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19 비상에 ‘나 하나라도 보태야’ 달려왔죠”
[인터뷰] “코로나19 비상에 ‘나 하나라도 보태야’ 달려왔죠”
  • 조연주 기자
  • 승인 2020.05.04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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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길여(건강과나눔 단원) 간호사
뉴질랜드 유학 도중 코로나19 의료봉사 대구행
“간호사, 사명감 없인 못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

[인천투데이 조연주 기자] “한 명이라도 많아야 빨리 해결되니까 달려왔습니다.”

뉴질랜드 유학 도중 의료봉사를 위해 대구행을 선택한 유길여 간호사의 말이다.

유 간호사는 가천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가천대길병원 등에서 9년간 일했다. 2003년부터는 인천 사회복지단체인 ‘건강과나눔’ 단원으로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 봉사를 했고,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 한 뒤에도 건강과나눔에서 꾸준히 의료봉사를 이어갔다.

2018년엔 보다 많은 사람을 간호하기 위해 유학을 다짐하고 뉴질랜드로 떠났다. 국제간호사 학위를 따기 위해 어학연수를 하다가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돌아오자마자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한 달 넘게 환자들을 돌보다 4월 24일 마지막 환자들을 대구의료원으로 이송하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그는 “도저히 한국에 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라고 말한 뒤 “간호사는 지금처럼 사명감만으로 일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유길여 간호사(맨 왼쪽)와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있다.
유길여 간호사(맨 왼쪽)와 동료 의료진.

‘한 명 간다고 달라지냐’는 말에
‘나 하나라도 가야’ 대구행 결심

인생 후반기에는 국제의료봉사를 하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 도중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진다는 뉴스를 봤다. 의료진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곳이 한국이 된 것이다. 가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한국에 가면 공부해온 뉴질랜드 정부 인증 어학연수 코스가 모두 취소되고 비자까지 취소당하는 상황이었다. 등록금 환불도 힘든 상황이라 뉴질랜드 지인들은 ‘가면 안 된다’고 말렸다.

고민하던 중 한국에서 31번째 확진 이후 확진자 수가 급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구시장은 대구로 의료봉사를 하러 와달라고 호소했다. 더 이상 고민할 것은 없었다. 한국에 가야 한다기보다는,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뉴질랜드 지인에게 딸을 맡기고 학교에 사정을 설명했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이월해줬다.

뉴질랜드에 함께 간 딸은 “엄마 하나 간다고 코로나가 잡히겠냐”고 걱정하더라.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틀린 말이길 바랐다. 딸에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한 명이라도 가서 도와야 상황이 바뀐다. 허드렛일을 도맡아할지언정 한 명이라도 힘을 보태야한다”고 말했다. 3월 7일 대구시에 의료봉사를 신청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대구시에서 콜(call)이 없었다. 봉사를 신청한 의료 인력이 너무 많아 지금 당장은 필요 없다는 게 대구시의 답변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 하나라도’라는 마음으로 3000명이 대구와 경북으로 달려간 것 아닌가. 인천의료원에서 일반 봉사라도 하기 위해 신청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대구 한 요양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우여곡절 끝에 대구로 향하게 됐다.

요양병원 도착 첫날의 분위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유 간호사는 회고했다.
요양병원 도착 첫날 분위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유 간호사는 회고했다.

코호트 격리 속 ‘무조건 방역’으로 감염 최소화

파견된 요양병원은 코호트 격리(발병 환자와 의료진 모두 격리하는 방식) 중이었다. 도착했을 때 병원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의료진도 상당수 감염된 상태였고, 모두 패닉(panic)에 빠져있었다. 더구나 그곳은 치매 또는 하반신ㆍ전신 마비 환자나 이른바 식물인간이라고 불리는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환자 대부분 식사 보조나 기저귀 케어가 필요했다. 코로나19 치료는 고사하고 일반적인 간병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며칠간은 어떻게 지냈는지, 말 그대로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몸도 바빴지만 심적 부담도 심했다. 아직 양성 판정이 나지 않은 음성 환자들을 양성 환자와 부랴부랴 격리했지만 그동안 접촉을 많이 했으니 사실상 양성 환자였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코로나19 검사를 했는데, 검사할 때마다 양성 환자가 쏟아졌다.

힘든 시간은 한 달 동안 계속됐다.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염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접촉하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한 환자 진료 후 다른 환자 진료로 넘어갈 땐 방호복 겉의 일회용 앞치마와 글러브를 교체하고 기구를 소독하고 몸을 방역하는 과정을 빠지지 않고 반복했다. 이 작업만 해도 진이 다 빠진다. 방호복을 두세 시간 그냥 입고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나고 나중엔 습기가 차서 고글이 안 보인다. 그러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무조건 방역’이 최선이었다.

코로나19는 메르스(MERS) 등 이전 바이러스 감염 사태와는 전파 속도와 양상이 달라 의료진이 더 힘들어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모든 의료진이 처음 접해보는 미증유의 질병이다.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환자 돌보는 방법에 어느 정도 지침은 있지만 정해진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이 없으니까 막막하기도 했다. 특히, 코호트 격리는 병원 안에서 자체적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하니까 더욱 고됐다. 환자와 의료진이 모두 격리된 상황에서 더 이상 감염이 없으려면,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주의를 몇 배는 더 기울여야한다.

다행히 대구에서도 확진세가 많이 줄어들며 의료원 병상이 확보됐다. 4월 24일 코호트 격리가 해제되고 마지막 음성 환자들을 이송하고 요양병원을 비울 수 있었다.

한국 간호사에겐 ‘식 리브(sick leave)’가 없다

뉴질랜드 친구들에게 한국 간호사 이야기를 들려주면 ‘노동 강도가 미쳤다(crazy work)’, ‘상상이 안 된다’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한국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국제적으로 손에 꼽힌다. 한국에서 일할 때 많이 느꼈지만, 뉴질랜드에서 한국 간호체계를 바라보니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뉴질랜드에선 병가를 ‘식 리브(sick leave)’라고 부른다. 아파서 떠난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다. 의료진이 아프면 당연히 쉬어야지 누굴 간호하나. ‘식 리브’는 나뿐 아니라 가족들이 아플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상사 눈치 안 보고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분위기가 뉴질랜드에는 갖춰져 있다.

한국에선 꿈같은 이야기다. 한국 간호사들은 아프면 진통제 먹고 주사 맞고서라도 일해야 한다. 대체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간호 인력이 많이 양성되고 신규 간호사는 넘쳐나는데, 고된 노동환경을 못 버티고 뛰쳐나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간호 인력을 최소한으로 뽑는 관행이 계속되는 이상, 누구 한 명이 아프면 그 몫을 누군가 그대로 뒤집어써야하는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파견 나간 요양병원에서도, 의료진이 코로나19 증상이 있었지만 대체인력이 없어 계속 일하다보니 집단감염이 더욱 확산된 거다. 간호사들끼리는 ‘아파 죽어도 병원에서 죽어야한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쓴다. 슬픈 농담이다.

‘아프니 쉬겠다’라고 말하면 불성실한 간호사가 된다. 이런 문화가 만연한 곳에서 아파도 병원에 나와 일한 간호사의 잘못일 리 만무하다. 최소 간호 인력만을 채용하는 문제를 짚어내야 한다.

‘원래 그렇다’는 이유로 지속해온 구조적 문제점이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가 계속되는 한, 병원 내 집단감염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간호사는 사람을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산다. 그러나 사명감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 충분한 인력 채용 등으로 간호체계를 바꿔내야 한다.

간호사는 의사 '아랫사람'이 아닌, 서로 협력하는 동등한 존재다라고 유 간호사는 말했다. 
간호사는 의사 '아랫사람'이 아닌, 서로 협력하는 동등한 존재다라고 유 간호사는 말했다. 

간호사는 ‘의사 아래’가 아니야
세계에서 손꼽는 한국 간호사

간호사는 ‘의사 아랫사람’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같은 환자를 두고 진료하는 영역이 다른 전문가이자 서로 협력하는 사이다.

한국 간호사들은 고된 업무와 함께 전문성을 무시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간호사도 의사만큼 공부한다. 예를 들면, 간호사가 환자를 얼마나 상세히 살피고 진단해 의사에 보고하느냐에 따라 처방이 달라진다. 그러나 한국에선 여전히 아랫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 사회가 간호사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달리, 한국 간호사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높다. 우리가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일해도 되는 사람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한국 간호사들은 이미 매우 전문적이다. 구조적 이유 때문일 수 있겠지만, 근면함도 갖췄다. 외국 간호사들 사이에 ‘한국 간호사 주사 잘 놓는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인재들이 스스로 간호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체계를 손보는 것이다.

생활방역 전환은 실로 대단한 일,
시민들이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한 대처가 가능했던 이유에는 5년 전 메르스 사태의 부실한 방역과 관료주의적 소통체계를 반면교사 삼은 게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를 각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뉴질랜드는 확진자가 몇 명 나오자마자 폐쇄 조치했다. 특정 지역에서 하루에 확진자가 500명 넘게 나오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한국은 뉴질랜드나 프랑스 등의 폐쇄 조치 대신 사회적 거리두기를 택했다. 이는 방역과 의료에 믿음이 두터워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지금까지 결과는 성공적이다. 5월 6일부터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의료진의 열성,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잘 따라준 시민들이 하나가 돼 움직여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질병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시민들도 방역에 동참해주시기를 부탁한다. 함께할 때 우리는 해낼 수 있다.