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조항 많은 개정ㆍ준비 안 된 업무위임’에 ‘속 타는 상인’

대기업이 기업형 슈퍼마켓 SSM을 앞세워 골목상권을 잠식하고 나서자 입점 예정지 곳곳에서 중소상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사업조정을 신청했고 지난 7월 일시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그 뒤 사업조정 관련 업무 일부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면서 지역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중소기업청은 8월 초 관련법 운영세칙인 ‘수ㆍ위탁거래의 공정화 및 중소기업의 사업영역 보호에 관한 운영세칙’ 고시 개정을 통해 SSM의 확장에 제동을 건 사업조정제도 관련 일부 업무를 지자체(광역시ㆍ도)로 위임했다.

이번 개정으로 사업조정 관련 절차 중 시ㆍ도지사의 역할이 사실상 크게 부각됐다.

“사업조정 취지 무색케 할 독소조항도 많아”

하지만, 이번 개정이 오히려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조정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할 소지가 있다며, 상인단체와 시민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개정 된 고시내용 무얼 담고 있나?
개정된 ‘수ㆍ위탁거래의 공정화 및 중소기업의 사업영역 보호에 관한 운영세칙’의 주요 내용은 ▲시ㆍ도지사에 대한 권한위임 업종에 ‘음ㆍ식료품 위주 종합 소매업’ 추가 ▲사전조사신청제도 도입 ▲시ㆍ도지사가 ‘사전조정협의회’ 설치ㆍ운영 ▲10인 이내 사전조정협의회 위원 구성 및 90일 이내 처리 등이다.

피해가 있거나 피해가 우려되는 중소상인들은 1단계로 개정 전과 동일하게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된다. 이때 중소상인들은 실태조사를 위해 사전조사신청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그 뒤 중소기업중앙회는 시ㆍ도지사에게 사업조정을 신청하고, 사업조정을 신청 받은 해당 시ㆍ도지사는 90일 내의 자율조정기간 동안 사전조정협의회를 통해 합의를 도출한다. 합의 결렬시 해당 사업조정신청은 중소기업청으로 넘어가고 여기서부터는 개정 전과 동일하게 ‘사업조정심의회’ 절차를 거친다.

대기업의 시장진출(SSM 입점계획)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운 중소상인은 사실 확인을 위해 관련서류를 작성해 중소기업청에 사전조사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을 받은 중기청은 대기업의 사업 진출 계획을 조사해 중소상인에게 통보해야한다.

이들은 사업조정 대상에 음ㆍ식료품 위주 종합소매업, 이른바 슈퍼마켓이 포함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사전조사신청제도와 사전조정협의회 구성, 90일내 처리 등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를 반증 하듯 인천에서는 벌써부터 지자체와 상인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에 새로 도입된 사전조정신청제도의 경우 중소상인이 신청하는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가 대기업이 공개해야 하는 항목도 명확치 않아 상인단체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대형유통업체 측 역시 어디까지 공개해야하는지 몰라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아울러 사전조사신청을 받은 중소기업청이 해당 대기업에 정보공개를 요구해도 대기업은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 게다가 ‘정당한 사유’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한 것도 문제점으로 남는다. 또 대기업이 정보공개를 거부하더라도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는 것 외에 별다른 제재를 가할 수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신규철 공동집행위원장은 “사전조사 신청절차가 너무 까다롭다.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대부분의 입점 계획은 소문이나 관계자의 제보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중기청은 ‘사업의 인수․개시 또는 확장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인지하는 이유를 기재한 서류’에 관련 자료를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있다”며 “중소상인들의 사업조정 신청을 돕기 위해 입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인 계획단계에서도 사업조정신청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오히려 훼방을 놓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바뀐 운영세칙에는 해당기업이 사전조사신청에 대해 반드시 공개해야 할 의무사항이나 강제조항이 없다. 실제로 청주와 전주, 울산에서 사전조사신청을 제출했으나 중기청은 현재로선 사전조사 신청에 의미가 없다고 했다. 제도는 만들어놓고 해당 기관조차 혼선을 빚고 있다. 기업들도 벌써부터 영업비밀 운운하며 보이콧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ㆍ도지사가 중소기업중앙회로부터 사업조정을 신청 받아 ‘자율조정까지 90일 이내 처리’ 조항도 도마 위에 올랐다. 중기청은 지자체가 양측 의견 청취(20일), 양측의 사전조정협의회 준비(30일), 사전조정협의회 개최(3회, 30일), 양측 내부의사결정기간(10일) 등을 감안할 때 90일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해 이 같이 결정했다.
하지만 모법이나 시행령, 운영세칙 어디에도 90일에 관한 규정이 없어 오히려 사전조정협의의 제약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규철 공동집행위원장은 “협상시간을 빌미로 대기업이 시간 때우기로 임할 경우 중소상인들은 협상에 주도적으로 임할 수 없다”며 “중기청 스스로 ‘제조업의 경우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게 아니라 통상 1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런데 유독 SSM에 대해서만 90일 기한을 못 박는 것은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고 말했다.

첫 사전조정 협의지역 인천, ‘일방통행 충돌’
인천대책위, “사전조정협의 보이콧 검토 중”

고시 개정으로 중기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던 인천의 두 곳, 갈산동과 옥련동 상인들의 사업조정 협의는 인천시로 위임됐다. 현재 인천시는 사전조정협의회를 열기 위해 필요한 협의회 위원을 위촉하고자 관련단체와 기관에 공문을 보낸 상태다.

이보다 앞서 중기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던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공동대표 인천상인연합회장ㆍ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이사장ㆍ인천상인대책협의회장 등)는 사전조정협의회를 공정하게 구성하기 위해 지난 8월 5일 인천시에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 요청 당시 인천시는 업무를 위임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업무파악이 안 됐다며 업무 파악 후 보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시는 변화된 입장을 보였다.
사업조정 업무 일부가 지자체로 위임되긴 했지만 지자체 역시 이를 받을 준비가 안 돼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정재식 사무국장은 “시에서 그렇게(업무파악 후 보자) 요청하자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10일 아침 ‘시가 사전조정협의회를 구성할 계획’이니 ‘중립을 지킨다’식의 언론보도를 접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하게 얘길 했다. 사업조정 관련제도 일부를 시ㆍ도지사로 위임한 부분이 있으니 보자고 했다. 헌데 시가 중소상인과는 단 한 번의 상의도 없이 일을 추진했다”며 “그래서 거듭 중소상인들의 참여를 요청했으나 시는 ‘언제 일일이 상인단체를 다 만나냐? 시는 슈퍼마켓협동조합만 상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결국 시는 일방적으로 사전조정협의회를 구성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 후 12일에도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는 인천시에 안상수 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정재식 사무국장은 “인천이 전국 최초로 지자체 주관의 사전조정협의회를 진행하는 만큼 SSM 측과 상인 측 의견이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 구성 논의과정부터 상인들의 참여를 보장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인천시는 인천상인연합회 만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답신을 보냈다.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는 위원 구성은 민감한 문제인 만큼 공개적으로,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시는 8월말까지 위원 구성을 완료할 계획이다.

사업조정 업무를 위임받은 인천시 관계자는 14일 <부평신문>과 한 전화통화에서 “8월말까지 사전조정협의회 위원 구성을 완료할 계획으로 위원 위촉 대상자에게 동의서를 보낸 상태”라며 “인하대와 인천대 교수, 인천발전연구원, 인천소비자단체협의회, 인천지방중소기업청, 인천시 경제통상국장, 시의회 의원, 삼성테스코, 인천슈퍼마케협동조합연합회 등의 기관에 동의서를 보냈고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신규철 집행위원장은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명의로 보냈는데 이를 쏙 빼고 인천상인연합회로만 국한했다. 게다가 시장 면담을 요청했는데 과장이 나와 면담을 하겠다고 했다. 다분히 의도적인 술수로 볼 수밖에 없다”며 “사업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면담하자고 했더니 업무 파악 안 됐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중소상인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위원 구성과 사전조정협의에 대해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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