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재개발조합 사업시행인가 신청, 내년 8월 철거 앞둬
“미쓰비시 줄사택 수준 보존 필요...공공시설로 활용 가능해”

[인천투데이 이종선 기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부평구 산곡동의 영단주택이 재개발 절차에 따라 내년 안에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부평구는 미쓰비시 줄사택과 달리 별다른 보존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산곡동 87번지 일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군수업체 노동자들에게 보급했던 영단주택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지난 2010년부터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산곡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지난 4월 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다. 조합 측에 따르면 이 일대는 내년 8월 중으로 관리처분인가를 마치고 건물이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영단주택의 수명이 1년가량 남은 셈이다.

인천 부평구 산곡동에 늘어선 영단주택 모습. 영단주택은 일제강점기 시절 군수산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영단주택은 일제강점기 시절 군수산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당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시체제 아래에서 조선의 병참기지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국내 군수업체가 급증했고, 노동자들은 주택난을 겪었다. 일제가 1941년 설립한 조선영단주택(현 한국토지주택공사)은 표준주택을 만들어 집합주택 형태로 공급했다.

산곡동 영단주택은 부평에 있었던 일제 군수공장 조병창에서 근무했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주거를 위해 1000호가량 지어졌다. 당시 이곳에 근무한 노동자는 1만5000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과 기지촌 여성들이 주로 살았다. 1968년 부평4공단이 조성된 이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이 살았다.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마을이 아니라, 계획에 의해 건설된 주택이며 마을이다. 근현대사를 거치며 달라진 국가 정책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온 곳이다. 이런 점에서 산곡동 영단주택 단지는 근대 이후 부평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건축 유산은 내년 중으로 모두 사라질 예정이다.

연이은 건축자산 철거 되풀이 말아야...아베식당 잊었나

그동안 영단주택을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최근 인천에서는 연이어 근대 건축자산이 철거되고 있어 대책이 더욱 요구된다. 중구 애경사, 동구 신일철공소 건물에 이어 최근에는 오쿠다 정미소까지 철거됐다.

그러나 부평구는 늘 검토해보겠다는 답변뿐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부평구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현재로선 산곡동 영단주택을 보존하기 위한 뚜렷한 대책은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어 “자체적으로 진행한 근대건축물 조사에는 영단주택이 등록돼 있지만, 철거 예정으로 보고 있어 내부적으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논의해봐야 한다”며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영단주택 숫자를 조사한 적은 없지만 100채가 넘게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현황 파악도 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는 건축재를 보존해 복원하고 기록화 보고서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보이는 ‘미쓰비시 줄사택’을 대하는 모습과 다르다. 마경남(민주, 비례) 부평구의원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보상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라 줄사택은 보존해야 한다는 의식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영단주택은 그 일대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 운 좋게 남아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3월 일본식 목조 상가주택 ‘아베식당’이 철거된 것을 계기로 '부평구 향토문화유산 보호 조례안‘을 제정했지만, 이미 철거 예정인 건축물들까지 조례를 소급적용할 수 없다”며 “미쓰비시 줄사택처럼 건축물을 그대로 이전하는 방법과 기록화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교수는 “영단주택을 몇 채라도 현재 위치에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재개발되면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원·주민센터·도서관 등의 공공시설이 필요할 것이다. 영단주택을 아파트 단지 내에 둬 그런 용도로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를 위해 부평구가 예산을 투입하는 등 개발조합과 잘 협의해야한다”며 “정 안된다면 건물을 그대로 옮겨서 다른 위치에 복원하는 방법이라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산곡동 영단주택 보존을 위한 민간의 움직임은 재개발 구역 지정 당시부터 있었다. 지난 2014년 부평역사박물관은 인천민속학회와 진행한 학술회의에서 영단주택을 보존해 문화유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영단주택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학술총서 ‘부평 산곡동 근로자 주택’을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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