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인천투데이]

저자 앤 드루얀, 역자 김명남|사이언스북스| 2020.3.20.

흔히 벽돌책이라 부르는 책이 있다. 베개 삼기에도 마땅치 않은 두께를 자랑하는 책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두껍다고 좋은 책일 리는 없다. 특히 영어권 책은 할 말이 많다. 대체로 두괄식으로 글을 쓰는 게 익숙한 문화다보니, 그 책의 고갱이는 앞부분에 쏠려 있다. 나머지는 아무리 장황해도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이뤄져있기 일쑤다. 읽다보면 지루해지고, 반복되고, 비슷하다. 만약 내가 편집자였다면, 싹 잘라버렸을 터다.

그런데 두께 값을 하는 벽돌책이 있다. 어렵지만 다 읽고 나면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책도 있고,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나가게 하는 탁월한 이야기꾼이 쓴 책도 있다. 뒤에 해당하는 대표적 책이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다.

청소년 시절 나왔던 ‘코스모스’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전형적인 문과 성향이라 과학책은 지레 겁먹고 읽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다시 나온 ‘코스모스’를 읽으며 왜 이 책을 과학 저술가들이 하나같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상찬하는지 알겠더라. 꼭 과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저술가라면 깊이는 양보하지 않으면서 수준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책을 꼭 써보고 싶을 게다.

그 책이 유명짜한 것은 알겠는데,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던가, 우주를 다룬 다른 책은 없는가 묻고 싶을 테다. 정말 이것저것 많이 나왔지만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책은 ‘코스모스’다. 흥미로운 것은 ‘코스모스’를 읽고 저자의 다른 책을 보려고 하면 꼭 따라붙은 사람이 한명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아내인 앤 드루얀.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인연이 됐다는데, 세이건과 공저도 여럿 되고, 이후 책을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일을 맡았다. 세이건이나 코스모스라는 이름이 여전히 인구에 회자하는 데는 앤 드루얀의 공이 크다.

이번에 앤 드루얀이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을 펴냈다. 내셔날 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낸 것이다. ‘코스모스’는 1980년에 다큐멘터리와 책이 나왔고, 2014년에는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가 방영된 적이 있다. 집요하리만큼 꾸준하게 우주를 주제로 작업을 하는 것도 눈에 띄지만, 이런 작업이 지속가능했던 것은 인류가 품고 있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 호기심이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그 호기심을 자극한 면도 강하지만 말이다.

이번 책은 이른바 빅히스토리 성향이 강하다.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비롯해서 그 진화에 얽힌 이런 저런 역사를 말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스스로 일러 ‘이야기의 수렵 채집인’이라 한 데서 알 수 있듯, 지은이가 과학사의 이면에 있는 일화를 잘 활용한 점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학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의 활약상과 시대상황을 소상히 밝혀 놓아 읽고 나면 지식의 창고가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생명의 진화를 주제로 한 글이나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정작 과학자가 아니면서도 그 누구보다 과학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는 이야기꾼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우주를 주제로 한 영상은 휘황할 터다. 그런데 그것을 글로 쓴 책은 무척 담백하다. 칼 세이건을 회상하고 그의 업적을 되살릴 때나, 뇌와 관련한 글을 쓰면서 아들이 겪었던 병증을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과학책이라기보다는 잘 쓴 에세이 같다는 느낌도 든다. 세이건이 그러했듯 앤 드루얀도 우리의 시야를 그야말로 우주적으로 확장해준다. 인종으로, 이념으로, 성별로 나뉘어 싸움박질만 하는 우리에게 도저히 머리로 그려낼 수 없는 무한에 가까운 공간을 상상하게 이끈다. 그리고 이 삶이 가능했던 ‘창백한 푸른 점’이 맞닥뜨린 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우리 세대는 지구에서 약 40억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생명의 사슬에서 가장 결정적인 고리입니다. 우리는 가장 강한 고리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앞에 왔던 인간들의 용기와 재능을 기리기 위해서, 또한 우리가 아이들과 그 후손들에게 진 가장 중요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앤 드루얀이 한국어판 서문에 쓴 글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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