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만 전 부평여고 한문 교사, 퇴임 후 교문지킴이 맡아
교직 34년간 부평여고 11년 재직, 담임 30년...제자 애착 커
텃밭관리·서예동아리 활동 등, 학교 위한 활동 이어가

[인천투데이 이종선 기자]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살면서 스승의 날에 떠오르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큰 복 중 하나다.

주변에는 칭송을 받으며 제자들과 평생 인연을 만들어가는 스승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제자들에게 열성을 쏟으며 참된 스승이 되려고 노력한 교사들은 교단을 떠날 때가 되면 아쉬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스승의 인품에 감동하고 헌신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들도 많은 감정을 느낀다.

아쉬움은 새로운 시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인천 부평여고에서 한문을 가르쳤던 서성만 선생님은 퇴임 후 현재까지도 학교에 남아 학생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생소하고 낯선 상황이지만 그는 벌써 2년째 교문지킴이를 하고 있다.

그는 보통 오전 7시에 학교에 도착해 교정을 쓸며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어 8시가 되면 교문을 나서 교통지도를 한다. 학교 옆에 초등학교도 있어 등교 시간이 많이 혼잡해 서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8시 40분 등교가 끝나면 교문을 지키고 텃밭도 관리한다.

서 선생님이 이처럼 학교에 남은 것은 주변 권유 때문이었다. 그는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료 교사와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달라며 간곡히 오래 부탁했다. 많은 소회를 거쳐 결국 학교에 등대처럼 남았다. 교사 퇴임 후에도 교문지킴이를 하며 학교로 출근하는 모습이 이제야 이해된다. 어떤 모습이 그토록 귀감으로 남아 그에게 학교를 지켜달라 하는 걸까?

제자와 인연 계속...자녀 이름 지어주기도

서성만 선생님은 34년간 한문 교사를 지냈다. 2017년 2학기까지 교단에 섰고 2018년 2월 정년퇴임했다. 그는 원래 고향인 충남 논산에 내려가 작은 농사도 지으며 선산에 조상들을 모시는 제각을 지키려 했다. 가족이나 친인척 중 맡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계획은 먼 훗날을 기약하게 됐다.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이 그를 놔주지 않았다. 평소에 덕망 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탓이다. 특히 부평여고는 그가 두 차례 총 11년 근무한 곳이라 애착이 그만큼 컸다. 처음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근무했고 두 번째는 2012년부터 퇴임할 때 까지다. 교직생활의 3분의 1을 지낸 셈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뭐든 몸소 실천으로 보이려 한 모습을 주변에서 좋게 봐준 것 같아요. 동료 교사들에게는 인생 선배로서 화합을 시키고, 제자들에게는 되도록 매를 들지 않고 사랑으로 가르침을 주려 했어요. 결국, 나에게 큰 복으로 돌아왔네요.”

부평여고 교문지킴이로 활동 중인 서성만 선생님.

최근에도 스승의 날을 맞아 15년 전 석정여고에서 담임을 맡던 시절 제자가 서 선생님을 찾아왔다. 제자들이 케이크를 사 오고 저녁도 함께했다. 그는 제자들과 계속 연락하며 만날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서 선생님은 교사로 처음 부임한 학교의 제자와도 여전히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1986년 부평고등학교 고3 담임을 맡았는데, 당시 가르침을 받던 한 제자는 20년 넘게 명절마다 서 선생님의 안부를 물으며 선물을 보내준다. 그 제자는 현재 53세로 서 선생님과 띠동갑이다.

이런저런 인연들을 떠올릴수록 서 선생님은 뿌듯해했다. 그는 “굳이 교육계 연구직이나 장학사를 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인 것 같다. 오히려 교장·교감도 안 하고 학생들과 어울려 좋은 추억이 많았고, 인생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34년 교직생활 중 담임 교사만 30년 했다. 학생들에 대한 웬만한 애착과 부지런함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록이다.

서 선생님은 학생들을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한번은 송도에 체육관을 연 제자를 위해 개업식에 찾아가 한시를 낭송하고, 고사를 지내며 축문도 낭독해줬다. 한문 교사 전문성을 퇴임 후에도 발휘했다.

제자들의 자녀 이름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족히 300명은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름은 ‘송정빈’이다. ‘상서로울 정’에 ‘빛날 빈’자를 썼다. 좋은 조짐으로 주변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다. 이 이름은 서예가 우재 최규삼 선생의 손을 타 작품으로 전시되기도 해 더욱 애착이 크다.

이름을 지어준 제자와 함께 서 선생님은 부평여고에서 ‘현묵회’라는 이름의 동네 서예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동아리는 서 선생님이 만들었다. 인천시 북부교육지원청이 공모한 동아리 지원 사업을 신청해 선정됐다. 다른 학교 교사들과 지역 주민, 학부모들과 함께 꾸려가고 있다.

따뜻한 인간상 몸소 실천, 퇴임식에서 시 헌사 받아

서성만 선생님이 현묵회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마음을 아프게 한 제자도 소개했다. 교사를 시작한 첫해인 1984년, 서 선생님은 고1 담임을 맡았다. 당시 추운 겨울 학교에 늦게 남아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서 선생님은 집에 가지 않고 남은 학생을 봤다. 그 학생은 하교 후 갈 집이 없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학생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집을 떠났고, 이후 어머니도 생활이 힘들어 학생을 남기고 떠난 상황이었다. 사정을 알게 된 서 선생님은 학생을 집에 들였고, 한동안 함께 생활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가게 했다. 당시 신혼생활 중이었던 서 선생님은 “아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이해해줘 정말 고마웠다”고 회고했다.

이외에도 집안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도시락을 싸주고, 막내 처남을 데리고 살며 대학을 보내기도 했다. 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흔히 판검사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범죄자를 혼내고, 의사는 병을 고치죠. 반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안내합니다.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교육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추구합니다.”

서 선생님은 교사를 하게 된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자신의 가르침으로 제자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만큼 큰 기쁨은 없다는 것이다. 제자로 비춰보면 그의 인생철학이 그대로 투영된다.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교사가 지녀야 할 사명감으로 ‘솔선수범’과 ‘언행일치’를 꼽았다. 또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지식을 토대로 지혜를 증강시키는 안내자이자 지도자가 돼야 한다. 스승이라면 본인이 무거운 책임을 지닌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붓글씨로 쓰여진 '우리는 그의 그림자 옆에도 갈 수 없다'. 이 시는 신현수 시인이 서성만 선생님을 위해 지었다.  

선한 영향력을 곳곳에 퍼뜨린 덕분에, 서 선생님은 퇴임식에서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다. 동료 교사였던 신현수 시인(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 서 선생님을 위한 시 ‘우리는 그의 그림자 옆에도 갈 수 없다’를 지어 헌사했다.

시에는 서 선생님의 교사로서 모범·헌신뿐 아니라, 인간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삶과 평소 행동에서 따뜻한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왜 제자와 동료들이 늘 곁에 두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신현수 시인이 바라봤을 때, 서 선생님이 겸손하지 않은 부분 딱 한 가지는 바로 ‘제자 자랑’이다.

서 선생님은 “신현수 시인이 장편시를 지어 퇴임식에서 낭송해주니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로서 마지막에 정말 큰 보상을 받았다. 한 지인은 붓글씨로 시를 써서 내게 선물하기도 했다”며 고마워했다.

서 선생님은 몸이 허락하는 한 부평여고에 오래 남을 생각이다. 특히 요새는 코로나19 때문에 학생들을 못 봐 아쉬움이 더욱 크다. 그러면서 “신입생들은 배정받은 학교가 많이 궁금할 텐데 오지도 못한다. 무려 3개월 가까이 등교를 못 하는데 학생들은 학교가 얼마나 그립겠냐”며 학생들 걱정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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