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에 분주했던 한나라당…갈피 못 잡는 범야권

“중소상인들 처지 변했는데 정치권이 못 따라가”

5.18 광주민주항쟁 3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인천시청에서 중소상인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나라당 후보 낙선운동’을 선포한 뒤 인천이 발칵 뒤집혔다.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이하 중소상인전국네트워크)’와 ‘대형마트규제 및 중소상인 살리기 인천대책위(이하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SSM(=기업형 슈퍼마켓) 사업조정 신청지역 인천연석회의(이하 사업조정신청인천연석회의)’는 이른바 ‘SSM 규제 법안’인 유통산업발전법과 대ㆍ중소기업상생협력법 개정안 국회통과를 무산시킨 한나라당을 심판하겠다며 ‘한나라당 후보 낙선운동’을 선포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이번 지방선거의 구도가 정부여당 대 범야권의 대결로 짜인 가운데, 전통적으로 여당 지지층인 상인들이 정부여당을 심판하겠다고 밝혀 상당한 파장을 예고했다.

이를 반증이라고 하듯 중소상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은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천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한나라당은 서둘러 진위 파악에 나서는 한편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 사태를 진화하느라 분주했다. 반면 정부와 여당 심판을 벼르고 있는 범야권은 갈피를 못 잡은 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중소상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날 18일, 인천상인대책협의회와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등 3년 전부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운동을 전개해온 단체 관계자들은 곳곳에서 빗발친 거친 항의 전화와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전화에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았다.

게다가 ‘SSM 규제 법안’ 개정 운동에 물꼬를 튼 갈산동과 부개동 슈퍼마켓 사장과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관계자들은 홈플러스 측으로부터 3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청구당한 터라, 18일 하루 동안 내린 비는 이들을 더욱 측은하게 만들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상인들은 전통적으로 여당 지지층이었다. 줄곧 그랬다. 대략 97년 IMF경제 불황 전까지 먹고 살만 했다. 그 뒤 내리막길을 걸어도 지지 성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고 한 뒤 “그런데 96년 유통시장 개방 후 대형마트와 SSM의 무분별한 난립에 지역상권이 붕괴되고, 거기에 경제 불황까지 겹쳤다. 먹고살만했던 상인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여권은 ‘대기업 프렌들리(=친대기업)’로 일관하고 야권은 변화한 계층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선운동 주체, 시민단체에서 이젠 중소상인

중소상인들의 이번 ‘한나라당 후보 낙선운동’ 선포는 사실상 예고된 일이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정부여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과 경남 상인들이 ‘SSM 규제 법안’ 처리를 미루는 한나라당을 규탄하기 위해 촛불시위와 촛불문화제를 열기도 했고, 대구와 경북, 울산에서도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끊이질 않았다.

이처럼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도처에서 SSM 입점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고, 각지에서 중소상인들이 정부와 여당을 거듭 규탄하자 급기야 지식경제부와 중소기업청 등이 나서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으나 번번이 외교통상부에 막혀, ‘SSM 규제 법안’ 처리는 좌절되고 말았다.

이에 중소상인 대표단은 지난 2월 중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중소상인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민생 현안이었던 것. 단식농성장에는 야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권의 방문이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야 5당은 당론으로 ‘SSM 규제 법안’ 처리를 거듭 약속했다. 한나라당은 방문을 하고도 이렇다 할 대책을 제시 못해 상인들로부터 빈축을 사야만 했다.

이후 전국상인연합회와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사업조정 신청지역 전국연석회의 등은 2월 22일 서울 청계광장에 모여 한나라당 규탄 촛불문화제를 개최하려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고 조계사로 옮겨 열어야했다.

중소상인들은 다시 3월 25일 ‘한나라당 규탄 전국상인 공동행동의 날’ 집회를 열어 정부와 여당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SSM 규제 법안’ 무산 시 한나라당을 심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급기야 국무총리실을 앞세워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도 외교통상부가 ‘WTO 규정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반대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4월 임시국회가 열렸다. 4월 임시국회는 어느 때보다 ‘SSM 규제 법안’통과가 무리 익었다. 중소상인들의 요구안보다 후퇴하긴 했으나 여야가 막판 합의안을 도출해 해당 상임위원회인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개정안 통과는 9부 능선에 다다랐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기존 합의를 깨면서 4월 임시국회는 막을 내렸다.

한나라당의 반대로 ‘SSM 규제 법안’ 처리가 무산되자 중소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중소상인 대표단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한나라당을 강하게 성토한 뒤, “SSM 규제 법안 처리 무산이 한나라당에 책임이 있음을 지방선거에서 심판키로 하고 5월 임시국회에서도 무산 시 본격적으로 한나라당 낙선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앞 다퉈 전통재래시장을 찾는다. 96년 유통시장 개방 후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네 번의 지방선거가 있었지만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자영업자는 더욱 몰락했다.

선거 때마다 재래시장을 찾은 정치인들을 맞이하기만 했던 상인들이 이젠 정치권을 심판하겠다고 나섰다. 낙선운동의 주체가 6년 전 시민단체에서 이제 상인으로 바뀐 셈이다. 중소상인들의 한나라당 후보 낙선운동이 미칠 파장이 어디까지일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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