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학익동 중소상인, 24시간 입점저지 농성 돌입

▲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내부공사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11월 8일 기습개점을 한 뒤, 11월 22일부터 정식오픈을 위한 내부 공사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인천시는 다음날 11월 23일 내부 확장과 변형을 금한 뒤 일시정지를 권고했다.
SSM(Super Supermarket,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해 중소상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지난달 10일과 25일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이하 상생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두 법안의 개정된 문구가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SSM이 보란 듯이 기습개점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개정된 두 법안이 지닌 독소조항과 한계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대기업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유통법 상 대형마트와 SSM을 등록제로 한 ‘전통상업보존구역’은 전통시장이나 전통상점가로부터 500m 이내 지역으로 국한돼있어, 그 외 지역은 여전히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사냥터로 노출돼있어 언제든지 입점을 시도할 수 있다.

또 상생법의 경우도 가맹점SSM을 ‘사업조정’ 신청대상에 포함시켰으나, 가맹점에 대한 규정이 유통법과 달리 SSM 개점 시 ‘소요되는 비용(=임차비용, 내ㆍ외장 공사비 등) 중 대기업이 51% 이상을 부담하는 경우’라는 단서조항을 두고 이 경우만 ‘가맹점SSM으로 본다’고 해, 그 외 형태의 가맹점에 대해서는 ‘사업조정 신청’ 유권해석 논란이 남는다.

이 같은 유권해석 논란은 결국 SSM분쟁 지역에서 대기업과 중소상인 간 물리적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업조정’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일시정지’명령이 강제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에 불과한 점도 대기업에 기습개점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꼴이다.

실제로 이 같은 일은 두 법안이 통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이번에 남구 학익동에서 기습개점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역시 동네에는 ‘건물 리모델링’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막상 알고 보니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였던 것.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기습개점을 시도한 학익동은 인근에 전통시장인 신기시장과 남부시장, 학익시장 등이 있다. 그러나 유통법상 전통상보존구역이 500m 이내로 돼있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이를 교묘히 활용한 셈이다.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정재식 사무국장은 “인근 주안8동 대책위가 학익동에 기습개점하려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해줘 확인에 들어갔다. 건물을 리모델링한다며 11월 5일부터 물건이 반입되기 시작했다. 같은 날 구청에 확인해보니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담배소매 허가 신청을 했다. 기습개점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이후 학익동 슈퍼마켓 상인들은 곧바로 사업조정 신청에 들어갔다.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를 통해 중기중앙회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는 사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11월 8일 오전 간판을 걸고 입점을 알렸다.

중소상인들이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개점을 한 것. 그러나 사태는 개점으로 일단락되지 않았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간판만 내걸었지 기본적인 판매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였던 터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이달 28일 정식오픈을 목표로 지난달 22일 내부공사를 시작했고, 사업조정 신청을 받은 인천시는 지난달 23일 ‘더 이상 확장과 변형을 위한 공사를 금지할 것’을 명한 뒤 ‘일시정지’결정을 내렸다.

그런 상태에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이달 3일 오후 다시 개점을 위한 공사를 강행하자 학익동 상인들은 입점저지를 위한 대책위를 꾸려,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와 함께 24시간 입점저지 농성에 돌입했다. 현재 학익동 점은 공사가 중단된 상태며, 물건은 없고 신규 매대와 냉장고 등이 설치되던 중이었다.

5일 오후 학익동대책위와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민주노동당 등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광역 학익동대책위 대표는 “일시정지 권고를 피하기 위해 리모델링이라고 거짓 소문을 내더니 결국 정식오픈을 위해 추가 공사에 들어갔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스스로 기습개점을 시인한 것”이라고 한 뒤 “삼성테스코는 대기업답게 진정한 상생협력을 위해 SSM 개점을 포기하길 바란다. 끝까지 강행한다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우리 삶의 터전인 학익동 상권을 지키기 위해 더욱 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익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기습개점 일지>
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2010.10.21. 남구 학익동 태성마트 비밀리에 인수
 11.5. 상인들 사업조정신청 기초자료 슈퍼마켓협동조합에 제출
 11.8. 기습개점
 11.22.~12.7.까지 정식 입점준비 공사
 11.23. 인천시 일시사업정지권고 내림
 12.3. 학익동대책위 구성 및 사업정지권고 이행 항의방문, 24시간 천막농성 시작
 12.5. 학익동대책위와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민주노동당 ‘삼성테스코 규탄’ 기자회견
▲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측이 12월 3일 정식오픈을 위한 공사를 시작하자, 학익동 슈퍼마켓 상인들은 우선 몸으로 공사를 저지했다. 같은날 대책위를 꾸린 학익동대책위상인들은 5일 오후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민주노동당 인천시당과 공동으로 입점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규탄했다.


허점 드러난 ‘유통법ㆍ상생법’ 개정안
힘 실리는 ‘2차 개정’ 요구

인천 학익동에서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의 허점이 여실히 입증되자 중소상인과 시민사회가 제기했던 두 법안의 ‘2차 개정’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유통법ㆍ상생법 개정이 남긴 과제’ 토론회에는 야5당이 참여해 2차 개정에 힘을 보탰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 의장, 민주당 김재균ㆍ조정식 의원, 자유선진당 김용구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은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며 ‘중소상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제도를 보완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나갈 것’을 약속했다.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신규철 집행위원장은 “전통상업보존구역 500m 이내 규정은 목 좋은 지점 둘러싸기에 속수무책이다. 학익동처럼 인천시 남구 신기시장 주변 700~800m 지점에 이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2곳이 출점했고 1곳이 예정돼있다”며 “이 규정은 사업조정 지침과도 차이가 난다. 중소기업청 사업조정 시행지침을 보면 상권 특성상 3차 상권인 500~1000m 지역의 경우에도 객관적으로 피해가 인정되는 경우 사업조정이 신청이 가능한데, 유통법이 500m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회경제국장은 “11월 중소기업청이 펴낸 사업조정제도 시행지침 해설서에도 ‘이미 개점한 경우는 일시정지의 권고가 곤란하다’고 해석해 놓았다”며 상생법상 ‘사업조정’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SSM 입점 계획이 사전에 지역사회에 공유돼야하고 ‘일시정지’ 권고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가 절실하다. 또한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심의위원회의 권고와 명령의 내용을 강화하고 이 권한을 시ㆍ도지사에 위임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강신하 변호사 또한 유통법과 상생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시행령 등을 개정해야한다며, 중소상인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실었다.

강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절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규제를 하더라도 위헌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대기업 시장과 중소기업 시장을 분리해 중소상인을 위한 시장영역을 확보하고 보호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대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지역을 제한하고, 영업시간과 영업품목을 제한해 중소상인을 보호하고 있다”라고 한 뒤 “바람직한 유통법 개정을 위해 전통시장 1km 이내에서는 대기업의 입점을 제한하도록 하고, 상생법 상 대형유통회사가 51% 이상을 부담하는 경우에만 가맹점SSM으로 보겠다는 입장 또한 시행규칙 마련 시 ‘유통법 상 가맹점SSM 규정’과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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