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부평3동 신촌노인정 한자교실의 강신무 훈장

▲ 8월 17일 열린 신촌노인정 '여름방학 한자교실'수료식 장면<사진제공ㆍ부평3동 주민센터>
부평3동 신촌노인정에 ‘82세 훈장님’이 계시다. 갓도 쓰지 않고 회초리도 들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옛날 훈장님 못지않게 엄하고 사랑도 가득하다.

훈장님 강신무(82) 할아버지는 신촌노인정(회장 김조연)에서 10년 넘게 동네 아이들에게 ‘생활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17명의 초등학생들이 올망졸망 모여 ‘2009 여름방학 생활한자교실’ 수료식을 가졌다. 김조연 노인회장과 전길환 동장의 축사가 있을 만큼 작은 잔치도 열렸다.

“우리는 천자문(千字文)으로 안 가르쳐요. 실제 생활에서 흔히 쓰는 한자를 기본으로 300자를 가르쳐요. 읽고, 뜻 아는 것까지만 해도 돼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방학마다 오면 12번인데, 절반만 출석해도 500자는 터득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한자에 흥미 붙이면 저절로 알게 되는 한자도 많지. 급수로 따지면 6~7급 정도 되는데 노인정에서 배운 아이들은 알아서들 한자급수시험 봐서 자격증도 따고 그래요”
신촌노인정 생활한자교실에 대한 강신무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한자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 올해부터 한자교실을 함께 진행한 권태성(73) 할아버지가 직접 워드작업을 해서 빳빳한 달력에 붙였다. 헌 빨래건조대를 개조해 한자 교재를 걸어 아이들이 보기 쉽게 만들었다. 중학교 수학 선생이었던 권 할아버지는 아이들 통솔하는 재주도 남다르다.

골목에서 아이들을 만나기가 힘든 세상인데 아이들 모집은 어떻게 했을까?

“요즘은 아이들 갈 곳이 많아요. 학원ㆍ방과후교실ㆍPC방에 갈 수 있으니까 굳이 한자교실까지 안 오려고 하죠. 그래도 우리는 방학 되면 홍보글도 써서 붙이고, 아이들 집집마다 전화를 해요. 그러면 왔던 아이가 또 오고 그 아이를 따라서 또 오고 그래요” 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할머니가 한 마디 거든다. “옛날에는 공부 끝나면 엄마들이 떡도 해오고 고맙다고 인사도 오고 그랬는데 요즘 엄마들은 다들 바쁘니까 그런 건 없어요. 그래도 기사 쓸 때는 엄마들이 인사 많이 한다고 좀 써줘요” 할머니는 이 노인정의 총무를 맡고 있다.

강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엄마들이 안 오는 건 괜찮아요. 아이들이 많이 오는 게 더 좋아. 아이들이 잘 알아듣고 배운 것을 써 먹을 때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한 번은 밖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꾸뻑 인사를 하는 거야, 누구냐고 그랬더니 어렸을 적에 노인정에서 한자 배웠던 학생이라고 그래.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꼬마 녀석이 벌써 그렇게 커서 대학교 갔어”라고 좋아했다.

▲ 신촌노인정의 강신무(82ㆍ왼쪽) 할아버지와 권태성(73ㆍ오른쪽)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한자 교재를 보여주고 있다.
부평구에 있는 183개 노인정 중에 한자교실을 열고 있는 노인정은 19개 정도고, 부평3동의 5개 노인정 중에서는 신촌노인정만 한자교실을 열고 있다. 신촌노인정 한자교실이 부평구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됐을 거라는 강 할아버지의 말엔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아이들 가르치기 훨씬 전부터 다른 분들도 가르쳤어요. 바로 전 훈장님은 돌아가셔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20년은 족히 됐을 걸요. 요즘은 매번 사진도 찍어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17년 전에 신촌노인정에서 한자수업을 받았던 이성은(27ㆍ여)씨는 “그때는 한자ㆍ일본어ㆍ서예를 다 가르쳐주셔서 교육적인 효과가 매우 컸어요. 특히 그때 배운 한자와 일본어는 지금 제 일본어 실력의 기반이 됐죠. 아직까지도 한자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니 동네 아이들이 꼭 참여해서 즐겁게 배우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한자 표기가 많이 사라지고 한글 사용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시대에 ‘한자 수업’에 대한 훈장님의 생각은 어떨까?

강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말은 한자를 배워야 말이 서로 통해요. 생년월일ㆍ국민ㆍ민족ㆍ학교… 아이들이 흔히 쓰는 말도 다 한자 풀이를 해주지 않으면 뜻을 몰라요. 그러니 한자를 많이 배운 아이가 언어실력도 높고 상대방 말도 얼른 이해할 수 있지. 아이들한테 한자 수업은 꼭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권 할아버지도 거들었다. “한학 전문가이신 강신무 어르신이나 저처럼 한자를 배운 세대들은 한자를 모르면 참 불편해요.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순 한글로 가르치면 한자를 몰라도 불편한 건 없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 과도기에 있는 지금의 아이들이에요. 신문이나 책에 한자 표기만 없어졌을 뿐 낱말 자체는 한자인 경우가 많으니까 한자 공부가 필요하죠. 하지만 배워야 할 한자 수는 점점 줄어들 거예요”

해를 거듭하면서 신촌노인정의 한자교실은 마을의 전통이 되고 있다. 아이들은 마을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받고 건강하게 자란다. 어르신들은 예절교육에도 열의를 보인다. 아이들에게 마을을 사랑하고 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의 씨앗도 뿌린다.

“스승은 제자보다 5분 먼저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내가 많이 알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내가 아이들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는 거지요. 나도 여든이 넘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은 공부해요. 선생님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면 존경하고 잘 따라오지요.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한자 수업은 어린이들에게 지루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훈장님의 신념과 사랑도 배울 수 있는 어린 시절의 특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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