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 ‘땅’ 소송잔치, 웃어넘길 일 아니다

그 조상에 그 후손!

1910년 한일합병 당시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본에 넘기는 데 앞장섰던 친일파 송병준이 일본측에 거액을 요구한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송병준이 제의했다는 ‘1억5천만엔’은 한국은행이 분석한 결과 지금 우리 돈으로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그로부터 92년이 지난 2002년 송병준의 증손 송돈호를 비롯한 7명은 부평미군기지 일대 땅 13만 3천평의 소유권을 주장, 이중 2천9백56평에 대해 자기네 땅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 등기말소 소송을 냈다. 지금부터 2년 전 소송을 제기한 2천9백56평의 공시지가는 62억원에 달한다.
미군기지터가 송병준의 땅이었다며 “원소유주인 후손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일파 송병준 후손의 ‘땅’ 소송은 2002년 3월 29일, 674일 동안의 천막농성과 7년 동안의 끈질긴 반환운동으로 이끌어낸 부평미군기지 반환결정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났으며, 관련단체들과 시민들은 분노와 반발에 앞서 어이없어 했다.

 

친일파 후손 ‘땅’ 소송잔치, 웃어넘길 일 아니다

“매국의 대가로 얻은 재산은 결코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없으며 헌법상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다.”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매국노의 후손들이 왜 기고만장하여 너도나도 ‘땅’ 소송잔치를 벌이고 있는가?  변호사까지 사서 말이다.
문제는 지금은 법적으로 매국의 대가로 얻은 재산을 환수할 규정조차 없기 때문이다.
송병준의 후손들은 미군기지 터 소송에 앞서 1990년대 이후 경기 파주 등 국내 곳곳에 있는 땅들에 대해 4차례 소송을 내 3차례는 패소하고, 경기도 양주군 일대 1천8백평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특히 일제로부터 남작 직위를 받은 친일파 이재극의 손자며느리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지난해 4월 서울고등법원은 2심 판결에서 “반민족 행위자나 후손의 재산보호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법률 등에 의한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실정법상 한계를 지적했다.

 

‘친일재산환수법’ 제정 시급  
친일행위로 얻은 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6대 국회에서 관련법이 발의됐으나 처리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이번 17대 국회에 다시 손질한 관련법이 발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6대에서 발의됐던 친일재산환수법은 재산환수 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일제로부터 훈작을 받거나 을사보호조약, 정미7조약의 체결을 주창한 대신 등 고위공직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로 한정했다. 당사자들의 재산은 물론 이들로부터 상속ㆍ증여받은 재산을 대상으로 ‘재산환수위원회’가 조사ㆍ심의를 거쳐 친일 활동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는 것이 판명되면 국가에 귀속토록 했다.
이렇게 되면 송병준 후손들의 땅 소송 등 최근까지 잇따르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환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 자체가 사실상 원인무효가 돼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을 침해하고 소급 입법 금지 원칙을 깬다는 반론에 부딪힐 가능성이 적지 않아 논란도 예상되고 있다.  
이 법이 ‘모든 국민은 소급 입법에 의해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는 헌법 13조2항과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명시한 헌법 23조1항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
반면 이에 대해 헌법은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일제시대는 그 법통을 계승한 시대가 아니며 따라서 매국의 대가로 얻은 친일파의 재산권은 헌법 정신상 보호되는 재산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최용규 국회의원 측은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이 마무리되면 친일재산환수법도 다시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제기한 부평미군기지 땅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31일 애국지사 민영환 선생의 후손들이 같은 땅을 놓고 소유권을 주장, 재판에 참가하고 있어 법원의 최종 판단은 더 지켜봐야 한다.
부평미군기지가 오는 2008년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결정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들의 땅 소송은 친일잔재청산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함뿐 아니라 부평미군기지가 시민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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