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신선희 인천여성회

[인천투데이] 편안한 동네 친구들 모임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 맛있는 쌀국수를 먹고 차 한 잔 마시며 일상을 이야기하다 달라진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5월에 들어서면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준비하느라 늘 바빴는데 모두 예전만큼 분주하지 않았다. 예전엔 어린이날을 준비하면서 경비가 덜 들면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나 맛집을 공유했고, 어버이날 선물 준비와 양가 부모님 찾아뵙는 날 조율 등에 4월 말부터 늘 정신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성인이 돼 챙겨야할 어린이날은 없어졌고, 부모님들 중에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다보니 어버이날에도 양가가 아닌 한쪽만 챙기게 됐다.

결혼과 함께 우리에게 밀려든 돌봄의 종류는 많았다. 남편은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와 자기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돌봄노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아이들 돌보고 부모님 살펴드리고 양가 경조사를 챙기는 등, 다양한 ‘돌봄 노동’을 감당해야했다. 이제 돌봄의 도돌이표를 어느 정도 마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돌보는 것, 우리는 돌보는 것을 이야기하게 됐다.

“열심히 살았는데 노후를 위해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네.” “갱년기 들어서니 몸이 여기저기 힘든데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뭐.” “우리 앞으로 뭘 준비해야하지.” 등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얘들아, 우리 말귀 어두워지고 몸 불편해져도 그냥 동네에서 함께 서로 챙기고 부대끼며 살자”라고 불안함을 해소했다.

기존 돌봄 방식은 개인과 가족이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아주 친밀한 영역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돌봄 노동이 이뤄졌는데, 돌봄 역할을 가족에게 많이 부과해온 형태였다. 생각해보면 돌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만 돌리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가를 우리는 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았는데,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져야하는 현실이 슬프고 부당하다.

우리 엄마는 70대 나이에 본인 몸이 건강하지도 않은데 93세 외할머니를 간병하셨다. 긴 돌봄 노동에 몸은 더 안 좋아지고 마음까지 우울해졌다. 자매만 둘인 나의 경우도 엄마가 아프면 일을 조절해서라도 돌봐드려야 한다. 요양시설에 모시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돌봄 노동을 책임져온 여성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도 감당해야한다. 게다가 믿고 모실만한 공공시설이 적고 그런 곳에 모시려 해도 대기기간이 길다.

그동안 돌봄 대상은 아이이거나 노쇠해진 고령자 등 특정 시기의 사람이나 장애인 등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평생 돌봄이 필요하다. 그리고 돌봄을 주고받는 활동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이다. 돌봄을 공동체가 서로 함께 책임진다고 했을 때 우리는 불안하지 않고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행복해질 것이다. 돌봄의 사회화가 절실한 이유다.

여성 대부분은 인생의 60~70%를 돌봄 노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처럼 특정 성역할로 돌봄 노동이 치우쳐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그리고 사회에 균형 있게 분배돼야한다. 각자의 역할에서 노동과 돌봄 그리고 쉼 간에 조화가 있어야만 삶은 지속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가치는 ‘서로 돌봄’과 ‘함께 돌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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