리어를 칠판에 분필로 한 게 특이하다. 나오는 길에 따리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 간판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문에는 ‘총통병마대원수부’라고 씌어 있다. 원래 이곳 집권자 두문수의 집무실이었다. 웬일로 입장료를 안 받는다. 이렇다 할 유물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박물관 안은 고즈넉하다.

이제 역락거객잔 식구들과도 이별해야할 시간. 객잔 사장님이 물을 한 병씩 나누어 준다. 말은 안 통하지만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창산 올라갈 때 길잡이를 했던 객잔 할아버지. 손자를 업고 있는 할아버지. 이승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쿤밍공항로 이동했다. 이동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중국 땅에서의 마지막 점심식사를 했다. 공항에서 정군과 헤어졌다. 여름에 한국에 오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을 몇 년 동안 못 만났단다. 조선족에게 한국이란 무엇일까?

밤늦게 상해공항에 도착했다. 상해에 언제 와봤지? 상해는 혼자 여행했던 곳. 작은 호텔에 들었다. 편하다. 내일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인천행 비행기에 오른다.<끝>

*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 한 글과 책 *
1. <자신만만 세계여행-중국>, 삼성출판사
2. 이경자,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이룸출판사
3. 양 얼처 나무, 크리스틴 매튜, <아버지가 없는 나라>, 김영사
4. 최성수, <구름의 성, 운남> 삶이보이는창
5. 국제민주연대와 함께하는 공정여행 카페 (
http://cafe.daum.net/yunnanfair) 최정규, <윈난이야기 1-8>

*필자의 홈페이지(http://cafe.naver.com/shinhyunshoo)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글ㆍ사진 / 신현수(시인ㆍ부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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