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영상제작 동아리 ‘날개’의 비상(飛上)

일반 사람들이 처음 영상을 이야기할 때 보통 ‘너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고 싶은 의욕을 금방 접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각종 방송제작기술과 편집 능력,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등의 고도로 집적화된 노하우(=knowhow: 기술적 지식)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일단 접어두고 사실적 삶을 보여주는 영상 그 자체가 좋아서 모인 여성들이 있다. 영상의 복잡다단함을 보다 쉽게 그림 그리듯, 나에게 혹은 친구에게 말을 걸듯 친숙하게 여기며 ‘일단 저질러 보자’는 결단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일상을 영상에 담아가고 있는 영상제작 동아리 ‘날개’ 회원들을 만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8일 오후, 산곡동에 위치한 달팽이어린이도서관에서 회원들의 정기 모임이 있다기에 찾아갔다. 이들은 매주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 기획회의를 하고 영상과 관련된 기술적 능력도 교감하면서 서로의 신뢰를 다져가고 있다.

▲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꿈꾸며 화려한 날개 짓을 하고 있는 영상제작 동아리 ‘날개’ 회원들. 왼쪽부터 한슬기(24), 한선하(32), 최주영(37), 강유진(26)씨. 나머지 회원인 조안나(24), 정효진(25)씨는 바쁜 일이 있어 참석하질 못했다.


인천여성영화제를 통해 영상의 비상(飛上)을 꿈꾸다

영상제작 동아리 ‘날개’는 20~30대 여섯 명의 비혼 여성들로 구성돼있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부터 영상제작을 해보고 싶은 직장인까지 하는 일도 제각각이지만, 열정만큼은 모두가 하나같다. 이들은 최근 6회 인천여성영화제 트레일러(=영화제를 상징하는 짧은 영상물)를 제작하는 등 조금씩 그 실력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7월에 개최한 5회 인천여성영화제를 마치고 ‘우리도 직접 영화를 만들어볼까’ 하는 의지로 처음에 2명에서 현재 6명의 회원으로 그 위상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회원 중에는 난생 처음 캠코더를 잡아본 사람도 있고, 전문 프리랜서 미디어 활동가(=MJ: 미디어자키)도 있다. 그 만큼 실력으로 회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믿음과 신뢰 그리고 영상에 대한 애정으로 모임을 운영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인천여성영화제 자원활동가들의 만남으로 출발한 모임이 어느새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아무것도 몰랐던 영상에 대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교환하며 기획ㆍ촬영ㆍ편집ㆍ 시나리오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번듯한 결과물을 창출해내기보다는 회원들끼리 소통하면서 서로가 좀 더 알아가자는 취지에서 순수한 친목모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최주영 인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원년 멤버격인 최주영(37) 프로그래머와 한슬기(24ㆍ대학생)씨는 이구동성으로 모임의 성격을 풀이해줬다. 서로가 애초부터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 영상을 택했던 것이었고, 이를 통한 서로의 삶에 담긴 내재적 가치를 발현시키고자 했다.

정겹게 만나면서 영상을 통해 서로를 배워가는 게 행복

회원 가운데서 영상과 관련한 활동을 가장 많이 해왔던 강유진(26) 프리랜서 미디어 활동가는 동아리 교육의 전반을 보조해주면서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섭렵한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

그는 “영화나 TV드라마 등에서 조연출과 편집, 스태프 역할을 해오면서 생각했던 미디어 제작자의 꿈을 이 동아리에서 회원들과 함께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로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기에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맞지가 않다. 그저 우리 회원들끼리 정겹게 만나면서 영상을 통해 서로를 배워가는 게 이 모임의 특성이다”고 소탈한 바람을 전했다.

한슬기씨는 비전문가이지만 영상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 속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와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속 풍경들을 담아 서로가 갖고 있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진실한 이야기)을 나누고 싶다”며 “여성이 갖고 있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의 강점을 살려 영상이 주는 묘한 매력을 함께 느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모임의 순수성과 친목성을 강조했다. 남들 같으면 영상기술을 배워 독립프로덕션을 차린다든지, 아니면 영화를 제작한다든지, 그도 아니면 영화제에 출품이라도 하는 것이 목적일 터인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회원들의 단합을 위해 기꺼이 앞에 열거한 결과물의 욕심을 다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결과물을 발표해 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처음 모임을 결성하게 된 순수한 목적이 다른 어느 것을 대체할 수 없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으로 자연스레 하게 되면 시나브로 훌륭한 작품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형식적 강박을 탈피해 서로의 믿음과 신뢰로 모임을 이끌어간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강유진 프리랜서 미디어 활동가)

때로는 회원 스스로의 삶을 서로가 영상을 통해 반추해보며 도움을 주고, 때로는 비혼 여성들이 겪는 잔잔한 일상들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들려주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을 이야기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고발과 자극의 당연한 아이템을 벗어나 인간 마음 속 내면이 지닌 가치들을 영상을 통해 교감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영상이 주는 친근함과 아름다움의 진정성을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림도 아닌, 사진도 아닌, 영상 그 자체가 전하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카메라 렌즈 속으로 투영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다.

인터뷰가 조금 길어져 퉁퉁 불은 쫄볶기(=쫄면+떡볶이)를 나눠먹으면서도 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그동안 못했던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마치 친자매들처럼 서로의 동정을 챙겨주면서 행복을 나눈다.

직장일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한 한선하(32)씨는 “유진이 너,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화장발 장난 아니게 했다. 그냥 평소대로 해라~” 하면서 친한 언니처럼 다정한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저도 영상을 배우고 싶어 들어왔지만, 회원들과 언니 동생하면서 친하게 지내다보니 꼭 계모임 하듯 편해졌어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이 시간이 정말 기다려질 정도니까 어느 정도 행복한 줄 아시겠죠.(웃음) 함께하는 이 모임이 평생 이어졌으면 좋겠고요, 서로가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래도록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날개’가 하늘 높이 맘껏 멋진 날개 짓을 펼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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