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2009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을 특별하게 보낼 요량이었다. 멀리까지는 못 가더라도 괜찮은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자고 친구와 약속도 해둔 터였다. 그러나 너무 추웠다. 추우니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결국은 집 근처에서 술이나 한잔하기로 약속을 수정했다.

친구와 송구영신을 함께 한 것이 대략 5년째인데, 둘 다 워낙 노는 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인간들이었던지라 매년 소백산에 왜목마을에,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누군가의 집에라도 가서 송년 파티를 열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귀찮음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그냥 술만 마시는 건 그러니 영화라도 한편 보기로 하고 집 근처 극장으로 가는 길, 생각했다. 정말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술자리에서 친구와 지난 1년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꽤나 심각한 이야기도 오갔다. 앞으로 시작할 1년에 대해서도 수다를 떨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았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 나이 든 선배들, 어른들 이야기가 나왔다. 수다의 결론은,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진다는 것.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이거 내가 예전에 했던 이야기인데, 하는 기억이 퍼뜩 떠올라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나눴다. 우리도 어느새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우리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했다. 정말 나이가 들고 있구나.

술집을 나온 우리는 맥주를 사들고 노래방에 갔다. 여럿이 간 것도 아니니 분위기 맞추느라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듣기만 하고 불러본 적은 없는, 요즘 내가 예뻐하는 2PM이나 2NE1 노래부터 찾아 불렀다.

나름 랩 감각이며 리듬 감각이며, 젊은 감각을 제대로 즐길 줄 안다고 평가받던 우리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평소 불러보니, 꽤 많이 들었던 노래였는데도 불구하고 영 불러지지가 않았다. 결국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10년 전에 함께 불렀던 레퍼토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제대로 흥이 났다. 생각했다.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그렇게 진한 송구영신으로 2009년을 보낸 뒤 맞이한 2010년. 1월 1일부터 3일까지 황금연휴였던 사흘 동안 꼬박 앓았다. 원래 1년에 한 번 정도는 호되게 앓는 편인데 2009년은 다행히도 그냥 지나가나 했다. 별다른 관리도 하지 않았는데 몸이 좋아졌나, 살짝 자만도 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2010년 새해 벽두부터 심한 몸살에 걸린 것이다.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끙끙,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아팠다. 생각했다. 한 해를 맞이하는 게,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이렇게 아픈 거구나.

2010년은 이렇게 멋진 송구영신조차 가로막는 귀찮음으로, 말만 많아지는 주접으로, 최신 가요를 따라 부르지 못하는 씁쓸함으로, 새해 벽두부터 끙끙 앓는 몸살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함께 술잔 주고받으며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친구가 있으니 굳이 일출을 보기 위해 멀리까지 나가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괜찮은 새해맞이가 아닌가. 비록 말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으나, 또 그만큼 우리의 경험이 쌓인 것이니 그 또한 괜찮지 않은가.

최신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더라도 둘이서 흥겹게 놀 수 있는 10년 전 레퍼토리가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황금연휴를 꼬박 앓았으나 한 해 동안 앓을 것 다 앓았으니 2010년 한해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지 않겠나.

굳이 멋지고 특별한 송구영신 세레모니만 기억되는, 젊은이들의 단발마적 수다만 용인되는, 인기가요 차트 1등만 기억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2010년 한 해는 멋지고 특별한 세레모니만이 아닌, 젊은 감각만이 아닌, 가요차트 1등만이 아닌, 아이부터 어른까지, 부자든 가난한 자든, 누구나 기억되고 누구나 기념할 수 있는 그런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2박3일 성장통을 통해 깨달은 새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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