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기 시민기자의 인천 섬 기행] 강화군 볼음도(乶音島)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볼음도는 ‘고려사’에 파음도(巴音島)로 기록돼있으나 시대가 내려오면서 보음도(甫音島), 폴음도, 팔음도 등으로 기록돼있다. 조선 인조 때엔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로 가던 중 풍랑으로 이 섬에 기착해 15일간 체류하다 둥근달을 봤다고 해서 만월도(滿月島)로 불렸다. 그후 언제부터인가 임경업 장군의 보름간 체류와 보름달을 보았다는 이미지가 합해져 발음대로 볼음도로 불렸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한자에는 ‘볼’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甫)자에 ‘ㄹ’에 해당하는 을(乙)자를 붙여 중국에 없는 한자 볼(乶)자를 만들었다.

볼음도로 가는 길

동쪽 방파제 위에서 바라본 풍광. 석모도, 강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도 외포리선착장에서 볼음도에 가는 배가 뜬다. 단, 수심이 낮을 때는 선수포구에서 선박을 운항하기 때문에 미리 알아봐야한다. 인터넷에서 ‘삼보해운’을 치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볼음도까지 대략 1시간 10분 걸린다.

볼음도선착장엔 대합실 하나만 달랑 있는데 평상시에 여행객이 많지 않아 배에서 내리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썰렁할 것 같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섬이다. 마치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다.

민박집에서 휴식

볼음도 나들길 안내도.

너무 이른 새벽에 외포리까지 운전하고 왔더니 섬에 들어와 민박집에 도착하자 나른하다. 우선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잠시 수면을 취하고 점심을 해서 먹었다.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조개잡이 체험을 말하는데 적어도 3시간 이상은 해야 한단다. 섬을 답사해야하기에 조개잡이는 포기하고 사먹기로 했다.

저녁에 상합탕을 끓였는데 이런 맛 처음이다. 청정해역이기에 싱싱한 데다 달달한 살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국물도 얼마나 진한지 애호박과 양파를 썰어 넣고 죽을 만들었다. 조개잡이 체험을 다녀온 사람들을 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아와 찜이나 구이로 먹고 있다.

조갯골 해수욕장

볼음도선착장에서 본 아차도와 주문도.
당아래마을. 볼음도의 민박집이 거의 이 마을에 몰려있다.

강화나들길 13코스인 볼음도길이 있지만 당아래마을에 위치한 민박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걷기로 했다.

조갯골 해수욕장은 길이가 1.5km 정도로 수심이 깊지 않아 해수욕하기 좋다. 모래사장 뒤로는 길게 둑이 쌓여있고 그 위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소나무 숲이 해수욕장을 따라 까마득히 펼쳐져있다. 모래도 매우 곱다. 조갯골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곳에는 물이 빠지면 조개가 많이 나온다. 펄에서 조개 잡는 재미도 쏠쏠하다.

둑 위에는 벤치가 줄지어 놓여있어 너른 바다를 보며 휴식을 취하기 좋다. 벤치에 앉아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을 망연히 바라본다. 멍 때린다는 것이 실감난다. 텐트를 치고 일주일 정도 쉬며 자유인이 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폐교가 된 서도초ㆍ중학교 볼음분교

폐교가 된 서도초·중학교 볼음분교.

1942년에 볼음초등학교, 1976년에는 중학교 볼음분교가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볼음초교엔 학생이 한때 200여 명 있었다는데, 점차 줄고 결국 한 명도 입학하지 않아 2018년 12월에 폐교했다. 현재 서도초ㆍ중학교 볼음분교에 주민들이 특산물 전시장 설치를 원하고 있어 강화군과 협의 중이다.

젊은이들이 다 떠난 노년의 섬, 서해의 모든 섬이 같은 실정이다. 다만 중년ㆍ노년이 돼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으며, 도시에서 섬을 찾아드는 사람도 있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변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800년 수령의 볼음도 은행나무

800년 수령의 볼음도 은행나무.

볼음저수지 옆에 8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높이 24.5m, 밑동 둘레 9.7m로 천연기념물 304호로 지정됐다. 마을 보호수 역할을 하고 있는데, 800여 년 전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부부나무 중 홍수로 떠내려 온 수나무를 건져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부부나무로 알려진 ‘북한 연안 은행나무’는 북한에서도 조선 천연기념물 165호로 지정됐으며, 연안군 호남리 호남중학교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단다.

매해 1월 30일이면 이곳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풍어제를 지냈다는데, 한국전쟁 이후 출어 금지와 기독교 전파로 이런 풍속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은행나무의 가지를 훼손하거나 떨어진 가지를 가져가 불을 때면 급살을 맞는다고 한다. 시공을 넘어 상상하는 게 좋다. 모진 풍상을 말없이 견디며 거대한 줄기를 만든 인고의 세월, 우리 삶도 이렇게 견디고 이겨나가야 하는 과정이 아닌지.

볼음저수지의 저어새 무리

볼음저수지.

은행나무 옆 볼음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사람의 탄성에 놀라 가보니 가물치를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1m는 넘는 것 같다. 가물치는 피로 해소나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을 가져 몸보신에 좋다고 하는데, 입맛만 다실 뿐 그림의 떡이다.

볼음저수지 제방 길을 한참 걸어가니 저수지 건너편에 저어새 50여 마리가 무리지어 있다. 줌을 당겨보지만 렌즈의 한계로 더 이상 당길 수가 없다.

저어새는 세계적으로 거의 멸종 단계여서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 목록에 위기종(EN)으로 분류된 국제보호조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 205-1호로 지정됐다. 지구상 생존 개체수가 2014년 동시센서스에서 2726개라는데, 한꺼번에 50여 마리를 봤으니 행운이다.

농로를 따라 봉화산 너머 방파제로

볼음도 논의 벼농사.

볼음도는 물이 많은 섬이다. 곳곳에 논이 펼쳐져 있고 수로도 제대로 갖춰져 있다. 섬답지 않게 논이 많아 포근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마을을 둘러싼 벼들을 보며 걷다보면 마음도 몸도 시원해진다. 이 섬의 많은 논에선 유기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얼마 전까지 탈곡장이 있었는데, 운영수지가 맞지 않아 지금은 섬 밖에 나가 탈곡한단다.

농로를 따라 봉화산 너머 바다로 향하다 보니 멀리 방파제 위에 있는 시멘트 블록이 앞을 가린다. 넘어가지 말라는 군의 경계표지로 알았는데, 태풍 때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 논농사에 피해를 주는 걸 줄이기 위해 블록을 더 올린 것이라 한다.

방파제 위에 오른 순간 앞에 펼쳐진 광경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지 교동도ㆍ서검도ㆍ석모도ㆍ강화도 등 섬들이 둘러싼 바다와 끊임없이 바람이 몰고 오는 자잘한 물결들, 각양각색의 구름들과 터진 틈으로 보이는 일출의 여린 빛이 어울려 환상을 빚어낸다.

섬이 포근하다는 느낌, 한적한 나들길을 걸어보면 섬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걷고 싶은 섬이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섬인 것 같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천영기 시민기자는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월 1회 ‘인천 달빛기행’과 때때로 ‘인천 섬 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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