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2010년 인천시의회 표창장 수상한 강희자씨

 

초복이 다가온다. 청천2동 주민센터 마당에 허리 높이의 들통 두 개가 화덕 위에 올려졌다. 들통에 물을 절반씩 붓고 인삼과 황기, 감초 등을 넣어 진하게 우린다. 10여명의 새마을부녀회원들은 닭 250마리를 부지런히 삶아낸다. 정오쯤 되자 초대받은 동네 노인들이 줄을 이어 들어오자 푹 고아진 삼계탕도 줄을 이어 상에 차려진다. 주황색 앞치마를 두른 강희자(48)씨도 바쁘게 움직인다.

강씨는 6월 말에 인천시의회에서 주는 표창장을 받았다. 큰 공로를 세운 일이 없는데 이웃들이 추천했다면서 갑자기 상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그 상 받으러 갈 틈이 어딨게요. 그동안 밀린 일이 많아서 오늘은 집에서 꼼짝 못하니까 다른 사람한테 상을 주시든가 집으로 보내주시든가 알아서 하셔요”
강씨는 상을 마다하고 밀린 일감을 정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재봉틀 페달을 밟았다.

강씨의 본업은 옷 수선이다. 남편과 고등학생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33평 아파트 방 3개 중 작은방 하나가 강씨의 작업실이다. 부평지하상가에서 옷 수선 일을 하다가 동네 손님이 많아 4년 전부터 집에서 한다. 그러다보니 강씨의 집은 어느새 동네 사랑방이 됐다. 그리고 차츰 동네일에 관심이 생기고 봉사도 하고 싶었다.

강씨는 아파트에 부녀회가 없어서 답답해하던 중에 1년 전에 30대 젊은 엄마들과 우여곡절 끝에 부녀회를 만들었다. 천연비누와 친환경 세제를 만드는 문화강좌도 열고 노인잔치도 했다. 분리수거나 단지 내 나무들도 살폈다. 소외이웃을 돌보기도 하고 아파트 축제도 열었다. 어린이들이 그린 아파트 풍경 작품 70점을 커다란 광목천에 엮어서 관리사무소 외벽에 전시도 했다. 막혀 있던 봉사활동이 봇물 터지듯 하니까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 거기에 새마을부녀회나 민간사회안전망과 같은 봉사단체 행사도 짬을 내 참석하고 있다.

“둘러보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떡국잔치나 윷놀이 행사는 일도 아니에요. 아무도 돌보지 않고 있는 일들을 열어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그 안에 숨어 있는 사연들 때문에요”

아파트 계단복도에 몇 년간 쓰레기를 쌓아놓던 주민이 있었다. 폐지도 아닌 온갖 잡쓰레기였다. 볼 때마다 비위가 상했는데, 어느 누구도 그것을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의 짓인지 부녀회 총무와 추적해봤다. 깡마르고 머리가 헝클어진 50대 여자 주민이 쓰레기 모으는 일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 제발 좀 치우라고 싫은 소리를 할수록 그 주민은 쓰레기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주민에게 마음의 상처가 있음을 알아챈 강씨와 부녀회 총무는 따뜻한 시선으로 “언니, 우리한테 얘기해 봐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라고 말을 걸었다. 악을 쓰던 그 주민은 놀란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보다가는 이내 눈물을 쏟으며 사연을 털어놨다. 이후, 그 주민은 관리소장 말은 듣지 않아도 강씨와 총무 말은 들었다. 강씨와 총무는 여러 단체에 문의해 밑반찬과 의료 지원을 알아봐주기도 했다. 그 주민은 여전히 쓰레기에 집착하고는 있지만 그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으며 이웃들이 관심을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 같다.

“이웃에게 피해주는 사람이라고 욕만 했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웃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당장 치우라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이웃으로서 관심을 조금 가졌더니 변화가 보이잖아요. 그래서 이웃이 필요하고 봉사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강씨는 아파트 축제를 진행하다가 애완견에 물린 적도 있다. 미리 정해진 주민 단결력을 실험하는 미션을 설명하러 115동 각 세대를 방문하다가 애완견에 종아리를 물렸다. 이빨이 깊이 들어가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하지만 미션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아픈 것도 잊고 진행한 미션은 성공했으며, 축제가 끝나고 다른 부녀회원들이 상처 부위를 보고 놀라서야 강씨는 응급실로 달려갔다.

당시 부녀회원들이 걱정하고 미안해하자 강씨는 “다들 동네 일 하느라 고생 많이 하는데 그런 소리들 하지 말아요.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 돕고 사는 동네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통했는지 오늘 미션도 성공했잖아요. 이제 다들 한 배를 탄 거예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강씨는 일거리가 많다고 투덜거리지 않는다. 일이 많으면 더 빨리 움직이면 된다고 말한다.
그의 본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재촉하던 손님들은 이제는 아예 한 계절씩 미리 일감을 가져온다. 지난봄에 입으려고 맡긴 옷을 내년 봄에라도 입게 천천히 수선해달라는 마음 넉넉한 손님들도 늘고 있다.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마을봉사는 할 거예요. 그게 이웃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조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이웃의 돌봄이 없으면 소외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어르신이나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겉으로 멀쩡해도 속은 텅 비어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이웃이 얼마나 많다고요. 그게 진짜 봉사 아닌가요? 숙제처럼 정해진 연중행사 말고 꼭 도울 수밖에 없는 이웃들에게 봉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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