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유통재벌과 싸우는 중소상인들의 하루하루가 눈물겹다. 동네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거나 이 슈퍼마켓들에 물건을 납품하는 도매유통업자, 전통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의 처지가 그렇다.

2009년 7월,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무분별한 확산에 설자리를 잃게 된 중소상인들이 SSM을 상대로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하면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시작됐다.

인천 연수구 옥련동 슈퍼마켓 상인들과 부평구 갈산동ㆍ부개동 슈퍼마켓 상인들이 사업조정을 신청했고, 중기청은 중소상인들의 사업조정 신청을 받아들여 SSM 측에 사업 일시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후 국내 곳곳에서 중소상인들의 사업조정 신청이 봇물처럼 터졌다.

하지만 중기청이 일시정지를 내린 후 정부와 국회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유통재벌들은 ‘사업조정 신청제도’를 피하려 곳곳에서 ‘위장 개업’을 시도했고, 나중에는 가맹점 형태의 프랜차이즈 SSM을 동원하는 등 현행 관련법을 교묘히 피해가며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는 사이 곳곳에서 중소상인들의 폐업이 속출했다. 갈산동이나 부개동처럼 상인들이 맨몸으로 막아선 곳에서는 개점이 유보되긴 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중소상인들은 지난해 가을 전국상인대회를 열어 SSM 규제 법안인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과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 개정을 촉구하는 정치투쟁에 돌입했다.

SSM 규제 법안 마련 여론에 힘이 실리자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인 지식경제위원회는 관련법 개정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기국회 때 한나라당이 법 개정을 반대하면서 이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러는 동안 곳곳에 대형마트와 SSM이 들어섰다.

이에 중소상인들은 올해 들어 단식투쟁과 촛불문화제, 6.2 지방선거에서 낙선운동을 펼쳐가며 정부와 한나라당을 상대로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2ㆍ3ㆍ4월 임시국회 모두에서 관련법 개정을 미루더니 지방선거를 앞둔 5월 국회에서도 미루고 말았다.

특히, 4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야당과 막판 합의를 통해 법 개정에 동의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시 이를 무산시키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상인들의 낙선운동은 본격화됐고, 지방선거는 한나라당 참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한나라당에서 ‘SSM 규제’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러는 사이 중소상인들은 SSM 측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SSM 입점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인해 상인대책위 관계자들은 형사상 벌금형을 받는 것도 모자라, 1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것.

이뿐이 아니다. 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본사인 삼성테스코가 상인대책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1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법원은 재산 가압류를 통보했다. 골리앗 홈플러스와 싸우던 다윗은 형사상 벌금, 민사상 손해배상도 모자라 5000만원 재산 가압류 딱지까지 받게 됐다.

갈산동대책위 한부영 대표는 “홈플러스를 막기 위해 1년 가까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왔다. 그런데 그 홈플러스 때문에 대책위 총무한테 5000만원 재산 가압류 딱지가 날아왔다. 홈플러스가 법원에 재산 가압류 신청을 한 게다. 나한테도 곧 재산 가압류가 떨어질 것이다”라고 한 뒤 “억울하고 분해서 못살겠다. 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단 말인가?”라고 하소연했다.

인천의 갈산동ㆍ부개동ㆍ송현동과 서울의 대방동ㆍ구의동 등 홈플러스를 상대로 입점저지 활동을 전개했던 대책위 관계자들에겐 도합 3억 3000만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형사상 업무방해 혐의로 30만~100만원의 벌금이 각각 떨어졌다. 구의동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 벌금액과 손해배상 청구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소상인들은 지난 16일 서울 대방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앞에서 민형사상 소송 취하와 ‘SSM 규제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에게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이 공개서한을 작성한 부개동대책위 연국흠 대표는 “김무성 대표가 지방선거 직전에 인천에 와서 재벌들이 상인들을 상대로 억대의 민사소송을 걸었던 것을 비난했다. 사실, 말이라도 정말 고마운 말 이었다”라고 한 뒤 “우리 상인들이 몸으로 재벌들의 점포를 틀어막는 것은 그저 성난 표정으로 그들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피눈물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그런 처참한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이 형사ㆍ민사소송의 본질이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무산시킨 유통법과 상생법을 살려내 주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신규철 집행위원장 또한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할 순 없다. 동네 구멍가게가 팔면 얼마나 판다고, 이건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SSM 사태 해결 문제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지난 4월 국회 때 두 법안을 통과시켰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안 왔다. 후반기 국회 원구성이 완료되면 즉각 처리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