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56분. 나는 지금 집 근처 피씨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왜냐고? 집 컴퓨터는 먹통이고 근무하는 사무실은 이 저녁에 걸어가기엔 멀고 어둡고 게다가 4층이다. 그래서 선택한 이 피씨방에도 온통 남자들뿐이고 나는 글을 마치고 집까지 걸어갈 게 은근히 걱정이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온 나라 국민들을 살인공포에 떨게 했다. ‘향숙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섬뜩한 영화가 다시 현실로 나타났고 귀가길 여성들을 향한 아무런 동기 없는 살인이 연일 뉴스를 채우고 있다. 여기에 몇몇 여성단체에선 달빛시위를 했다. ‘여자도 맘놓고 밤거리를 다녀보자. 달빛도 보고 별빛도 보고 그러자’는 내용이다.
네살박이 딸내미를 키우고 있는 에미로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살인행각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다 알다시피 한 사람을 아기 때부터 어느 정도의 어른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실로 만만치 않다. 더구나 이제 ‘여자아이’를 안전하게 성인 여성으로 키워내기는 정말 힘겹게 됐다.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의 관심은 멈출 수 없다. 살기 위해서는 딸에게 끊임없이 몸조심을 시켜야한다. 새끼를 직접 낳아 기르다 보니 유치원·보육원 원장의 성폭행, 어느 목사의 성폭행, 학교 선생과의 원조교제 같은 사건들이 눈에 띄고 가슴에 박힌다. 이젠 아이들의 목숨을 지켜야 할 지경이라니!
뭐가 문제인가? 범죄자들은 하나같이 불우한 가정사와 빈곤을 상처로 갖고 있다. 부족한 부모의 사랑과 파탄난 가족사 때문에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오랜 시간 가슴에 쌓였다고 한다. 그 누군가, 동네 어른이든 학교 선생님이든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고 어루만지고 재생시켜줄 그 누군가가 있었다면, 오늘날 이런 끔찍한 사건은 그래도 없지 않겠나 싶다.
그래서 더더욱 내 주변에서 펼치는 아름다운 지역공동체 만들기 운동이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실천, 독거노인돕기 사랑의 도시락, 밑반찬 배달, 동네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장애인 복지 센터….
밤거리를 맘놓고 다니고 싶다는 요구도 당연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갈 곳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분노한 영혼들을 더 이상 만들어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살맛나는 세상을 이룰 제도와 장치,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여성들이 앞장서야 할 때다. 상처를 품고 치유하며 공동체 속에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