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이달 초, 교육부에서 학부모 교육을 위해 만든 카드뉴스가 논란이 됐다.

카드뉴스의 내용은, 오래전부터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양육을 담당했고 이로 인해 남성은 논리나 체계적인 사고 능력이, 여성에겐 공감과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제 공동양육이 필요한 시대가 됐으니 ‘아빠’들이 공감과 소통능력을 배워야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교육부는 곧 카드뉴스를 삭제했다.

과연 이 비판은 정당할까. 자녀, 특히 남자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흔히 말한다. “남자아이는 산만하고 공격적이지. 우리 애가 다정하지 않은 것도, 정리정돈을 못하고 행동이 거친 것도 다 남자라서 그래.” 이것은 일종의 ‘정설’이다. 내가 보기엔 이 ‘정설’과 카드뉴스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

사실 교육부의 카드뉴스는 아주 유명한 두 개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남성 수렵인’ 이론과 ‘공감-체계화’ 이론이다. ‘남성 수렵인’ 이론은 1960년대부터 인류학계에서 활발히 연구해온 주제로, 남성의 사냥이 무리의 협동을 이끌었고 석기를 발명ㆍ제작하게 했으며 효과적 소통을 위해 언어 발달을 유도했다는 내용이다. 사냥에 성공한 남자들이 부족의 뇌 발달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했고, 그 결과 인간은 지금과 같은 영리한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공감-체계화’ 이론은 여성의 뇌가 공감능력에 최적화된 반면 남성의 뇌는 분석과 논리적인 사고에 적합하다는 내용이다. 그 이유로 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량 차이를 근거로 든다. 2000년 케임브리지대학의 연구팀은 자궁에서 분비된 테스토스테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성 태아의 뇌로 스며들어 남성의 체계화된 뇌를 만든다고 주장했다.(열등한 성|앤절라 사이니 지음|현암사 펴냄)

이론이 잘못된 걸까, 이를 성차별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편협한 걸까. 학회에서 발표했다거나 저명한 학술지에 원고가 실렸다고 해서 모두 ‘사실’은 아니다. ‘남성 수렵인’ 이론은 여성의 역할을 축소해 진화의 역사에서 여성을 지워버릴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허점도 많다. 한 연구에 의하면, 탄자니아의 부족을 관찰한 결과 거대한 동물의 사체를 집으로 가져오는 날은 30일 중 하루에 불과했다. 사냥한 동물을 전부 집으로 가져오는 경우도 없었다. 식량을 남성의 사냥에만 의존했다면 부족은 굶주릴 게 뻔하다. 평상시 식량을 조달한 것은 채집 활동이었다. 또한 수천 년 전 인류는 ‘모두가 모든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여성 사냥꾼과 남성 채집인이 공존했을 거란 이야기다.

‘공감-체계화’ 이론은 어떨까. 인간의 행동에는 생물학적 요인보다도 사회적 요소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로 증명됐다. 유아들이 각 성별에 덧씌워진 고정관념에 맞는 행동을 하게 어른과 환경이 유도하고 조장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이보다도 각 성별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ㆍ외적 차이가 훨씬 크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낡은 이론을 입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육아와 양육의 어려움 때문이 아닐까. 양육자는 자신이 돌보는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싶어 한다.

이럴 때 온갖 성격이론(MBTI, 사주, 별자리, 심지어 혈액형까지)이 근거가 되고, 성별 고정관념은 신념이 된다. 그러나 이미 어른이 된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고정된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이란 잘못된 신념에 의해 얼마나 많이 억압받고 상처 입으며 자라왔는지.

교육부의 행위는 한심하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과 잘못됐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있어 위안이 된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육아와 양육의 책임 또한 집안을 벗어나 사회로 나아가야한다. 그랬다면 애초에 교육부에서 ‘아빠’들에게 공감과 소통능력을 배우라는 카드뉴스를 만들 필요도, 논란이 일어날 일도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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