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 한국의 방역시스템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가운데 “한국이 세계의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자평이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성과들 속에서도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 제2ㆍ3의 코로나19를 잘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개선해야할 것들이 있다.

한국의 방역당국은 코로나19 감염자 발생 초반부터 확진자 진술ㆍ폐쇄회로(CC)TVㆍ카드 사용 내용 등을 이용해 확진자의 동선을 상세히 분석ㆍ공개해 전파를 봉쇄하고자 했다. 그런데 동선뿐만 아니라 나이와 성별, 거주지와 직장 위치 등을 함께 공개했다. 바이러스 감염과 상관 없는 개인정보까지 공개하면서 정부가 강조한 것은 ‘투명성’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걸려 아픈 것을 걱정하기보다 “감염인” 또는 “몇 번 확진자”로 명명되며 자신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고 자신이 바이러스처럼 취급당하게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정체성들 가운데 사회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염인의 동선 파악과 관계없는 개인정보까지 공개하는 방역시스템은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했다. 확진자의 국적ㆍ종교ㆍ거주지역이 문제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분위기를 봐왔기 때문에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아프다 죽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확진자 한 명이 클럽에 다녀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규모 감염이 우려되는 일이 생겼다. 이 클럽이 남성 성소수자들이 이용하는 클럽이라는 것을 알게 된 <국민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독’을 붙여가며 성적 지향과 코로나19를 열심히 연결하는 ‘혐오장사’를 했다. 안타까운 건, 한국 사회가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유지하고 강화하면서 그 결과 사회적 소수자 차별ㆍ억압ㆍ폭력을 증가하게 할 수 있는 표현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한 외신에선 “성소수자 혐오 앞에 한국 방역모델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클럽에 다녀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연락을 받지 않고 검사도 받지 않는 등, 큰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자신이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인권단체들과 보건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익명 검사를 실시해 큰 위기는 넘겼다.

익명으로 검사를 받은 후 음성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결국 가족과 직장에 자신의 확진 사실을 알려야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원치 않게 알려질 수 있다. 익명 검사 실시는 잘한 일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익명 검사 이후다.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성소수자 친화적 사회를 만드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다. 미등록 상태인 이주민을 “불법체류자”라고 호명하면서 ‘불법으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검사도 거부하고 있다’며 이주민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들도 보인다. 적극적으로 검사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보고 그 이유를 제거해야한다. 장애인과 이주민처럼 분리와 배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코로나19 상황이 얼마나 더 위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소수자들에게 위험한 상황은 사회 전체의 안전과 보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확히 알아야한다. K방역으로 인한 ‘국뽕’ 시대에 잊지 말아야할 교훈은 소수자 혐오를 걷어내는 교육, 법과 제도 변화로 모든 이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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