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⑫] - 차마고도를 따라서,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 <3>

▲ 리장 고성 안에 있는 만고루에서 내려다본 리장 고성.
리장은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도시다.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관광도시로 이름이 높은데, 마을 곳곳이 수로로 연결되어서 ‘동양의 베니스’로 불린다. 1996년 규모 7.9의 큰 지진이 일어나 도시의 ‘3분의 1’이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유독 고성 지역만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목조로 만든 건물들이 오히려 지진에도 강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원형 그대로 복구했고,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따리에 창산이 있다면 리장에는 옥룡설산이 있다. 옥룡설산은 해발 5596m, 1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에 쌓인 눈이 마치 한 마리의 은빛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옥룡설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갇혀 벌을 받았다는 산으로도 전해진다.

나시족에게는 또,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 상형문자, ‘동파문자’가 있는데 예로부터 애니미즘 성격을 띤 나시족의 전통 종교 ‘동파교’의 경전을 기록하는 데 사용됐다. 대중들에게 널리 쓰인 문자는 아니다. 동파는 나시어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현재 2000개 이상의 문자가 확인됐다.

리장 고성의 중심 사방가

▲ 사방가에 있는 객주.
1월 25일, 간단한 아침을 먹고 리장 고성 안에 있는 만고루 탐방에 나섰다. 만고루는 탑 모양의 건축물. 꼭대기에 올라가니 리장 고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기와지붕의 건물들이 마치 일렁이는 파도를 보는 듯하다. 만고루에서 내려오니 밤과 낮의 풍경은 이토록 다르다. 야경은 역시 조명이 한 몫 함을 알겠다.

리장 고성의 중심은 사방가다. 이 사방의 모든 길이 이름 그대로 사방가로 통한다. 리장은 명·청시대부터 차 상업무역의 요지였고, 그래서 리장 고성의 중심 사방가는 마방들이 모이고 쉬어 가던 곳이다.

길바닥은 돌로 되어있어 비가 내려도 발에 흙이 묻지 않는다. 나시족 할머니들이 여행자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한다. 가게에서 야크 요구르트를 사먹었다. 5원인데 맛이 기가 막히다. 시원하고, 달고, 고소하다. 두고두고 생각 날 것 같다. 목부를 거쳐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천우유방’이라고 쓴 커다란 대문이 있다. ‘황제의 은총이 비같이 흐른다’는 뜻, 이곳 나시족의 언어로는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합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목부는 나시족 지도자 목씨의 저택이었다. 22대 470여년 동안 리장을 다스린 목씨들은 ‘시와 문장을 알고, 예절과 충의를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현재의 건축물은 1996년 대지진 이후 과거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차에, 빵에, 고무신에, 고기에, 없는 게 없다. 동 제품을 파는 곳에 가니 동으로 만든 종을 팔고 있다. 마방들이 말의 목에 매달던 종이다. 리장의 또 다른 상징은 장쩌민 글씨 근처에 있는 물레방아다. 전날 밤에 리장 고성에 들어갈 때는 잘 안보이던 것들이다.

루구후로 가는 길, ‘여령 18만’ 고개

▲ 루구후 가는 첫 번째 관문, 열여덟 번이나 구부러져 ‘여령 18만’ 고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고비가 될 여행이 시작됐다. 바로 리장에서 루구후로 가는 길. 7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그것도 가봐야 아는 거다. 험한 고갯길은 양념에 불과하고 그늘진 곳은 눈이 전혀 녹지 않아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루구후로 가는 첫 번째 관문, 열여덟 번이나 구부러져 ‘여령 18만’ 고개. 눈으로 보기에는 18번도 더 꺾기는 것 같다.

해발 3800m, 그러나 ‘여령 18만’ 고개는 시작에 불과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붙여 길을 내거나, 그냥 바위를 뚫어 겨우 차가 교행 할 수 있게 길을 낸 곳도 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이 소위 차마고도, 예전에는 등에 차를 가득 짊어진 말들이 겨우 한 줄로 지나다닐만한 길이었겠지. 그러니 이토록 험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

눈앞에 가로 막힌 산을 넘는데, 날아갈 수 없다면 걸어 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과 말들이 걸을만한 경사여야 한다. 그러니 산을 오르내릴 때 산을 빙빙 돌 수밖에 없다. 마방과 말들을 산만 가로 막은 게 아니었다.

강도 그들을 가로 막았다. 차마고도에서 ‘진사강’은 반드시 건너야할 강, 저토록 진초록으로 아름다운 진사강을 건너다 수백 수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마방과 말들이 빠져죽었을까? 그러나, 푸른 색 채소라고는 단 한 가지도 나지 않는, 그래서 차를 마시지 않으면 영양 불균형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척박한 땅에서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한 유일은 방법은 오직 차를 마시는 일밖에 없는,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기호품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반드시 마셔야할 생명의 차, 이런 티베트 고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차를 팔기 위해, 마방들은 목숨을 걸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차마고도는 그들에게 오히려 장사라기보다는 티베트인들의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길이었다. 삶은 참으로 엄정한 것.

▲ 나시족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
이런저런 상념으로 진사강을 내려다보니, 강물이 녹색이라 더 서럽다. 진사강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는 다시 루구후를 향해 달린다. 잠시 이족 시장에 들렀다. 사탕수수를 사먹었다. 나무에서 정말로 단물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 소수민족의 생활의 변화는 바구니에서 온다.

등 뒤의 바구니가 소수민족 여성들에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전통이라면, 바구니 재료와 색깔의 변화는 그들이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할 근대다. 등 뒤의 바구니는 과연 언제까지 그들의 등 위에 있을까? 그들의 교통수단은 ‘다마스’ 비슷하게 생긴 차다. 그게 그들의 택시요 버스다.

루구후 가는 도로는 곳곳이 파헤쳐지고 있다. ‘대샹그릴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 아스팔트를 까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래서 원래 길인지, 새로 닦으려고 하는 길인지, 임시로 만든 길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늘 다니던 기사님이 운전하는 우리 버스도 두어 번 길을 잃고 되돌아 나왔다. 기계가 부족한지, 도로 공사 노동자들이 절벽에 달라붙어 돌을 깨거나 손으로 돌을 나르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드디어 루구후 입장료를 받는 곳이 나왔다. 우리 일행은 드디어 고생이 끝난 줄 알았으나 그건 우리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길은 이제 본격적으로 험해지기 시작했다. 좁고 험한 데다 눈까지 쌓여 두려운데 전방에서 차까지 오면 대략난감,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았다. 루구후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듯 말 듯 시종 약을 올리는데,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고 오늘 안으로 객잔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급기야 버스는 눈밭에 길을 잘못 들어, 그냥 내려갈 수도,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각이 나오지 않아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결국 버스에서 모두 내려 후진하는 버스를 밀고 또 밀었다. 천신만고 끝에 버스는 움직였다. 낮 동안에는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 긴 시간과 거리를 탓했는데, 이 난감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고 나니, ‘아 이제 시간은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거리는 얼마나 멀어도 좋으니, 무사히 루구후까지만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사람 마음이란 다 그런 것이다. 거무산 마고할미의 도움으로 아니면, 우리가 묵을 객잔 주인 할머니의 절절한 기도가 통해 우리는 무사히 객잔에 도착했다. 리장을 떠난 지 무려 8시간 만에.

루구후의 아침과 객잔 할머니의 기도

▲ 솔가지를 태우며 불의 신과 거무산 신에게 기도하는 ‘여신만’ 객잔 할머니.
1월 26일, 루구후의 아침은 우리가 묵은 ‘여신만’ 객잔 할머니의 치성으로 시작됐다. 솔가지를 태우면서 불의 신과 거무산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할머니는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치성을 올린다. 머리에 쓴 스카프를 벗고 기도를 올린다.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차가운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기도를 올린다.

날이 제법 추운데도 할머니의 기도가 얼마나 절실한지 땀을 다 흘리신다. 할머니는 저렇게 아침마다 세계의 평화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신다. 지난 밤 우리가 눈밭을 뚫고 무사히 객잔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건, 물론 운전기사 미스터 조의 노련한 솜씨가 우선했지만,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기도 했을 거라고, 할머니의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확신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이 집의 응접실이자, 신들을 모셔 놓은 신들의 거처이자,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화덕이자, 이 집의 중심인 할머니의 침실에 모여 쌀보리가루(=칭커)로 뭉쳐 만든 떡(=참파)도 나누어 먹고 차도 나누어 마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번갈아 잡아보았다.

객잔을 책임지고 있는 청년(처럼 보이지만 한족과 결혼해서 아이도 있다) 짜씨의 설명으로 할머니 방에 모시고 있는 신들의 의미, 방의 구조 등에 대해 자세하게 들었다. 교직원 윷놀이대회 때 탄 비누 네 장을 제단에 올려놓고 나왔다. 할머니가 비누 쓸 일이 있을까? 그럼 그게 무슨 선물이냐?(다음호에 계속)

▲ 장쩌민 글씨 근처에 있는 물레방아.
▲ 진사강. 강물이 녹색이다.
▲ 글ㆍ사진 / 신현수(시인ㆍ부평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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