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성운전자회 '나눔과 헌신으로 달려온 51년'

[인천투데이 조연주 기자] 인천의 대소사를 함께 겪으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김없이 인천시민의 발을 자임해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천여성운전자회(이하 여운회) 회원들이다.

여운회 사무실에서 만난 회원들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차에 앉아 시동을 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여운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경자 회장과 김점순 감사, 임병수 복지부장, 김현순 자문위원을 만나 여운회가 달려온 길과 앞으로 갈 길을 들어봤다.

“택시운전자로서, 봉사자로서 우리 정말 열심히 살아왔어요”라며 호탕하게 웃는 김 회장 너머에는 이들의 자부심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수십 년에 걸쳐 받은 표창장들이 벽 한 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인천여성운전자회 김경자 회장, 임병수 복지부장, 김점순 감사, 김현순 자문위원.(앞쪽부터)

택시로 할 수 있는 봉사, 늘 고민
나눔으로, 헌신으로 51년 달려와

여운회는 회원 1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는 봉사단체다. 1969년에 만들었으니 51년 됐다. 김 회장은 “우리가 해온 봉사활동 이력만 나열해도 하루는 넘게 걸릴 것”이라며 웃었다.

해마다 적어도 다섯 번이 넘는 기부와 봉사활동을 이어온 여운회는 출범과 동시에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해왔다. 1970년대에는 주로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모금운동을 진행했고, 80년대에는 보육원과 양로원, 교도소 등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택시 안에 비치한 저금통에 잔돈을 모아 소외계층을 돕는다.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도 꾸준히 진행한다. 교통안전공단과 함께 교통안전네트워크협의회를 꾸려 ▲버스정류장 3대 질서 지키기 운동(인도 가까이 버스 정차, 승객 차도로 내려가지 않기, 버스정류장에 택시 정차 안 하기) ▲보행자 사망사고지역 알리기 ▲교통 혼잡지역 주정차 관리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여운회는 ‘택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독거노인과 함께 떠나는 효도관광 봉사를 시작했다. 2008년에는 다문화 신랑ㆍ신부 50쌍에게 웨딩카 서비스를 지원하기도 했다. 회원들이 택시를 웨딩카로 직접 꾸며 신랑ㆍ신부를 예식장까지 태워줬다.

이밖에도 지난 10년간 장애인복지시설 반찬 배달과 인천시자살예방센터와 함께하는 생명사랑 자살방지 캠페인도 벌였으며, 최근에는 인천시ㆍ여성단체협의회와 함께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면마스크를 제작했다. 동구자원봉사센터에 라면과 즉석밥, 통조림 등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기부하기도 했다.

틈틈이 성금도 기부한다. 여운회 이름으로 지난 8년간 기부한 금액이 3000만 원을 넘는다. 김 회장은 2018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자로 초청받아 김정숙 영부인과 함께 오찬을 하기도 했다.

인천여성운전자회는 2008년에 열린 다문화 합동결혼식에 회원들이 손수 꾸민 웨딩카를 지원했다.(사진제공ㆍ인천여성운전자회)   

정보통으로, 때론 상담사로

김 회장은 “남성이 훨씬 많은 택시업계에서 일하고, 시내를 활보하는 역할을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행동이) 거칠어지는 걸 느낀다”고 한 뒤 “그래도 우리는 인천을 활보하는 정보통이자 상담사이다. 가장 많은 보통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택시를 운전하다보면 상담사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차마 못할 속상하고 괴로운 이야기를 털어놓는 손님을 만난다. 어떤 손님은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쓰여 있다. 그럴 땐 “택시에서 내리면 그만이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한다. 그러면 대부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내릴 때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인사하는 손님을 볼 때면, 택시운전자가 갖는 보람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여운회 회원들은 입을 모아 ‘택시운전을 하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손님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는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손님과 저 손님에게 들은 말이 서로 다를 때도 있다. 그걸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자신의 관점이 생길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정보통이 된 것 같다.

인천여성운전자회 사무실에 모범운전자 표창장 등이 빼곡히 걸려있다. 

여성이 택시운전을 한다는 건…

여성이 택시를 운전한다고 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따라온다. 집 안 일은 누가 하느냐며 걱정하는 볼멘소리, 여자가 어떻게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고 있냐며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길….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한다.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시선은 이젠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운전도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내비게이션은 잘 볼 수 있겠느냐”고 핀잔하는 손님을 만날 땐, 조금 서럽다. 아무 이유도 없이 “여자가 왜 나와서 운전하느냐”고 소리 지른 손님도 만났다. 그 순간, 맞서 싸우고 신고하고 싶었지만, 가슴 저 밑으로 꾹 눌렀다. 싸워봤자 마음만 상하고 시간 뺏기기밖에 더하겠나 싶어서다.

“사실은 인천에서 가장 빠른 길, 가까운 길을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있는 게 우리다. 우리는 인천 인구가 50만 명일 때부터 운전대를 잡았다. 당시에는 택시 안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 심지어 강도도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세상이 참 좋아졌다. (여성) 택시운전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치안도 좋아졌다. 24시간 녹화 가능한 블랙박스가 보급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끼리는 ‘신이 내려준 보물’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에 만취한 남성이 여성 택시운전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조금 달라졌나 싶으면서도 매해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세상이 언제쯤 달라지려나 싶기도 하다.

택시운전사들이 ‘진상’ 손님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교통사고다. 몇 달 전 장안의 화제였던 ‘도로교통법’ 개정(민식이법)으로 공부도 많이 했다. 차에 타는 순간부터 사람이 아닌 ‘차’이기 때문에 항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운전한다.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폐쇄됐지만, 여운회 사무실에는 탁구대가 3대 있다. 회원들은 운전을 계속하기 위해 운동 중에서도 다리운동을 특히 열심히 한다. 여운회는 대한체육회가 진행하는 여성 체육활동 ‘미채움 프로젝트’도 함께하고 있다.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택시운전사에게 운동은 필수다. 인천여성운전자회 사무실에는 탁구대가 3개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여운회 회원이 더 이상 늘지 않는 게 김 회장의 고민 중 하나다. 이제 택시운전을 선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때 ‘취업 등용문’으로까지 불린 여운회에 신규 가입하는 회원 수는 1년에 한두 명 남짓으로 줄었다. 지금 회원들과 오래오래 봉사활동으로 정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김 회장은 말했다.

여운회의 향후 계획을 묻자, 김 회장은 “인천시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크다”며 “받은 만큼 베풀고 싶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지역에서 우리가 필요해 내미는 손을 거부하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여운회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불러 달라. 택시타고 푼푼한 마음 챙겨 달려가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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