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롯데,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는 시엠송으로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유혹하더니 이젠 ‘롯데마트’라는 붉은 네온사인간판으로 지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이름.

17사단, 수도 서울과 인천의 서쪽을 방어하며 늘 군사쿠데타에 이름이 오르내리더니 지금은 예비역들 사이에서 ‘당나라’ 또는 ‘파라다이스사단’이라 불리는 이름.

계양산, 김포평야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늘 그 자리에서 사람뿐 아니라 뭇 생명들을 어머니 품으로 감싸는 이름.

롯데와 17사단 그리고 계양산, 이들은 계양산의 붉은 단풍만큼이나 올가을 인천을 뜨겁게 달구게 될 것 같다. 올해 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제2롯데월드 사태가 계양산에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7사단이 그동안 수차례 ‘부동의’했던 롯데골프장에 대해 조건부로 동의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군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롯데월드를 허가하고 육군은 인천시민과 이웃생명들의 환경권과 생존권을 담보로 계양산롯데골프장에 동의하고. 재벌의 재력 앞에선 군(軍)의 원칙과 자존심도 헌신짝 신세인 모양이다.

국방부는 공군참모총장을 교체하면서까지 십수년 동안 비행 안전을 이유로 반대해오던 제2롯데월드를 비행장 활주로 각도를 3도 틀어 허가해주었다. ‘반(反)서민 친(親)재벌’인 MB의 ‘전향적 검토’ 지시 한마디에 역대 정부들에서는 꿈쩍 않던 손바닥이 새털보다 가볍게 뒤집힌 것이다.

계양산 롯데골프장에 대해서 그동안 17사단은 인천시의 특혜행정에도 불구하고 훈련장과 인접한 홀을 도비탄 위험이 없는 능선 후사면으로 이전하거나 사격장을 이전해야 한다며 골프장과 군부대가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랬던 17사단이 달라진 게 전혀 없는데도 조건부 동의를 한 것이다. 설마 이번까지 군에서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란 인천시민의 믿음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동안 주민들은 군 관련 규제 때문에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못했는데 특정재벌을 위해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골프장을 허가한다면 군의 존재 목적인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군작전상의 이유로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골프장에 대해 작전상문제점 해소 없이 동의한다면 과연 어떤 인천시민이 17사단과 국방부를 신뢰하겠는가?

앞으로 계양산에 불어 닥칠 난개발의 광풍은 전적으로 군의 책임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좋고 고용창출도 좋고 사유재산권 보호도 좋지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과 맞바꿀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17사단은 인천과 수도권 시민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최근 경찰에 적발된 사례들을 보면 불법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하는 재벌들의 로비는 이미 군 작전능력을 능가하고 있다. 계양산 골프장을 추진하고 있는 롯데건설은 부산에서 500여명의 직원을 동원해 평가위원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을 특별 관리한 것은 물론이고, 경쟁업체를 따돌리기 위해 첩보영화에서처럼 열차의 객실통로에서 수억원의 뇌물을 전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몇 년 전 계양산 골프장 추진 로비에도 롯데건설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대거 동원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7사단의 계양산 골프장에 대한 부동의 원칙 고수에서 조건부 동의로의 급선회 과정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조직적인 로비가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골프장으로 인해 군작전상 중요한 사격장을 폐쇄해야만했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골프장의 경우, 군 훈련 중에는 운영하지 않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골프장을 협의해주었으나 사격장 소음에 대한 골프장 이용객들의 민원 폭주로 결국 군부대는 사격장을 폐쇄해야만했다. 계양산 골프장 예정지 옆 사격장은 사단 유일의 사격장으로 절대 필요하다는 게 17사단의 입장이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라면 이등병시절 달달 외웠을 ‘군인 복무신조와 우리의 결의’의 첫 문장이다. 올가을에도 역시 붉게 물들 계양산을 생각하면 소신과 원칙의 진정한 군인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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